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마당 > 글나라우수작품 > 우수작품

우수작품

제목 북클럽 1기 (3차도서 : 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
작성자 김성진 작성일 2019-12-22
작성일 2019-12-22

정치철학가 한나 아렌트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어언 20년전 대학교 도서관에서 우연치 않게 본 ‘인간의 조건’ 이라는 책에서 시작되었다. 


그동안 살면서 대부분의 아렌트의 책은 탐독한 것 같다. 이번에 한국 독서 문화재단에서 책을 지원해 주셔서 재독 하게 되었다.


그럼 21세기에 다시 주목되고 있는 한나 아렌트는 누구일까.


아렌트는 무국적 인간의 범주와 숫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은 현대 정치의 가장 문제적인 징후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 최초의 주요 정치사상가 중 한명이다.


이 책은 아렌트 정치사상을 ‘난민’ ‘악의 평범성’ ‘혁명정신’이라는 큰 주제 아래 9개의 키워드로 나눠 각 꼭지를 구성했다. 


쉽게 써 아렌트 정치사상을 처음 접하는 이들도 입문서로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으면서도, 전 지구적인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담론의 폭이 넓다.



독일 태생의 유대인이었던 한나 아렌트는 양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파리와 뉴욕으로 두 차례 망명한다.


전쟁이 종식한 후에도 독일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 뉴스쿨 대학교에 남아 괄목할 만한 철학적 사유를 펼친다.


아렌트는 나치의 ‘전체주의’ 를 비판한 철학자로 유명하지만, 대학생 시절 자신의 스승이자 기혼자였던 마르틴 하이데거와 사랑을 나눈 사이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20세기 최고의 철학자로 손꼽히는 하이데거는 나치에 가담해 후일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


이처럼 이성으로 풀어헤칠 수 없는 삶의 모순을 껴안은 채 아렌트는 20세기 유럽이 낳은 전체주의를 비판하면 악의 속살을 파고든다.


전체주의란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시하는 사상이다. 


나치 같은 독재 정당이 폭력을 동원해 유럽을 지배하려 했던 것처럼, 아렌트는 먼저 전체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단계 부터 출발한다.


아렌트는 그간의 철학이 여태껏 중시해왔던 사고보다 실생활에서 인간이 수행하는 행동에 비중을 두었다. 그리고 인간의 행동을 노동, 직업, 행위 세가지로 구분 했다.


이 중에서 행위 action 란 인간이 서로 관계를 맺고 말과 행동을 통해 상대방에게 자기를 표현하며 자기기 누구인지 드러내는 것이다. 각양 각생의 사람들이 관여하여 다수성을 띠는 행위야말로 세가지 행동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인간의조건 이라고 아렌트는 생각했다.


인간의 조건➡️ 노동,일 ,활동 ( 활동적 생활 vita activa)


그러나 사람 사이의 일은 앞을 내다볼 수 없고 결과 또한 짐작하기 어렵다. 


소통하는 과정에서 나는 괜찮을지언정 의도치 않게 누군가의 마음을 할퀼 수도 있다. 더구나 한번 마음에 낸 상처는 돌이킬 수 없다.


이런 인관관계의 특성이 반영된 행위는 앞으로 닥칠 일을 내다 볼 수 없는 예측 불가능성, 그리고 본디 상태로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성 , 두가지 약점을 내포한다고 아렌트는 지적한다.


“고통과 노력은 생명을 별달리 해하지 않고도 없앨 수 있는 단순한 증후가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조건이다.


다시말해, 고통과 노력은 오히려 생명 그 자체가 생명을 속박할 필요성과 함께 스스로를 감지하는 양식이다. 따라서 생명이 유한한 인간에게 ‘신들의 안락한 삶’은 오히려 생명 없는 삶일 것이다.”


- 인간의 조건 중에서


또한, 용서가 인간다운 고귀한 행동이라고 역설한 아렌트는 현실에서 그는 차마 용서하기 어려운 사건과 맞닥뜨린다. 그 사건이 바로 아이히만 재판 이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얼마나 악랄하고 극악무도한 사람일지 궁금했다. 그러나 출세욕을 채우려 사무적으로 일을 수행했던 빈약한 사고를 가진 하수인에 지나지 않았다고 평한다. 그리고 일개 보통사람에게서 전대미문의 악의 탄생샜다는 충격에 휩싸여 ‘악의 평범성’을 주제로 내건 수기를 발표한다.


악하지 않은 사람도 악에 가담할 수 있다.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그럴 수 있다. 


악에 나도 모르게 가담하지 않기 위해서는 생각을 해야 한다. 생각을 하고 판단이 섰을 때 판단대로 행동해야 한다.


"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과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무능력은 악이다'  -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아렌트는 홀로코스트와 같은 ‘절대악’ 은 “용서할 수도 벌할 수도 없다” 고 말하며 아이히만의 사형판결을 지지했다.


더욱이 데리다 같은 철학자는 아렌트의 모순성에서 용서의 논리를 심도 있게 발전시키며 “용서란 용서할 수 없는 갓을 용서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극한의 경기 까지 나아갔다.


이는 칸트가 말한 “규제적 이념”과도 같다. 관념으로만 표현 가능한  궁극의 이념이다. 


즉 아렌트는 실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지만 세상의 균형을 위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개념으로 “용서”를 생각 한 것이다.


* 용서는 용서하는 자와 용서 받는 자를 해방 시킨다.  

-  #한나아렌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