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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품

제목 안간힘 / 유병록
작성자 노문희 작성일 2020-05-05
작성일 2020-05-05


슬픔이 오늘을 통과할 때 『안간힘』


그리고 나는 아들을 잃었다.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이제 행복한 날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고 확신했다. 그렇다고 모든 걸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행복 대신 보람이 있는 삶을 살기로 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로, 약속했다. (201~202페이지)


내가 감당해야 할 가장 큰 슬픔을 상상하곤 한다. 그 슬픔의 대상이 누구일까, 그 슬픔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막상 내 앞에 닥친 깊은 슬픔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 슬픔의 끝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내가 경험하는 슬픔의 크기는 점점 커갔다. 그건 나이를 먹어가기 때문일 수도 있고, 살면서 책임지고 겪어야 할 무게가 커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렸을 때 우리가 생각하는 슬픔은 고작 숙제를 안 해가서 선생님께 혼나는 정도에서 시작하는 경우도 있지 않았던가. 그 슬픔이 크기를 키워 와서, 지금은 숙제 정도로 슬픔을 가늠하지 않는다. 사랑하거나 아끼는 사람과 죽음으로의 이별 같은 일을 큰 슬픔이라고 말한다. 이 정도의 기준을 슬픔이라고 말한다면, 글쎄, 나는 아직 그 슬픔을 경험하지 못했다. 언제가 닥칠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은 그 슬픔을 상상하면서도, 설마 그 슬픔의 깊이가 이미 경험한 사람만 하겠는가. 저자가 어린 아들의 죽음을 감당하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잘 이겨내기를, 잘 버티고 무사히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드는 건, 언젠가 내가 겪을 그 시간을 마주하는 느낌이 들어서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불행의 순간이겠지만, 언제까지 그 슬픔을 붙잡고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안간힘을 버티며 살아간다. 슬픔도 이겨내고, 불행도 밀어내려고 발버둥 치면서 말이다.


어떤 침묵은 외면이겠지만, 어떤 침묵은 그 어떤 위로보다도 따뜻하다. (37페이지)


한 번도 예상한 적 없던 슬픔이 찾아왔다. 저자는 아들을 잃었다.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고통이 그를 엄습했고, 그만의 방식으로 슬픔을 이겨내는 중이다. 누구나 각자의 슬픔이 가장 크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면서도 저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대로 다가오는 건, 언젠가 내가 했던 생각들이 그대로 비쳐서다. 사실 나는 누군가에게 위로하는 게 정말 어렵다. 상대의 고통을 공감하고 이해하지만, 그 순간 내가 건넬 수 있는 마음이 어설픈 위로로 비칠까 봐서다. 그런 마음을 저자는 염려한다. 그가 겪은 아픔이 주변 사람들에게 퍼질까 걱정하고, 그들이 자기에게 닥친 불행을 금방 또 잊을 거로 생각해서 서운함을 비춘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다르지 않다. 내 일이니까, 다른 사람들이 나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걱정한다고 해서 그들의 일이 되지 않는다. 똑같은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막연하게 공감하는 슬픔으로 여길 수도 있다. 기꺼이 속내를 털어놓지 못하는 불편함은 상대를 향한 서운함으로 저장된다. 게다가 내가 겪는 슬픔의 분위기가 그들에게까지 옮아간다면, 나 하나 때문에 그들의 감정이 내내 슬픈 채로 머물러야 한다는 게 또 미안해진다. 그래서 점점 주변과의 거리를 두게 된다. 내 마음이 감당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그들의 웃음이 가득한 일상에 나의 아픔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슬픔은 어떻게 다가오고,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통과하는지 그대로 보여주는 글이다. 어린 아들의 죽음은 그에게 슬픔이 무엇인지 그대로 가슴에 꽂아주었고, 함께하는 아내만이 자기의 고통을 공감해주리라 믿었지만 그마저도 온전하게 같지 않았다. 부부의 아들이었지만, 그 아들을 같이 잃었지만, 그 고통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미세하게 달랐다. 저자는 그런 아내에게까지 서운했을 것이다. '영원히 지금 그대로의 슬픔을 당신과 공유한다고 믿었는데, 그 슬픔을 벗어나는 방식이 당신과 내가 이렇게 달랐구나' 싶은 순간, 마치 아내의 슬픔이 더 작은 건 아닐까 하는 오해도 하지 않았을까? 듣다 보면 인간의 가장 기본이고 바탕이 되는 마음들이 보인다. 이것저것 재는 것이 아닌, 가장 순수했던 마음 그대로 돌아간 것만 같다. 내 마음과 같으면 그렇게 이해해주는 게 고맙고, 내 마음과 다르면 괜한 미움과 서운함이 겹쳐 감정이 멀어지려고 하는 일들을 보면서, 그 상황과 마음이 무엇인지 알 것도 같으면서도 조금은 더 성장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중심을 잡고 슬픔을 끌어안는 방법은 어떤 게 있을까? 그 방법은 각자 다를 수도 있지만, 저자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아들과 함께한 시간 그 자체를 기억하는 것이었다. 아들의 사망신고를 하면서 죽은 이가 남긴 기록을 생각한다. 아직 학교에 다닌 적도, 돈을 벌어본 적도 없는 아들은 어떤 기록을 남겼을까. 공식적이지는 않지만, 저자가 부모로서 기억하는 모든 것은 아들이 남긴 게 된다. 아들이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 편안하게 잠들었던 작은 침대, 살던 집의 곳곳에서 풍기는 아들의 자국들. 그 공간을 떠나면 아들의 흔적을 금방 지우고 슬픔도 소멸할까 싶지만, 저자는 굳이 그곳을 떠나면서 아들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자기에게 다가온 슬픔을 마주하며 기꺼이 끌어안았다. 우리 삶은 슬픔을 외면해도 계속되니까. 그러니까 굳이 그 아픔을 빨리 지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시간이 흐르는 게 당연한 것처럼, 슬픔도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게 방법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가 슬픔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전부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이 꼭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의 말을, 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따라해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이해와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77페이지)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은 말에서 먼저 드러나기 마련이다. 지위가 낮다는 이유로,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함부로 반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의 존중을 얻는 방법은 높은 지위가 아니라, 많은 나이가 아니라, 깊고 넓은 마음뿐이다. (147페이지)


나에게 다가온 슬픔을 잊으려고 애쓰지 않고 간직하면서 삶을 유지하는 이야기 같다. 세상을 떠난 아들을 기억하면서 슬픔에 빠져있기보다는, 아들의 빈자리만큼 더 나은 삶을 채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그가 맞이한 비극에 주저앉지 않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면서 아들을 가슴속에 새기고 있었다. 아내와의 시간을 곱씹으며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고, 그의 성장을 함께한 가족에 대한 애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그가 처음 겪은 상실은 존경의 의미를 기억하게 했다. 사회생활을 하며 보고 느꼈던 일들에 그의 다짐을 더 하고, 관계를 더 현명하게 이어가는 방식을 경험한다. 매 순간 삶의 진지한 태도를 보여주는 문장에, 그가 안간힘을 내며 나아가는 모습은 이 책을 읽는 우리에게 또 다른 위로가 된다.


그 대상을 잊는 게 반드시 슬픔을 지우는 방법은 아닐 테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에게 다가온 슬픔을 극복하면서, 슬픔을 대하는 방식이 반드시 한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배운다. 떠나간 것을 잊고 또 다른 것들로 삶을 채우면서 나아가는 일이 때로는 버거울지 모르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이 그렇게 한 걸음 내디디고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