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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품

제목 변두리지만 따뜻한, 도심이지만 차가운
작성자 서지호 작성일 2020-03-22
작성일 2020-03-22

이 책은 도서관을 가며 몇 번 보긴 했지만 별 관심은 없는 책이었다. 그런데 유은실 작가의 <2미터 그리고 48시간>이라는 책을 읽고 작가가 쓴 다른 책에 흥미가 생겨 한 번 표지를 둘러보고 책을 훑어봤다.

무너진다. 끝없이 무너진다. 이제 끝일 거라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무너진다. 그리고 계속해서 일어난다.’ 책을 훑다가 발견한 이 구절이 이 책을 읽게 만들었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변두리는 1900년대 후반 서울 변두리 동네를 배경으로, 절망적인 삶 속에서도 서로 의지하며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황룡동 사람들의 터전인 도살장과 부산물 시장을 배경으로 한다. 황룡동에 사는 가난하고 척박한 이들의 삶은 어찌 보면 한 편의 비극에 가깝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삶을 받아들이고 살아나간다.

 

이 책의 등장인물인 수원과 동생 수길은 도살장 초원을 지키는 카우보이수원에 있는 과수원이라는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누나 수원은 도살장을 초원이라 여기며 카우보이라는 꿈을 키우는 동생 수원을 보며 역시 아직 어려, 동심이 살아있군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수원의 꿈인 수원에 있는 과수원도 한낱 꿈에 불과한 희망사항 이었다.

이 두 환상은 현실과 맞물려가며, 그리고 부딪혀가며 존재하다 결국, 산산조각난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었던 수원과 수길이 감당하기에 삶의 무게는, 척박하고 절망적인 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현실의 무게는 버틸 수 없을 만큼 무거웠고 아팠다. 그래서 이들은 꿈에 의지하여 환상을 만들며 현실을 버텨낸다. 하지만 결국 그 환상은 현실의 무게보다도 더 날카롭고 묵직한 상처가 되어 이들에게 돌아왔다. 결국, 환상은 환상이었고, 환상이 남긴 건 상처 뿐이었다.

 

어차피 깨져버릴 환상이라면 무의미하지 않을까? 환상을 갖는다는 건 결국 현실 도피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며 이 책을 읽어 나갔다. 그리고 옳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의 한 구절처럼.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하지만 결국 나는 환상이 깨지는 일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충분히 가치 있고 소중하다, 깨졌을 때 아픈 만큼, 그만큼 아름답다.

 

그렇게 아픈 것이 소중하다고 여겨진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닐까?

일단 환상을 가지고 살아갈 때 현실 도피든 뭐든 더 즐겁게 삶을 살아가는 수원이와 수길의 모습, 그리고 14년 살아본 나의 경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와 모습을 보며 환상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눈 앞에 펼쳐진 캄캄하고 두려운, 막막한 현실보다는 때로는 환상으로써 현실에서 벗어나고, 마주한 현실을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현실을 마주하며 한숨짓고 눈물흘리는 것보단 낫지 않으니까. 환상이 깨질 때 생길 상처,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상, 이룰 수 없는 꿈은 우리에게 힘든 하루하루를 살아갈 도피처가 되어 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꿈꾸며 살아가고 그 상처에 아파하는 것이다.

또다른 이유는 바로 성장이다. 아픈 만큼 성장한다는 말은 헛소리가 아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수많은 고민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만 결국 그런 과정을 통해 이 거친 세상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고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꿈을, 그렇지만 역시 환상인 꿈을 꾸며 또 다시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사람들이 마주하는 상처의 크기는 제각각이지만 아무리 작은 상처여도 아프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있다. 아픈 만큼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희망.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희망.

 

각자의 목적지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어디론가 향하는 건 분명하다. 제각각의 상처와 고통, 희망과 다짐을 가진 채 그렇게 어디론가 걸어 나간다. 그러다가 또 다른 상처와 고통을 마주치다가 결국은 목적지라고 여겨지는 곳에서 달콤한 기분을 맛보기도 하면서. 삶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소박하지만 너무 간절한 희망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히고.

하지만 꿋꿋하게 다시 일어나 그들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삶이란 그리 거창한게 아닌 것이다.

 

수원의 동네, 황룡동은 사람들에게 서울에 있는 변두리 라고 불리었다. 하지만 황룡동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 변두리가 삶의 중심이다.

 

 

"참나무는 떨켜가 없어. 그래서 누군가 말라 죽은 잎을 뜯어주지 않으면, 봄이 와 새싹이 밀어낼 때까지 그 잎을 매달고 있어. 바보 같지?"

잎이 떨어지기 전 잎자루에는 떨켜가 만들어지는데, 떨켜가 만들어진 곳을 경계로 잎이 떨어지며, 떨어진 곳에는 병균 등이 들어오지 못하고 물이나 양분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보호하는 코르크층이 만들어진다. 떨켜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늙어 쓸모없는 잎이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매달려 있기 때문에 새 잎이 나오지 못하며, 강한 힘이 주어져서 떨어질 때에는 잎이 식물의 다른 조직과 함께 떨어지므로 식물의 다른 조직들이 상하기 쉽다.

이 동네 사람들은 떨켜가 없어도, 때로는 상처를 밀어내주고 때로는 보듬어주면서 봄이 올 때까지 함께 겨울을 난다. 서로가 떨켜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변두리를 삶의 중심지라고 여기며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을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변두리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지역의 가장자리가 되는 곳, 어떤 물건의 가장자리이다.

물론 황룡동은 서울시 외곽에 있는, 가장자리가 되는 변두리이지만 그곳에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변두리라는 이름은 어울리지 않는다.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시점에서 드는 생각은, 오히려 황룡동의 모습보다 그 힘들었던 1900년대 후반 변두리의 모습보다 현재 우리의 모습이 더 차갑고 아프다는 생각이다. 변두리였지만, 서로를 위한 마음은 따뜻했던 황룡동 사람들의 모습과는 달리 현재 우리는 서로를 경계하고, 불안해하고, 분노한다. 또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휴대폰등을 이용한 소통을 한다. 물론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서로를 경계하고 비난하는 모습을 보며, 또 기계를 통해 소통하는 모습을 보며 참 차갑다고 생각했다. 지금 밖의 날씨는 화창한 봄날이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 같다.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주는, 따뜻한 모습을, 딱 우리의 체온, 건강하다는 표시인 36.5도 만큼만 따뜻함을 가지고 서로를 대한다면 우리는 금방 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중1 서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