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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품

제목 한 해를 정리하며
작성자 김현진 작성일 2019-12-15
작성일 2019-12-15

 나는 평소 하루가 끝날 때, 달력에 그 날을 색칠하는 습관이 있다. 그 날의 기분에 따라서 형광펜을 골라 색칠을 한다. 그래서 언제나 달력은 알록달록하다. 감정기복이 심했던 주는 정말 복잡하다. 어제도 색칠을 하다가 2019년도 벌써 2주가 남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안 좋은 일들이 계속 일어나다보면, 그 끝에는 결국 행복해질 거라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나도 그렇게 될지 궁금해졌다.

 

 내가 비록 이번 한 해가 죽을 만큼 힘들다고 느꼈지만, 죽지 않는 걸 보면 내가 견딜 수 있는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처음에는 진짜 엄청난 분노가 마음속에서 샘솟아서 견디기 힘들었는데 다 내려놓고 보니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를 분노 속에서 미워하다보면 그만큼 내 소중한 시간들을 그 사람에게 낭비하는 거라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마음속의 소용돌이가 잠잠해지는 걸 느꼈다. 역시 많은 감정들을 마음속에 담아두는 건 몹쓸 짓이다.

 

 그리고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이 고통들을 느낄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요즘 내가 살아있다는 게, 내 삶을 꾸려나간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 나에게 주어진 것을 당연시 여기지 않고 하나씩 고마워하다보니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깨닫게 되었다. 아름다운 세상을 내 눈에 담을 수 있고, 맛있는 음식 냄새를 코로 맡을 수 있으며, 다양한 소리를 내 귀에 담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그리고 두 다리로 잘 걸어 다닐 수 있고, 두 팔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고, 책을 읽을 수 있고 이 말고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내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이런 감각기관과 신체들로 이루어지니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안타깝다.

 

 이렇게 고마워하면서 생활을 하다보면 내가 언젠가 이 생을 마감하고 세상을 떠나야한다는 게 미친 듯이 두려워질 때가 많다.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고, 내게 주어진 이 삶을 끝내야한다는 게 너무 싫다. 그만큼 내가 내 삶을 사랑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아직 많이 살지 않아서 욕심이 많은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나이를 먹게 되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아직까진 그렇다.

 

 또한 죽기 전에 내 삶을 사랑하게 해준 소중한 사람들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든다. 내가 힘들 때, 또 감정을 털어놓을 때도 받아주던 사람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어주고 안아준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한 말이 이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심스러워지고, 어떤 말을 해야 마음이 좀 나아질까 고민을 하는 과정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내가 최근에 그런 입장이 되어보니 알게 되었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나를 생각하고 배려해준 건지.

 

 참 인격적으로 많이 성장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한 해였는데, 너무 흥청망청 시간을 썼던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 2020년은 좀 계획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곧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면서 곧 어른이 될 거고 내 인생이 부모님이라는 그늘에서 벗어나 태양빛을 그대로 받게 될 때 내가 어떻게 생활해야 될지도 설계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난 내 삶을 아직 제대로 만들어나갈 자신도 없고 지금 이 순간에 머물고 싶다.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다. 지금이 너무 행복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나태함을 모두 정리하고 이젠 내 삶을 차곡차곡 꾸려나가는 것에 열중해야겠다.

 

(고등학교 1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