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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등어 :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바다처럼 짰다 / 고수리
작성자 노문희 작성일 2021-03-15
작성일 2021-03-15

 

, 잘 들어라. 잘 들으래도 너는 듣지 않겠지만. 인생이 그렇다. 부모가 중요하다고 여러 번 일러줄 때는 귀찮고 부아가 나서 잔소리라고만 여겼던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새록새록 중요하게 느껴지고 중요하게 나타난단다. 그걸 깨닫고 배우고 싶어서 달려가면 부모는 없어. 그 맛도 이미 없고. 그게 얼마나 허망한 마음인지 아니.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부모가 중요하다 하는 것들에 대해 조금은, 아니 조금만 너그럽게 돌아봤으면 좋겠어. 엄마가 살아 있을 때 말이야.” (99~100페이지, 엄마가 쥐여준 보따리를 먹기만 할 때는 몰랐지, 가자미식해)

 

이번 명절에는 전을 부치지 않았다. 가족이 오지 않기도 했지만, 명절 연휴 전에 퇴원한 엄마 때문이기도 하다. 통깁스한 다리로 괜히 이것저것 하신다고 몸을 움직이실까 봐, 본인의 불편한 몸이 나를 힘들게 한다고 여기며 조심하려는 게 눈에 보인다. 명절이라고 꼭 전을 부쳐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 엄마의 음식을 떠올리면 먹고 싶은 게 있다. 전라도에서 유명한 홍어회 무침을 먹지 못하는 식구들 때문에, 엄마가 항상 해주시던 것은 오징어회 무침이다. 맛은 비슷하다. 주재료가 홍어에서 데친 오징어로 바뀐 것뿐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메뉴다. 나도 엄마의 어깨너머로 본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무리 흉내를 내도, 맛집이라고 소문난 반찬가게에서도 파는 그 음식을 맛있게 먹은 적이 없다. 오직 엄마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그 맛. 언젠가는 동생이 오징어회 무침이 너무 먹고 싶어서 반찬가게에서 사 왔는데 도저히 맛이 안 나서 먹다가 결국 버렸다고 얘기했다. 엄마는 그 말을 듣고 오징어를 사 와서 바로 만들어서 택배로 보냈다지. 그것도 다 엄마가 건강할 때 얘기다. 언젠가 우리 곁에서 사라질 엄마, 지금처럼 아픈 몸으로 자식의 돌봄을 받는 엄마라면 이제 더는 엄마의 손맛을 즐길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있을, 기억에서 소환할 수밖에 없는 그 맛. 저자는 저자와 엄마, 엄마 엄마의 마음을 이어온 그 맛에 관해 이야기한다. 특히 바닷가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그 특유의 짠맛이 문장 곳곳에서 묻어난다. 읽는 내내 코끝으로 그 바닷냄새가 들어오는 것만 같다. (미안하지만 나는 좋아하지 않는 그 맛 말이다. ^^) 바다에서 얻은 것들로 힘들게 자식들을 키운 할머니, 그 할머니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음식들을 먹고 자란 엄마, 그 입맛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딸. 이들의 삶과 일상에 함께한 음식 이야기를 듣다 보면, 대물림하는 것은 유산만이 아니라 입맛이기도 하다는 게 새삼스럽다. 닮아간다는 것. 마음이 연결되지 않으면 불가능할 그 닮음이 음식에서도 그대로 보인다.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마음을 음식에 담아 먹이고 키웠다. 추운 겨울에도 바다에 뛰어들어 해산물을 잡아서 올라오고, 생계를 위해 내다 팔면서도 내 자식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은 남겨두는 일도 빼놓지 않았다. 할머니의 그 마음을 엄마도 그대로 닮았겠지. 그 사랑 그대로 먹고 자랐으니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저자가 자라면서 받은 엄마의 밥상에서도, 엄마가 된 저자가 차려내는 밥상에서도 빠지지 않는 고등어는 3대에 걸친 이 가족의 사랑이었으리라.

 

이들이 먹고 자란 짜고 비릿한 바다 음식 앞에서 누구라도 울컥할 수밖에 없다. 자연에서 걷어 올린 것으로 내 자식을 키워내고 생계를 이어갔으며, 엄마가 되고 보니 엄마의 고됨을 너무 잘 알아서 더 이해하고 애틋할 수밖에 없는 딸의 마음을 그려내는 문장 앞에서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있을까. 부모와 털어져 타지에서 자취생활을 하면서도 차려 먹는 밥상을 기어코 유지했던 것은 당연하게 몸에 밴 습관이었을 테다. 처음에는 귀찮고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아무렇게나 채웠던 끼니가, 내 몸과 엄마의 밥상을 생각하니 저절로 따라서 하게 되는 이상한 마음. 이들이 하나씩 차려냈던 밥상은 그냥 음식이 아니다. 모녀 사이가 대물림하면서 나눈 다정한 마음 그대로였다. 말로 다 하지 못한 그 마음을 눈앞의 음식에서 읽어내는 능력을 발휘하는 건, 마음이 이어진 관계이기 때문일 거다. 제주 해녀 출신 할머니가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바다 음식, 강원도 생활이 오래된 엄마의 자연 음식, 그 두 가지를 골고루 만들어내는 저자의 음식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노릇하게 고등어를 굽고 살을 발라 밥 한 숟가락 위에 올려주는 건 엄마의 마음밖에 없는 듯하다. 그 짭조름한 맛이 문장 곳곳에 새겨져 있다. 마치 생선 한번 구워 먹고 온 집안에 냄새가 배여 쉽게 빠지지 않는 어느 날의 풍경 같다. 읽으면서 아쉽고 또 아쉬웠던 게 고등어를 구워 올려주는 밥상 풍경이었다. 언젠가부터 집안에 냄새가 배니까, 아무리 손질 잘하고 환기 잘하면서 구워도 오래가는 그 특유의 생선구이 냄새 때문에 집에서는 생선을 구워 먹지 않게 됐다. 생선조림 역시 마찬가지. 생선을 좋아하는 엄마도 그 냄새 때문에 먹는 걸 포기할 정도였으니. 그래서 가끔 근처의 생선구이 집에 가서 먹고 오곤 하는데, 이 책을 읽다 보면 괜히 냉동실에 넣어둔 굴비라도 한번 구워 먹어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시를 잘 발라낸 생선 살 몇 조각이면 밥 한 그릇 뚝딱인데, . 그것뿐이면 다행인데, 저자가 기억에서 소환하는 음식들 대부분 입에 침이 고이게 한다. 건강에는 그다지 좋지 않을, 맵고 짜서 자극적인 입맛을 그대로 불러온다.

 

몰랐던 것들도 알게 되는 이상한 책이기도 하다. ‘보리토시의 동해안 사투리라고 한다. 나도 처음 들었다. 이곳 전라도에서 부추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같은 것을 두고 저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른 건 왜일까, 언제부터 그랬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프리마 우유가 무슨 브랜드인가 했는데, 어릴 적에 할머니가 프리마와 설탕을 넣어 타준 우유라고 한다. 잠깐 프리마가 뭘까 생각하다가 떠올랐다. 요즘의 커피믹스를 수고스럽게(?) 타서 먹던 재료. ^^ 우리 엄마의 커피 황금비율은 ‘2(커피) : 2(프리마) : 2(설탕)’이었다. 저자의 할머니가 커피를 빼고 타준 게 프리마 우유였다고. 빙 둘러앉아 해물파전을 부치면서 명절의 고단함을 음식과 수다로 풀어내던 이모들의 등장은 시끌벅적했다. , 생각만 해도 푸짐하다. 음식도 사람도. 그렇게 모여서 만들어 먹어야 맛있는데. 언젠가부터 단출해지고 조용해지는 게 우리 집 명절인데, 올해 설날은 정말 고요했던 기억에 괜히 서글퍼진다. 저자의 할머니가 엄마의 손에 쥐여준 보따리 속에 맛있게 머물렀던 가자미식해의 추억은 눈물이 난다. 언제까지나 엄마가 그 자리에서 가자미식해를 해줄 거로 여겼을까. 미처 엄마에게 배워두지 못한 게 후회스럽다는 이 모녀의 말에 계속 눈물이 났다. 어디서든 쉽게 먹을 수 있는 가자미식해가 기억 속에 머물던 그 맛이 아니라는 게 아파서 말이다.

 

살면서 한 번이라도 이런 음식을 만나본 사람은 알 것이다. 특별할 것 없는 음식이 평생 기억에 남은 이유가 단순히 맛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어떤 음식은 손으로 만드는 위로 같다. 재료를 구하고 씻고 다듬고 만들어 전하는 수고로움과 누군가를 걱정하고 아끼는 마음이 한데 섞인 맛깔스러운 위로. 그런 음식을 입으로 넘겼을 때 나는 처음으로 미음을 먹어본 아기처럼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저 고맙습니다, 인사하며 울 것 같은 마음으로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세상에는 이런 음식도, 이런 위로도 있다. (48~49페이지, 아랫집이랑 나눠 먹으렴, 김치)

 

슬픈 일에도 웃을 수 있고 기쁜 일에도 울 수 있는 것. 기꺼이 같이 울어줄 수 있는 것. 그럴 수도 있지 헤아려보는 것. 심각하다가도 툭툭 털고 일어나 밥을 먹는 것. 내가 지어 내가 먹는 것. 나눠주는 것. 힘차게 껴안아 주는 것. 씩씩한 것. 내가 가진 기질들은 모두 우리 집 여자들에게서 배운 것들이었다. (68~69페이지, 웃음도 울음도 쉽고 다정하여, 해물파전)

 

단순히 음식 이야기에 머물지 않아서 더 애틋한 이야기로 남을 듯하다. 저자 엄마의 자매들은 자라면서 할머니의 일을 함께했다. 김을 만들고, 할머니가 따온 미역을 정리하는 일을 도우면서 생계를 위한 부모의 고단함을 체험했다. 어려웠던 형편에 누구라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 힘이 들었을 부모에게 조금이나마 보태려는 마음이 고맙다. 그래서일까. 자매들 누구도 가난을 푸념하며 원망하지 않았을 것 같다. 함께 모이면 수다 떨고 추억 곱씹으며 같이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기에도 바쁘다는 것을 진즉에 알았던 듯하다. 저자 역시 성장의 시간에 함께한 음식을 소소하게 기억하고 새긴다. 일의 고단함을 그대로 풀어냈던 대구탕의 개운함, 동생과 둘이서 혼밥의 시간을 달랬던 달걀밥, ‘꼬아내서끓여야만 제맛을 내는 미역국 레시피처럼, 삶의 모든 순간에 음식이 있었다.

 

사랑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가 아닐까? 한입이라도 더 넣어주고 싶고, 맛있는 거 먹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고, 손수 차려서 밥 한 끼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 사랑이 아니면 뭐냐고. 삶의 희로애락이 그대로 담긴 음식 앞에서 세월을 느끼고 엄마를 생각한다. 그 음식들은 대부분 짠맛과 동의어처럼 들렸고, 이 가족에게 너무 잘 어울리는 맛이었다. 그 짠맛은 바닷냄새 그대로이기도 했고, 고단한 일상에서 흐르는 눈물의 맛이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엄마의 인생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맛이기도 할 테다. 엄마 생각만 하면 짠하니까. (.) 할머니에서 엄마, 저자에 이르는 한 가족의 과거와 현재를 짭짜름한 맛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누구라도 비슷할 평범한 일상과 익숙하게 매일 먹는 밥이 의미를 담은 채로 남겨졌다. 사랑스럽고, 그립고, 눈물 나고, 애틋해서, 특별했다. 즐거울 수만은 없는 인생이겠지만, 아프기만 한 인생도 아닐 것이다. 내가 아직 엄마 나이만큼 살아보려면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니 보이는 것이 점점 많아진다.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는 보고 싶고 그리워질 대상이 되기도 하더라.

 

엄마. 엄마.

엄마랑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엄마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기억하고 싶었다. 헤어질 때마다 항구식당에서 먹었던 맵고 짠한 우리의 작별 식사를, 언제나 버스가 떠날 때까지 창밖에서 손 흔들어주던 엄마의 얼굴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헤어질 땐 맵고 짠하게 안녕.

맛있는 음식들 쟁여 먹은 힘으로 열심히 살다가 돌아올게. (146~147페이지, 헤어질 땐 맵고 짠하게 안녕, 잡세기탕)

 

문장에서, 활자에서 음식이 그대로 보이는 착각을 할 정도로 맛있게 읽었다. 짠맛과 비린내가 이렇게 먹음직스럽게 다가올 수 있다니... 이 밤에 내일 아침 밥상에 올릴 생선구이를 떠올리며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킨다. 온 집안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꼭 구워 먹을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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