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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북클럽1기] 내가 화가다, 정일영.
글쓴이 이세미

내가 화가다, 정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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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이제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 성에 대한 단순한 대립이거나, 이유가 불분명하고 근거가 불충분한 이야기가 아니다. 무조건적 옹호라거나 반발심으로 인한 움직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주 먼 어느 시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고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있다. 뿌리깊은 나무처럼 인간의 삶과 이성을 지배하고 주창되어 온 이데올로기. 남성을 위한 삶과 그 역사가 오로지 전부인 것처럼 ‘생’은 그들 위주로 만들어졌고 이어져왔다. 쉽게 말하면 ‘가부장제의 신화’라 표현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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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에 있어서도 가부장제의 위엄과 권위는 막강했다. 1970년대 초에 미술에 있어서도 페미니즘 연구가 시작되었다. 미술을 ‘페미니즘’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분명 의미있는 시각과 의지의 표명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어가며 절실히 성찰했다. 여성에게 드리워진 무수한 어둠과 불합리하고 부당한 작태들. 그림에 있어서도 여성은 소외받고 차별받고 상처받았다. 여성이니까 안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여성이니까 자격이 없어! 여성이니까 남자인 우리들을 위해 희생하고 가정에 충실해야 해! 여자가 무슨 화가야! 여성들이 그린 그림이 남성들의 그림보다 떨어져! 그렇게 여성을, 그리고 화가로 살기를 원했거나 화가인 여성을, 그녀들의 그림을 초라한 것으로 폄하했다. 그리고 자신들만의 시선과 편견으로 여성을 그렸다. 그녀들의 동의없이, 그들을 생각하고 바라보고 싶은대로 그린 것이다. 예술이 예술가들의 창의와 상상력으로 창작되어지는 것이라지만 꼭 여성을 억압하거나 그들을 낮추는 방식으로 그려져야 하는 것일까. 여성들을 성적 대상화하거나 자신들이 품고 싶은 성적 판타지 속으로 무심하게 끌어들였다. 여성들은 그렇게 유구한 전통처럼 상처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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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그리스 신화, 성경 속 여성뿐만 아니라 역사적 실존 인물들에 대한 남성들의 부당한 편견들이 들어차 있다. 미술사에 있어서도 여성은 차별받았다.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려졌고 그들의 그림은 여성의 그림이라는 이유로 평가절하되었다. 작품 그 자체만으로 인정받거나 이야기되는 여성 화가는 드물었다. 대부분 거의 작품보다 그 여성의 삶, 특정한 스캔들로 평가되었다. 혹은 남성성, 여성성의 기준으로 특정지어지기도 했는데 그림을 바라보는 관점이 얼마나 협소하거나 부당한 것이었는지 이분법적 사고에 경계를 두어야 함이 마땅할 것이다. ‘페미니즘’ , 누군가에게는 정해진 세계에 반기를 드는 또다른 세계일 수 있겠다. 그러나 이제 서서히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뿌리깊은 가부장제의 신화를 타고난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살았던 모든 이들이. ‘가부장제’라는 정해진 세계에서 여성을 억압하고 차별했던 그 모든 진실에 대하여. ‘가부장제’라는 명분으로 오랫동안 독점했던 이 세계를 서서히 헤쳐가야 할 때가 오지 않았을까. 여성의 권리와 주체성을 바로 세우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새로운 삶의 그림을, 미래의 족적으로 삼아야 할 때를 희망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