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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소설

제목 환각 속에서의 환영 - (1)
글쓴이 안혜진
'부스럭'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이 세상이 어둠으로 물들어 보이기 전, 가족 모두가 웃으면서 찍었던… 그 가족사진이 보이지 않는다.

그 놈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건 사흘 전, 비가 오던 오후였다. 갑자기 하늘을 가리는 달에 모두들 일식이라 난리를 치고, 그 하늘에서는 놈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모두가 혼비백산 도망을 치고. 그들의 인간 사냥은 일면 미개한 쓰레기 사냥'으로 우리들을 없애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가족들과 함께 지내던 집이다. 문 밖에 한 놈이 있다. 사람형태를 하고서는 인간이 아닌 그 생물이 있다. 자기들끼리 일명 '꼴드(corde)'라는 방식으로 인간의 언어를 표방하여 대화를 나눈다. 사흘 동안 열두 놈을 없애면서 나는 그들의 꼴드를 익혔고, 후각이 좋은 그들에게서 나의 향을 흘리지 않을 방법도 알아냈다.

"쓰레기 냄새가 나는군, 아직도 살아있는 쓰레기가 있었나."

그들은 눈이 정말 안 좋기 때문에 후각에 의존해서 살아간다. 즉, 생김새로는 구분하지 못 한다는 것이다.

"어이없군, 쓰레기라니. 인간들의 틈에 있다고 나까지 쓰레기 취급하다니."

나는 내 손에 나의 동생의 시신을 들고 일어섰다. 그 생물은 움찔하더니 냄새를 찾으려는 듯 얼굴을 좌우로 돌려댔다. 나는 내가 냄새를 흘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열두 놈 중 하나의 냄새 주머니를 터뜨려 그들의 냄새를 흘렸다. 그 생물은 그제야 동족의 냄새를 맡았다는 듯 의심을 풀었고 말투 또한 누그러졌다.

"앞으로는 쓰레기들 사이에 있지 말도록 해라. 역겨운 냄새가 진동 하는군. 그나저나 무기의 형태가 보이지 않는군. 그래서 그 역겨운 쓰레기를 손으로 쥐고 있는 것인가?"

"어. 맞아. 내 건 이 쓰레기가 반항해서 고장나버렸거든."

그 말과 동시에 나는 나의 동생의 시신을 바닥으로 던져버렸다. 눈에서는 눈물이 치밀어 오르려고 하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려고 노력중이다.

"여기 있다. 이거라도 써."

그 생물체가 총을 하나 던져주었고 나가는 길에 내 동생 머리를 밟아 버렸다. 아직까지도 형태를 유지하던 두개골이 아주 듣기 거북한 소리를 내며 으스러졌다. 그 귀엽던 얼굴도 같이 문드러져 버렸다.

"앞으로는 반항하는 것들은 주저 없이 쏴버려."

"그러지."

나에게로 등을 돌리고 돌아서서 나가려는 생물의 등에 당겨진 나의 방아쇠는 아주 정확하게 그 생물을 관통했다. 그 즉시 나는 달려가서 배를 갈랐고, 그 안에는 인간의 태아의 모습을 한 그들의 심장부가 들어있다. 피도 인간보다 붉고 끈적끈적해서 보기에는 그다지 좋은 장면은 아니다. 미처 자라다만 그 태아의 형태를 나는 끝을 내었다. 그 생물의 가죽을 벗겨 몸에 입고 무기를 챙겨 나가려던 순간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경비 태세를 갖추었다.

"멋지군. 아. 걱정 마. 내가 지금 꼴드로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내가 인간인 것도 알겠지."

"보고 있었나."

"멋지더군. 너의 가족 아닌가?"

어둠 속에서 나온 그의 모습은 심하게도 나와 닮아있었다. 하지만 나보다 더 비열한 웃음과 큰 키, 저음의 목소리는 그가 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지금 나의 모습은 어떨까.

"꼴드가 아주 자연스럽더군. 나에게 좀 가르쳐 줄 수 없나?"

"당신의 신용이 어디 있다고 내가 가르쳐 주어야 하는 거지?"

"그런가."

바닥에 털썩 앉아 자신의 가방에서 물을 꺼내 마시는 그의 팔뚝에는 이상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그런…. 나는 그에게서 등을 돌려 문 쪽으로 향했고 그는 나는 신경 쓰지 않은 채 그저 미친 듯이 웃었다. 나야 그들의 냄새가 풍겨 안전하다고 쳐도 자신은 그런 소리를 내면 그 생물들이 미친 듯이 달려드는 걸 모르는 것일까. 그의 목소리는 내가 집을 마저 나설 때까지 끊이지 않았지만 평소 같으면 벌떼같이 몰려들었을 그 생물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거리에는 인간이 아닌 그 생물들이 돌아다니고 바닥에는 인간들의 시체가 이리저리 뒤엉켜 구르고 있었다. 목이 잘린 시체, 심장이 관통당한 시체. 그도 아니라면 그 생물들에게 목줄이 채워져 벌거벗은 채로 바닥을 기어 다니는 인간들이 즐비하다. 개중에는 나를 인간으로 알아보고 낑낑대다가 그 생물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일상이다. 나의 주거지는 이 거리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은 그들의 본거지이다. 황폐화된 인간들의 곳과는 달리 화려하고 정돈 되어있다. 신분증을 대신하는 것은 꼴드와 그 생물들 특유의 냄새이다. 나는 늘, 걱정 없이 들어갔다.

"수고 하는군."

"뭐, 할 짓 없는 애들이 서있어야지."

근위병조차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 생물들의 본거지 안에는 시체만 없을 뿐 벌거벗은 채로 바닥을 기어 다니는 인간들의 모습은 이어졌다. 여자건 남자건 늙었건 어리건 상관없이 그들에게는 쓰레기이고 가축일 뿐이다. 가슴이며 성기며 모두 적나라하게 드러내져 그 생물들의 장난감이 될 뿐이다. 그러다가 그들이 질리면 죽는 것이 지금 이 세상에 인간들의 모습이다. 내 집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벽을 바라본다. 가족들의 사진이 따로 떨어져있다. 붙어있는 사진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냄새나는 가죽을 벗고 침대에 눕자 내 등에 묻어있던 끈적끈적한 피가 침대로 옮겨간다. 수첩을 꺼내들고 아까 만났던 남자에 대한 내용을 적는다. 너무나도 기이하다. 너무나도 미쳐보였다. 어쩔 땐 이런 가슴 떨리는 생활보다는 죽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수시로 하지만 가족들의 최후를 목격하고 나만 살아있는 이상 그럴 수는 없다. 그런데 어떻게 사흘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이렇게 엄청난 성장과 정착을 이룬 것일까. 인간이 너무나도 나태했고 약했던 것일까. 자신들의 부를 위해 웃고 권력을 위해 피를 냈다. 그에 대한 벌이 아닐까.

"있나?"

"누구지?"

갑자기 들려온 꼴드에 나는 얼른 가죽을 등에 얹었다. 사진들을 치워버리고 문을 열었다.

"같이 청소하러 갈 사람을 모으고 있지."

"그래? 그런데 난 방금 사냥을 하고 돌아와서 말이지. 차라리 옆집에 가보지? 그 사람이라면 갈지도 모르겠군."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생물은 자리를 떠났다. 하루에도 여러 번 이런 생물들이 찾아온다. 청소를 가자, 자신의 쓰레기를 가지고 놀자, 뭐 이런 식의 용건이다.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