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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단편소설]새엄마
글쓴이 최효서
"아 진짜! 필요없다고. 맨날 왜 이래? 학부모 꼭 안와도 된다고 선생님이 그러셨다고."
"그래도....담비야."
"담비라고 부르지마! 내 이름은 혜은이란 말이,김혜은!"
"ㄱ..그래. 혜은아. 아무리 그래도 엄마가 가는 게 낫지 않겠니?"
"엄마?지금 엄마라고 했어? 우리 '진짜'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편하게 집에 새로 들어와서 새엄마 노릇했으면서 무슨 엄마야. 동생 혜지랑 내 맘은 아무것도 모르잖아."
"아니야..내가 혜은이랑 혜지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됐어! 참관수업 절대 오지마. 애들 다 안단 말이야. 새엄마라는 걸. 창피해 죽겠어!"


오늘도 엄마, 아니 새엄마랑 싸우고 나왔다.
홧김에 한 말이긴 하지만 솔직히 미안한 구석도 있다.
그렇지만 새엄마 노릇 한 거는 맞지 않나.
2년 전, 엄마가 베트남에 살던 어떤 아줌마의 차에 치여 돌아가시고 나서 난 베트남 사람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내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렸던 장면이 계속 생각나 베트남 사람들이 미워진다.
그게 새엄마랑 무슨 상관이냐고? 새엄마가 베트남 사람이거든.
피부 색깔만 빼면 우리나라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우리 말을 아주 잘한다. 그래서 종종 어떤 사람들은 새엄마를 한국 사람으로 보고는 한다.
내가 제일 맘에 안 드는 것은 친구들 앞에서 날 창피하게 만들지 뭐야.
저번에도 비가 질척질척 오는날에 망신을 줬었지.
비가 와서 내가 좋아하는 재호가 우산을 같이 쓰고 가자며 나에게 말을 걸어왔었는데
새엄마가 우산을 들고 온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우리 딸 비오는 데 어떻게 오려고 전화 한 통도 안했어? 옆엔 누구야? 남자친구니? 호호" 그러면서 재호한테 막 말을 거는거야. 혜은이랑 친하게 지내라. 우리 집에 한 번 놀러오너라. 시시콜콜 참견을 다 하지뭐야.
재호는 웃으면서 '이 아줌마 누구야? 혹시 너희 엄마니? 니가 베트남 사람일 줄은 몰랐다 하하하' 그러니까 새엄마가 가만히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아니야. 나만 베트남 사람이고 혜은이는 한국 사람 맞아. 내가 새엄마거든." 그러는 거 있지?
재호가 나를 뭘로 생각하겠냐고.

항상 그런 식이야. 마음대로 친한 척 해놓고 망신은 혼자 다 주고.
너무 뻔뻔스러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이런저런 생각을 다하며 학교에 왔더니 이른 시간인데도 부모님들이 자리에 앉아 애들이랑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내 자리 옆에 엄마가 앉아 있는 것만 같아 눈앞이 흐려졌다. '엄마...' 그런데 뒤에서 "혜은아!"하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는거야.
올게 왔구나. 싶었지. 뒤를 돌아보니 역시 새엄마야.
근데 저게 뭐야?얼굴이 왜 저렇게 하얘?
"아 뭐야! 내가 오지말라고 했잖아! 얼굴은 또 뭔데"
"아..이거..혜은이가 내가 베트남 사람이라서 싫어하는 것 같아서 얼굴 좀 하얗게 만들어 봤지. 어때 어울려?"
"아 쫌!진짜 뭐하는 짓이야. 오지말라고 했는데 와서 망신을 시키지 않나."
"어...미안해. 그래도 선생님은 한 번 뵈어야 되지 않겠나 싶어서.."
"그냥 가! 선생님 뵙고 가지마."

아 진짜 이게 뭐야. 아침부터 기분이나 망쳐놓고.
짜증나 죽겠어 진짜. 왜 저래?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어.
띠리리링*
"여보세요?"
"아빠. 나야."
"어 우리 공주님~ 왠일이야?"
"진짜 짜증나 죽겠어!"
"왜 그러실까 우리 공주님?"
"새엄마 그만 참견하라고 해! 오늘도 학교에 왔단 말이야."
"그래도 엄마잖니."
"엄마는 무슨!! 그냥 오지말라고 해줘 알겠지?"
"으응..알았어. 그래도 잘해줘라 다른나라에 와서 많이 힘들어하니깐."
뚝.

흥! 다른나라? 그러면 아예 오지 말든가. 아님 우리 집으로 오지를 말든가.
왜 와서 다른 사람 다 힘들게 해?

따르르르릉* 따르르릉♪
"여보세요?"
"여보세요? 거기 한주희씨 따님 되시나요?"
"뭐..친딸은 아니고 제 새엄마에요."
"그러세요? 그런데 지금 한주희씨께서 많이 다쳤어요. 교통사고가 나서..지금 ★★병원으로 급히 와주시길 바랍니다."
"예??"

병원으로 급히 달려갔다. 꽤 먼거리였지만 달려가는 중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가 않았다.
'403호 403호라고 했지. 제발...'
403호 문을 여는데 새엄마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문 뒤에 숨었는데 혼자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엄마....엄마..너무 보고싶어..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한국으로 시집왔지만 너무 힘들어..
난 정말 혜은이를 사랑하는데 혜은이가 그걸 몰라주는 것 같아..."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그런 거였어? 새엄마도 엄마가 돌아가신거야?'
둘이 같다고 생각하니 불쌍하게도 느껴지고 미안했다.
"새엄마..."
"어..어? 혜은이 왔구나.."
"새엄마..미안해요.."
"어..?아니야..나는 그저 고향에 혼자 남겨두고 온 여동생이 혜은이랑 많이 닮았길래 정말 아껴주고 잘해주고 싶었는데 혜은이가 새엄마 마음을 너무 몰라주는 것 같았어. 혜은이 마음도 이해하지만 이제라도 새엄마 마음을 좀 알아주렴."
"네...새엄마, 아니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