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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로맹 가리 (에밀 아자르) - 자기 앞의 생
작성자 조단비 작성일 2019-12-28
작성일 2019-12-28


로맹 가리 (에밀 아자르) 장편소설 《자기 앞의 생》 / 마누엘레 피오르 그림 /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사랑 없이 살 수 있는지를 묻는

세상의 모든 아르튀르에게 선사하는 작품"






삽화에 등장한 모하메드가 이렇듯 작고 어리기에

무력함을 느끼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지만,

결국은 작중에 있는 누구든지 작아 보이던,

작을 수밖에 없던,

작은 이들에 관한 서사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 애는 겨우 세 살이었고, 가진 거라곤 미소밖에 없었으니까. 로자 아줌마는 바나니아는 빈민구제소에 보낼 수 있었을지 몰라도 그 아이의 미소만은 떠나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와 아이의 미소를 떼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별수 없이 둘 다 데리고 있을 수밖에.
p25


 쉬페르가 감정적으로 내게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자, 나는 녀석에게 멋진 삶을 선물해주고 싶어졌다. 가능하다면 나 자신이 살고 싶었던 그런 삶을.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녀석이 보통 개가 아니라 푸들이었다는 점이다.
p34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런 불편도 끼치지 않는데 왜 창녀로 등록된 여자들이 자녀를 키울 수 없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p36


 내가 존경하는 은다 아메데 씨처럼 좋은 포주가 되어 엄마를 돌봐주었을 것이다. 로자 아줌마와 사는 것에도 꽤 만족하고 있었지만, 누군가 더 좋은 사람, 더 가까운 사람을 하나 더 가질 수 있었더라도 마다하지는 않았을 텐데. 빌어먹을, 진짜 엄마를 돌보게 되더라도 로자 아줌마를 버리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은다 씨도 돌보고 있는 여자가 여러 명 아닌가.
p55


 양부모가 될 사람들은 모세에게 유전병이 없는지를 확인하고 싶어 했다. 삼가 말하건대 나중에 곤란을 겪지 않으려면, 아이를 데려다가 정이 들기 전에 그런 문제를 확실하게 해두는 게 당연하다.
p69


 내가 경험한 바로는, 사람이란 자기가 한 말을 스스로 믿게 되고, 또 살아가는 데는 그런 것이 필요한 것 같다.
p72



* 아르튀르 : 주인공 모하메드에게 있어 감정적 친밀함을 느끼는 대상으로 여겨지는 우산의 이름.

로맹 가리의 소설은 편안함을 원하는 독자들에게 불편함으로 해소되는 여운을 남긴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 칠층에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사람들은 각자의 사연을 안고 있다. 흑인, 유태인, 여장남자, 각각의 이유로 맡겨진 아이들. 아이들의 다수는 몸을 파는 여인으로부터 위생적인 처리를 못함으로 인해 태어났다. 주인공 모하메드는 그중의 한 명으로 아이를 맡아 기르는 것으로 생계를 해결하고 있는 로자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처한 상황이나 감수성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기에 남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그는 복지와 법률로부터 멀어진 삶에서 무엇이 정상이고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몸을 파는 여인들과 인종차별, 성에 관한 관념, 육체와 아름다움, 어울림과 못 어울림, 소유와 무소유 등에 관한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 중에 고통을 원해서 짊어지는 사람이 있을까? 비밀 아닌 비밀을 짊어진 《자기 앞의 생》에서는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지만 모든 것을 인정할 수 없고, 공감할 수 없으며 자신의 권익을 위하여 상처를 입히고 상처를 받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자리보전을 위해 분노하고 판단하여 무언가를 낙인찍고 어제와 다른 오늘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는 사회의 단상이 녹아있다. 그렇기에 필명 '에밀 아자르'로 내민 저서는 누구 하나를 위한 일이 아니라 로맹 가리가 바라보고 있는 "행복을 향한 불행이 대물림되며 전염병처럼 퍼져 있는 세상"에 관한 고발이기도 하다.

 《자기 앞의 생》에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죽을 때까지 첫사랑인 자밀라를 잊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하밀 할아버지와 사랑 없는 생존이 가능한지를 묻는 모하메드는 일견 닮아 보인다. 이 둘의 다른 점은 나이에 따라 드러냄과 드러내지 않음의 차이일 뿐이다. 자신을 보살펴준 로자나 때로는 짧게 등장하는 아버지 유세프 카디르와 같이 사랑한다는, 무언가가 결핍되었다는 이유로 감정을 쏟아부으며 남을 해치면서도 그렇지 못하여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평범한 사람들. 그 속에서 소통에 대한 갈구는 단절을 부르고, 죽음으로 치닫는 생애의 단절은 소통을 부르기도 한다. 그렇게 밖에 살아갈 수 없는 혹은 무언가에 얽매여 그것 외의 선택지를 가지고 싶지 않은 이들에게 '남다르다는 것이 비정상적인 일인가'를 묻는다면 타인과 불행을 경쟁하며 무언가를 빼앗아 자신의 손에 얻으려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으면서도 그러므로 세상은 유지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같음과 다름은 서로의 닮음 아래 일어나는 동시다발적인 일에 속해 있다. 로자가 자신의 안락사를 택할 수 없는 병원이 아니라 지하실에서 사망하였고 이후 모하메드가 식음을 전폐하며 세상에 복수를 하려다 말았듯이 여기에서 나오는 '자연법칙'이란 개인의 선택이라는 인위적인 요소와도 결합되어 있다. 이것은 누군가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 따라 세상에 적용될 수 있는 법칙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어쩌면 로자는 죽음에 대한 자신의 두려움 이상으로 "엉덩이를 소중하게 여겨라", "내게 약속해라. 넌 절대로 엉덩이로 벌어먹고 살지 않겠다고." 하며 자신과 같은 삶을 살아가지 않을 것을 모하메드에게 신신당부해온 일처럼, 모하메드가 쉬페르에게 그랬듯이 그가 자신보다 소중해진 나머지 자신을 떠나보냄으로 순환되고 있는 불행의 고리를 끊고, 당장은 자신의 부재에 힘들지 몰라도 그에게 멋진 삶을 선물해주고자 죽음을 맞아하였던 건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있어서 지하실은 자신의 불안과 고통을 잠재울 수 있는 공간이자, 안락사라는 자기만의 선택을 온전하게 만드는 장소였다. 그리고 자기만의 공간에 들어선 모하메드는 언젠가 노쇠하여 사라질 그녀가 세상에 남길 수 있는 보물이었던 것이다.



 처음에 나는 아줌마가 지하실에 보물을 숨겨두고는 도둑이라도 들까 봐 잠을 설쳐가며 불안해하는 줄만 알았다. 사실 내 꿈이 바로 아무도 모르는 곳에 보물을 숨겨두고 필요할 때만 찾아다 쓰는 것이었다. 보물이란 내가 가진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을 안전하게 잘 숨겨놓은 것일 테니까. 나는 로자 아줌마가 열쇠를 어디에 두는지 알아둔 다음 몰래 그곳으로 내려가본 적이 있었다. 보물은 없었다.
p79


 로자 아줌마는 내 건강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아줌마는 내가 사춘기에 접어들었다고 했는데, 그녀가 인류의 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내 몸에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커지곤 했다. 그다음으로 그녀의 큰 걱정거리는 세상의 이모, 고모, 삼촌들이었다. 교통사고로 부모가 다 죽었는데 아이는 맡기 싫고, 그러면서도 동네 사람들이 몰인정하다고 비난할까 봐 고아원에도 못 보내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 이모, 고모, 삼촌들이 아줌마의 집에 데려오는 아이들은 넋이 나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로자 아줌마는 그런 아이들을 '넋빠진 애'라고 불렀는데, 말 그대로 그 애들은 정말 얼이 빠져 있었다. 그러니까 그런 아이들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어떤 것도 알고 싶어 하지 않고 그저 옛날 사람 같아지는 것이다. 아이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태인 셈이다.
p83


 로자 아줌마는 동물들의 세계가 인간세계보다 훨씬 낫다고 했다. 동물들에게는 자연의 법칙이 있기 때문이라나. 특히 암사자의 세계가 그러하단다. 로자 아줌마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암사자를 칭찬했다. 나는 자리에 누워 잠들기 전에 이따금 상상 속에서 초인종 소리를 들었다. 문을 열고 나가보면, 거기에는 새끼들을 돌보기 위해 집안으로 들어오려는 암사자가 한 마리 있었다. 로자 아줌마는 바로 그것이 암사자들의 특성이라고 했다. 암사자들은 새끼를 위해서라면 절대 물러서지 않고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데, 그것이 정글의 법칙이며, 암사자가 새끼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암사자를 신뢰하지 않을 거라고 얘기했다. 나는 거의 매일 밤 나의 암사자를 불러들였다.
p86


 나는 튼튼한 다리로 서 있는 생기 있는 로자 아줌마를 떠올렸다. 나는 좀 더 시간을 거슬러올라 아줌마를 아름다운 처녀로 만들었다. 그러자 눈물이 났다.
p157


"모모야, 항상 명심해라. 엉덩이는 말이다. 사람이 가진 것들 중 가장 신성한 것이란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야.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그 누구도 네 엉덩이를 절대 만지게 하면 안 된다. 내가 죽더라도, 그리고 네가 세상에서 가진 것이 엉덩이뿐이라고 해도 절대로 그런 짓은 하지 마라."
"알아요, 아줌마. 그건 여자들의 직업이에요. 남자는 존경받는 직업을 가져야죠."
우리는 그렇게 한 시간쯤 서로 손을 잡고 앉아 있었다.
그러자 로자 아줌마의 두려움이 조금 가라앉았다.
p177


 사회보장제도에서 나오는 연금이 있다 해도 그 역시 돈 없고 찾아오는 사람 없는 노인이었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그런 것들인데 말이다.(생략) 노인들이 결국 죽게 되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고, 나는 자연의 이치라는 것을 그다지 좋다고 여기지도 않는다.(중략) 마침내 그는 삼층 자기 집으로 내려갔다. 그의 방문으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로자 아줌마는 사람들이 점점 더 자기에게 친절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이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p194


 나는 달려가서 그녀를 껴안았다. 정신이 나갔을 때 똥오줌을 쌌는지 고약한 냄새가 났다. 그녀를 더 꼭 끌어안았다. 혹시 내가 자기 때문에 구역질 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p285

 "병원에서는 나를 억지로 살려놓을 거야. 그런 법이 있단다. 뉘른베르크의 법이지. 너는 너무 어려서 모를 거다." (생략) "네가 내 곁을 떠나갈까 봐 겁이 났단다, 모모야. 그래서 네 나이를 좀 줄였어. 너는 언제나 내 귀여운 아이였단다. 다른 애는 그렇게 사랑해본 적이 없었어. 그런데 네 나이를 세어보니 겁이 났어. 네가 너무 빨리 큰 애가 되는 게 싫었던 거야. 미안하구나"
p288


 물론 내 생각일 뿐이지만, 나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는 가능한 안락사가 왜 노인에게는 금지되어 있는지 말이다.
p328

 나딘 아줌마는 내게 세상을 거꾸로 돌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라몽 의사 아저씨는 내 우산 아르튀르를 찾으러 내가 있던 곳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감정을 쏟을 가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르튀르를 필요로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고, 그래서 내가 몹시 걱정했기 때문이다. 사랑해야 한다.
p343



"사랑하라!"


"이야기 속에서만큼은 현실에 있는 누구도 죽이지 않을 수 있다"며 "때로는 그것이 누군가를 죽이는 일이 되기도 한다"는 저자는 내게 있어 《자기 앞의 생》을 통하여 "남을 상처 입힘으로 자신에게 상처에 대한 문신을 새기며 삶을 울음으로 지새우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정상과 비정상, 나아 보임에 관한 비교와 추구는 일상적인 판단에 속하는 일이지만 누군가를 그 자신으로 보지 않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하나의 잣대로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 안락사와 존중에 관해서도 개인의 기준을 소유의 과정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나보다 더 나아 보이거나 없는 듯이 느껴지는 자들을 향하여 동경 내지는 시기와 동정을 보내기 일쑤이다. 그러나 "누구나가 원하여 문제를 안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은 알고 보면 살기 위해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세상에서 필연적인 희생을 강요받으며 저마다의 결핍과 불행에 묶여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끼리 자신 또는 타인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하지 않아도 될 불행을 자초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지, 어떠한 일들이 소통과 연대라 할 수 있는 일인지를 상기해야 한다고 말하는듯했다. 애정에 목마른 모하메드가 펫 숍에서 훔쳐 온 강아지를 기르다가 결국에는 그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욕망보다 우선시하여 입양을 보내고, 그로 인해 받은 돈을 버렸듯이 사랑과 결핍이 설사 자신을 아프게 할지라도 우리는 도망가지 않고 직면하며 서로를 보살펴야 한다고.

​ 누구나가 겪는 일이라 해서 자신의 고통이 없으리라고는 할 수 없다. 자신에게 있어서는 보잘것없는 고통이 없기에 타인의 고통을 우선시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로맹 가리의 소설에서처럼 사회적 기준과 시선이 서로의 단절을 부르고, 사회적인 역할과 관습에서 벗어나 "누군가가 어떠한 능력을 가지지 못하여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견딜 수 없을 만치 고통을 주기에 떠나가는 것"이 관계라면, 연륜에 의해 감정을 처리하는 방법을 찾아 익숙해졌을 뿐인 어른, 모르리라 여겼으나 알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이 서로를 이 땅에 붙잡아 놓는지에 관한 잊었던 사랑을 떠올릴 수 있다. 아이이기에 반드시 보살핌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건, 또한 그럼에도 보살핌 없이는 누구도 존재할 수 없었으리라는 건, 서로에게 보살핌을 해야 함을 의미하듯이 아이가 어른의 기준에 맞추며 자신을 감내함으로 주변의 어른을 보살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떠올리게 만든다. 예견된 죽음을 앞두고 로자가 원하는 안식을 위한 모하메드의 하얀 거짓말은 그의 필사적인 몸짓과 더불어 나딘 부부에게 털어놓은 슬픔의 실체와 같이 처절한 환경 속에 피어난 한 송이의 희망과도 다름이 없었고 그래서 그의 사랑은 그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의 단면 중에서도 타인을 향한 행동으로 인해 작중에서 독자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메시지를 남긴다. 끝으로 시간을 되돌려 젊은 로자와 자신이 오래도록 함께하였으면 했던 모하메드의 소망은 시간을 보내며 상처를 품고 고스란히 간직하여 바라봄으로, 아픔에 시달렸던 늙고 외로운 로자의 모습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으로 승화된다. 그렇게 타인에게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롤라와 왈룸바씨 일행, 카츠 선생님, 나딘 등을 바라보며 나는 저마다의 사유에 기인한 어려움 속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자 최대한의 가장 선량한 일은 타인을 사랑하려 하는 게 아닌가 했다. 군중 속의 고립처럼 함께한다고 하여 함께가 아닌 일이 있듯이, 떨어져 있는 것은 때로 붙어 있는 일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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