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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식기들의 투정
작성자 오유정 작성일 2004-01-10
작성일 2004-01-10
경기도 양주시 은봉초등학교 5학년 오유정


제목: 식기들의 투정

어느 한가한 오후, 어떤 집안의 부엌에서는 시끄럽습니다.
"싫다니까요!!!!싫어요!!싫어!" 조그만 꼬마 그릇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습니다. "엄마, 난 정말 싫어요. 맨날 사람들 밥상에 올라갔다가 맛없는 세제가 섞인 설거지통에 들어갔다가..., 너무너무 싫단 말이에요~!!"
그래요. 꼬마 그릇은 날마다 똑같이 사람들의 숟가락에 땡땡하고 부딪치고, 뽀글뽀글 거품 속에서 매일 샤워하고, 또 꺼끌꺼끌한 수세미에 빡빡 문질러지는 것이  싫증이 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엄마그릇이 꼬마그릇을 타이르며 말했습니다. "얘야, 너무 투정부리지 마라, 우리는 운명적으로 그릇으로 태어났는데, 하지만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이잖니, 엄마는 이 일이 너무 보람스러워, 엄마는 말야, 매일매일 뜨거운 불에 왔다갔다 거리는 냄비나 뚝배기로 태어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단다."라고 말했어요.
그래도 꼬마그릇은 화가 아직 안 풀렸는지 계속 투덜거렸어요. "엄마, 전 그래도 이젠 좀 다른일좀 하고 싶어요. 엄마는 매일 똑같은 일만 하는 게 지겹지 않으세요?" 꼬마그릇의 말에 엄마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꼬마그릇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였으니까요. 그 때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주걱 아가씨가 말을 이었습니다.
"맞아요. 나도 사실 매일 밥을 퍼 담는 일이 지겨워요. 어떻게 숙녀한테 이런 일을 시키나요?! 하필이면 밥이 제일 뜨거울 때 밥통 속으로 들어가서 휘휘 젓고, 밥을 다 퍼 담은 다음엔 톡톡 두들겨 맞잖아요. 절 이렇게 만드신 하느님이 원망스럽다구요! 억울해요!"
그러자 이번에는 냄비 아저씨가 뚜껑을 들썩들썩 거리며 말했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왜 맨날 나만 뜨거운 불 위에 있어야 되요? 전에는 아주 반짝반짝하게 깨끗했는데, 제 엉덩이 좀 보시라구요! 아주 시커멓게 타 버렸다구요!"
그 다음엔 여기저기에서 모두들 화가난 얼굴로 한마디씩 불평을 늘어놨습니다.
"난 정말 국을 퍼 담는 일이 싫어요."
그건 국자 아저씨의 말이었어요.
"난 이제 물만 먹는 일에 지쳤다구요. 완전 물배 라니까요."
이건 주전자 아줌마의 말이었어요.
"내가 왜 맨날 음식과 도마를 찍으면서 춤을 춰야되나요?"
이건 부엌칼 언니의 말이었구요,
"나는 뭐 맨날 칼에 얻어맞는 게 좋은 줄 알아요?
이건 도마 형의 말이었어요.
"나도요!"
"나도!"
"나도!"
"나도!"
이렇게 다들 펄쩍펄쩍 뛰며 화를 내서 갑자기 부엌이 온통 시끄러워졌어요.
그러자 그 때까지 잠자코 듣고 있던 밥상 할아버지가 나섰어요. "자,자, 조용히! 그렇게 불만이 많으면, 정말로 일을 바꿔서 해보는 건 어때요?"
"좋소! 좋아요!"
"그것 참 좋은 생각이에요, 할아버지."
이렇게 해서 오늘 딱 하루만 일을 서로 바꿔 하기로 했어요.
밥상 할아버지만 빼고요. 밥상할아버지는 튼튼한 다리를 가져서 별로 불평이 없었어요. 어쩔 때는 공부하는 책상도 되고, 팔씨름이나 바둑 같은 놀이를 할 때도 사용되니까요.
주인 아줌마는 식기들의 말을 듣고서는 "그래? 그럼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 이번 한번만이다! 후회나 하지 말아라." 하고는, 마침내 상을 차리기 시작했어요. 주인 아줌마는 제일 먼저 주전자에다 밥을 지었어요. "아하..... 기분 좋다! 음....., 밥 익는 냄새가 아주 구수한걸? 매일 물만 마시는 것보단 낳다." 주전자는 뚜껑을 달싹거리며 좋아했어요. 그런데 조금 있으니까 밥물이 주둥이로 부글부글 넘쳐흘렀어요. "아이고, 뜨거워!!!!! 아이고, 주전자 살려~"
주전자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꾹 참았어요. 하지만 밥물이 다 흘러넘쳐서 밥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답니다.
그 다음에는 숟가락이 야채를 썰기 시작했어요.
"낑낑! 끙끙!"
칼 처럼 예쁘고 가지런하게 썰기 위해서는 온 힘을 다 했지만, 야채는 볼품없는 모양으로 잘라지면서 이리저리 툭툭 튀었어요. 그 사이에 부엌칼은 숟가락 밑에서 "아야! 아야!"소리를 지르고 있었지요.
보글보글 찌개를 끓이던 밥통은, "킁킁.. 아이고, 이게 무슨 냄새야?" 하며 코를 꼭 틀어막았어요. 하얗고 구수한 밥 냄새만 맡던 밥통이 온갖 야채와 고기가 익는 냄새를 맡아야 하니 못 참을 지경이었지요.
주걱 대신 국자가 밥을 퍼 담으니까 '퉁퉁퉁! 탕탕탕!' 자꾸만 더 세 개 두들겨 맞아야 했고, 국자 대신 주걱이 국을 퍼 담으니까 국물이 자꾸 옆으로 흘러서 국을 못 담았죠.
그뿐이 아니었어요. 컵에 밥을 담았더니, 다 먹고 또 담고, 다 먹고 또 담고........, 냄비에다 국을 담았더니, 왔다 갔다 하던 사람 손이 냄비 귀에 걸려서 왈칵 쏟아졌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밥을 다 먹는 동안, 도마는 내내 그 뜨거운 뚝배기를 떠받치고 있느라 얼굴을 모두 데이고 말았어요.
"아이고, 안되겠다. 너무 힘들어, 그냥 우리가 하던 대로, 맡은 일이나 열심히 해야겠어!"
"맞아, 맞아요. 누가 아니래요?"
처음에 불만을 품었던 꼬마 그릇도 후회했어요. 남은 반찬들을 담고서 랩에 씌워진 채 냉장고 속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어야 했으니까요.
꼬마 그릇은 한 나절이 지난 뒤에야 냉장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어요.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런데 이번에는 전자레인지 속에 들어가 뜨겁게 달궈지기까지 했답니다.
일을 다 마친 다음 찬장에 가지런히 앉아 쉬고 있을 때, 엄마 그릇이 조용히 물었습니다. "어때, 더 쉬웠어? 그러길래 우린 그냥 우리 할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
꼬마 그릇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하던 꼬마 그릇은 아무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를 지었답니다. '어쩌다가 한번 이렇게 일을 바꿔서 해보는 것도 참 재미있는걸?'
그렇게 생각하면서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