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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품

제목 한국민속촌을 찾아서
작성자 常天 작성일 2003-05-30
작성일 2003-05-30
봄소풍기행
한국민속촌을 찾아서
" 따스한 봄날에 머무는 향수(鄕愁)"
2003. 5.16
글쓴이 常天 허응만

1. 글의 배경
학창시절의 추억은 삶의 기운을 돋는다. 마음이 기쁠 때나 서글플 때 한켠에 남아있는 사연들이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이는 생활의 활력소로 때론 심성을 안정시키는 힘을 가져다 준다. 침착한 기운으로 주변에 머물며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인생을 설계한다. 만남을 통한 서로간의 속내를 풀고 마음을 열어서 묻어두었던 잘된 감정이나 서운한 감정들을 정리하기도 한다. 따라서 야외활동을 심성교육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한국 민속촌'을 학생제군들과 함께 돌아보고자 함이다.
2.  소풍의 출발  
화창한 봄날이다. 서둘러 집을 나와 학교사무실에 들어오니 아침 7시 50분경이다. 깨끗이 정돈된 학교정원을 돌아본즉 설레는 마음이 가라앉는다.  운동장 저편에 일렬로 들어선 버스들이 이채(異彩)롭다. 학생들과 담임선생님은 저마다 소속을 찾느라 분주하다. 간편 차림에 삼삼오오 짝을 이뤄 운동장에 머물며 정담을 나누고있는 모습이 정겨움을 더해주는 듯하다. 이윽고 준비된 버스에 올라타고 운동장을 하나둘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뒤늦게 허둥대는 학생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간밤에 설레임으로 잠을 설쳤음인지 눈매가 무거운 듯하다. 담임선생님의 역성과 함께 무안함으로 일그러진 얼굴표정이다. 버스 안은 미리 온 급우들의 야유와 핑계로 범벅되어  만남의 반가움과 설레임으로 가득하다. 버스는 펼쳐진 들녘을 지나며 경부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학생들은 마지막 3학년 봄소풍임을 아쉬워하는 듯 말없이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일부는 들려오는 핸드폰소리에 자신의 사연을 나누고, 때론 음악파일로 생성된 애창곡을 들으며 앞날에 대한 구상을 하는 듯하다. 기흥I/C를 나와 신갈로를 따라서 민속촌 입구에 당도했다. 주변은 산업화의 물결로 외곽도로와 아파트촌으로 조성되어 실망감(?)으로 변한다. 오히려 한적한 이곳에 옛 고을의 정취를 자아내야할진대 말이다. 차에서 내려 입구에 모였다. 입구엔 한복으로 차려입은 연세가 지긋한 남자 안내원에게 다가서 간단한 상견례를 하고 아쉬운 감정(?)을 말하니, 이르기를 "산업화의 물결이고 이 또한 훗날 옛 미물이 될 것인데, 아쉽지만 받아들여야 할 것이 아니겠소?"라 한다. 명답이다. 곁들여 말하길 "이곳은 우리들의 고향이요, 마음의 고향이지요."라 함에 고개를 끄덕이는 나 자신도 빠져들고 있었다.  민속촌 입구에서 매표원과 선생님들의 정겨운 말과 노고함을 전하며 학생들과 함께 민속촌 경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3. 민속촌을 돌아보며
정원 뜨락은 넉넉하고 잘 짜여져 트여진 느낌이 든다. 정든 고향을 찾은 듯 친근감이 있어보이고 시골 아낙네들이 눈앞에 서성일 듯하다. 가마 굽는 마을로 갔다. 그곳엔 도자기 체험공방과 깨어진 사금파리조각이 널브러져 있고 흙담벽엔 갖가지 천진스런 낙서들로 가득 차 정겨움을 느낀다.  도회지 생활에 익숙한 신세대들에겐 난잡한 기분이 들겠지만 농촌생활에 물든 기성세대들에겐 분명 반가움을 느끼리라. 가마터를 돌아보니 체험학습을 행한 듯 못난이 작품(?)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이러한 곳에 나름대로 지역적 특색 있는 체험공방을 개설 운영하며 찾는 이로 하여금 색다른 묘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초가 안채를 두른 돌담울타리주변에 텃밭정원을 조성하여 담쟁이 넝쿨과 야생초로 버무려 일구어서 조화를 이룸에 시골내음이 한껏 묻어난다. 이는 넉넉한 여유를 주고 아담하여 포근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동양적 색채는 여백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듯 집안분위기의 포근함과 한가함이 양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궐 집보단 초가집이 마음의 정이 끌리는 것은 무엇일까? 시멘트 벽돌에 익숙한 학생들도 그곳에 반가움이 있을까? 반문해본다. 그것은 정령 우리들과 마찬가지 생각으로 머물리라. 초가집은 우리들의 마음으로 언제나 고향을 머물고 그리워할 소박함이요 둥그런 지붕의 넉넉함이 있기에 반가움을 느끼는 것일게다. 대문 밖 입구엔 풍년을 기원하는 깃발과 글귀가 쌀 한줌과 함께 놓여져 있는 것을 보노라니 조상들의 간절한 소망을 느끼게 한다. 모든 생활사가 기후와 관련되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한돌한돌 올려 쌓은 성황당「자녀석」이 눈앞을 가른다. 자녀에 대한 다산(多産)을 기원하고 입신양명(立身揚名)를 염원하며 무병장수(無病長壽)하길 기도했던 돌탑이 아닌가. 우리는 이를 「소망탑」이라 부른다. 한돌한돌 올리면서 소망을 기원하던 토템사상인 토속신앙에서 비롯되었다. 산사(山寺)로 가는 길목이나 통행이 많은 산자락 길가에 소망을 빌며 기원하였다. 한편으론 임진왜란 때와 같이 여인네들이 치마폭에 한줌의 돌을 모아 왜군을 무찌른「권율장군」의 행주산성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듯, 국가의 외침(外侵)이 있을 때 이를 적절히 활용하기도 하였다. 골목을 싸고도니 한적한 외진 곳에 「효자문」이 우리를 반긴다. 이는 유교에 대한 전통 윤리적 사상인 「충효(忠孝)」를 널리 알리고자 나라에서 부모에 대한 공경심이나 나라에 대한 헌신 봉사한 사람들에게 귀감적 표상물「정문」을 하사(下賜)하고 널리 알려 기리고자 하였다. 마을 입구 잘 보이는 자락에 「효행문」이 세워졌다. 또한 임금은 장수한 노인들을 궐내로 불러들여 경로연(敬老宴)을 베풀곤 하였다. 이는 지금까지 윤리사상의 근간을 이루며 존속하여 권장되고 있다. 모퉁이를 돌아서니 뜰 마루에 걸터앉아 짚새기를 짜는 노인 있어 발길을 멈춘다. 손가락마디마다 옹이 박힌 채 능숙한 손놀림으로 망태기를 짜고 있었다. 잠시 조상들의 애환을 그려본다. 겨울날이면 사랑방에 머물며 짚으로 멍석이나 가마니 등 생활도구를 짜만드느라 하루해가 저무는 줄 모르던 조상들이다. 아직도 눈에 선하다.  문간뜨락에 외양간을 두고 소를 길렀다. 소는 우리에게 소중한 벗이다. 농사일을 거두는데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동물이다. 일찍이 인간이 태어나 존재하는 순간까지 인류문명을 창조하는데 늘 가까이 하여왔다. 지금은 육우용으로 주로 사육되지만 말이다. 인간을 대신하여 농사일이나 운반일과 같은 노동력을 제공하고 힘이 다하는 마지막 운명은 가죽과 고기를 남기어 자신의 희생을 바쳤다. 따라서 우리들은 소가 꿈에 나타나면 조상을 보았다하여 당일 날 행실에 각별히 주의하며  몸조심을 다하였다. 이는 힘들게 살다간 '애틋함'이 현몽(現夢)에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당일 날 반갑지 않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암시하며 주의를 당부하는 의미일게다. 이처럼 소는 우리들의 일상에 지금도 머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찍이 문명의 발생지 암벽엔 한결같이 인간과 소가 함께하는 모습이 음양각으로 새겨져 있질 않은가. 여물 먹는 모습을 보노라니 어린 시절의 추억이 살아난다. 소고삐를 움켜잡고 풀 뜯기려 이곳저곳 들녘에 머물다가 나무 밑동 언저리에 옭매어 두고 흐르는 개울물에서  뛰놀다 보면 어느새 서산마루에 석양이 저물고 마을 굴뚝마다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전경을 바라보고는 부모님께 혼날지라 허겁지겁 옷을 꿰차고 소를 몰고 돌아오던 우리다. 이는 우리들 가슴에 남아 늘 그리워하며 보고픈 마음에 고향을 찾는다. 어린 시절이 도시에 머무는 사람들에겐 시골에서 자라 온 사람들이 갖는 그리움이나 정겨움이 실감나지 않을게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농촌을 벗하며 지내온 분들이리라.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에서 정겨움을 느껴봄직하다. "이곳은 우리의 고향을 보러 온다." 고 안내원이 말했듯이 모든 이의 고향정서에 어울림이 있다. 동네마당 한켠에 널뛰기가 놓여져 있어 사람들이 어울려 노는 모습이 눈에 띈다. 동네어귀 느티나무그늘에서 꽃다운 소녀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널뛰기를 하고 다른 쪽에선 밧줄을 매달아 설치한 그네를 타며 동심을 불태우곤 했다. 동네 남정네들은 설레임에 모여서 나름대로 여성평을 하곤 했다. 널뛰기는 상대방을 떨어뜨리기 위해 하늘높이 날며 모아진 발로 힘을 내리치면 상대방은 떨어지질 않으려 반발력에 의한 반격을 시도하는 게임으로써 여인치마 끝이 나빌래는 모습은 오래도록 영상으로 남는다. 한참 뛰어오르다 보면 균형을 잃고 땅에 나뒹굴곤 하였다. 유래는 두문불출(杜門不出)의 시대에 머물던 처녀들이 총각들에게 선보이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나즈막한 돌담위로 뛰어오르는 처녀들은 바깥에 서성이는 남정네들의 마음을 흔들며 끌어들였다. 이러한 연후로 만남의 인연을 낳고, 몰래하는 사랑의 연가(戀歌)가 휘파람소리와 함께 밤하늘을 수놓았을 법하다. 지나는 이마다 아련한 추억을 머금은 듯 짝지어 널뛰기를 시도해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음을 알고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나름대로 연구하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한 몸부림보단 서로 조화를 이루어 널뛰기를 하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철공방을 들르니 많은 학생들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책에서 많이 봄직한 「야금술」을 직접 체험하려는 듯 서로 밀치며 두 대장간 부부의 손놀림에 따라 시선이 쏠린 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조국의 앞날이 밝음을 느끼게 한다. 철을 달구어 쇠망치로 두드리고 펴서 부엌칼이나 호미 등 일상에 필요한 물품들을 정성을 다하여 만드는 모습은 「김홍도」의 그림 '대장간'을 연상케 한다. 이어서「동헌관사」를 둘러보았다. 그곳엔 위압감을 느끼는 넓은 뜰과 단청마루 안채에서 사또를 중심으로 이방 등 행정관리들이 무릎을 꾼 채 아침조회를 하는 모습을 밀랍인형으로 설치되어 있고, 앞뜰엔 죄인의 형벌을 논하는 장소인 듯 곤장대가 놓여져 보는 이로 하여금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드라마나 그림에서 보았던 곤장대를 실제로 접해보니 곤장 한두 대 만으로도 심각한 고통과 참기 힘든 아픔을 느꼈을 법하다. 죄를 지은 사람은 물론 애꿎은 죄 없는 사람에게도 무참히 고초를 가했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끔찍하다. 곁엔 옥사(獄舍)를 두었는데, 이곳에 가두어 형벌을 집행하였다. 옥사 안은 형틀과 옥쇠 등이 모형으로 남아 있고, 안에 들어가 옥중체험(獄中體驗)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들어가 보는 것도 묘미가 있다. 개울가엔 버들개지로 조성되어 시골의 정취를 한껏 돋운다. 우리들이 어린 시절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에서 조약돌을 줍고 물고기를 쫒아 이리저리 노닐며 멱을 감던 그곳이 아닌가. 시골의 정겨움은 동네어귀를 싸고도는 개울에서 시작하고 마을 뒷동산에 추억으로 피어남이련다. 우리는 늘 고향을 반기는 것은 개울가 버들개지다. 칭칭 늘어진 가지마다 반기는 기운이 돋아난다.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린 듯, 돌·나무 하나하나 마다 세심한 배려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텃밭엔 지난 가을에 뿌린  밀과 보리가 자라나 무성한 줄기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밀과 보리밭 이랑에서 숨박꼭질을 하거나 급한 사연을 보곤 하였다. 학교가 파하고 돌아오는 길이면 으레 길가를 장식하던 보리밭이다. 항상 우리 곁에 머무는 동심을 우려내는 곳이리라. 보리밭을 곁에 두고 수백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느티나무에 빨강, 파랑, 노랑의 원색(原色) 천끈으로 나뭇가지에 돌을 매달고, 언저리 경계석엔 흰 창호지를 짚새끈에 끼워 동여맨 흔적이 우리의 발길을 멈추게 하였다. 마을 어귀의 상징인 정자나무는 단오날이나 마을 행사가 있는 날이면 동네 주민들이 모여서 풍년을 기원하고 마을의 안녕을 빌며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또한 공동우물을 사용하던 시절이기에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우물을 청소하고 마을길을 닦으며 복된 한해가 되길 갈망하였다. 건강한 물을 얻어 질병전염을 예방하고자했던 청결함의 극치를 보여줌이리라. 동네 공동방아멧돌이 우리를 기다라고 있었다. 한댓박 벼를 홈통에 넣어 돌려서 방아를 빻다. 멧돌을 사람이나 조랑말로 돌리곤 하였는데 다양한 곡식에 적용하여 정성어린 음식장만에 상당한 쓰임새로 애용되었다. 잠시 동심에 젖어 돌려보건대 힘이들기 그지없다. 그러니 어른신들이 육체적으로 고된 생활을 하였는지 이해할 법하다. 이어 장터로 갔다. 많은 사람들로 붐볐을 장터지만, 오전이라 한가롭다. 주막에 동동주 막걸리에 빈대떡 부침개를 주문하고는 뜰 상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옛 정취를 맛보았다. 시골장터는 대개 5일장으로 지역적으로 짝을 이뤄 돌아가며 장마당을 열었다. 지금도 시골지역에선 시읍면지역을 중심으로 면면히 내려오고 있다. 다양한 품목들로 어우러져 물물교환의 성격과 정겨운 만남의 장(場)으로 여겼다. 간만에 만나는 즐거움과 옷가지 구입이라든가 찬거리 장만 등 다양한 쇼핑적 개념이 강했다. 시끌법적한 장마당은 항상 주막집에서 막을 내렸다. 하루해가 저물 때면 장똘뱅이와 장꾼들이 어우러져 세상사는 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술잔을 권하며 건강한 모습으로 이다음에 만나자는 말과 함께 하루의 일과를 마감하고 뿔뿔이 흩어지곤 했다. 돌아간 자리엔 언제나 술기운의 흔적들이 이곳저곳에 남겨진 채 텅빈 장마당을 솔솔한 바람만이 스치곤 했다. 봇짐 둘러메고 돌아오던 길은 서쪽녘에 석양(夕陽)의 자욱만이 붉게 드리운 채 하루의 피곤함을 달래주곤 했다. 장터를 뒤로하고 개울을 따라 가니 나룻배에 돛대를 달아 강가의 풍취를 자아내는 모습을 보았다.  흔히 강가에 머무는 사람들에겐 친근히 보았을 고향전경이다. 다양한 레퍼토리로 찾는 이의 마음을 달래주는 듯하다. 시간이 지나자 많은 유치원생부터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줄을 지어 잃어버린 고향의 정취를 맛보려는 듯 바삐 이곳 저곳을 둘러보기 분주하다. 일부는 끼리끼리 짝을 이뤄 장난기 섞인 행동을 보이고 한쪽에선 삶의 현장을 학생들에게 현장교육자료로 활용하려는 듯 열심히 학생들에게 설명하는 선생님모습이 진한 감동으로 와 닿는다. 대체로 방치소풍 또는 여행이나 자료를 준비하여 설명하는 선생님의 얼굴표정은 사뭇 진지하고 학생들 또한 대단한 관심을 표하며 나름대로 준비된 메모지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공방(工房)을 둘러보니 장인정신을 불사르어 자신의 소질을 마음껏 발휘하며 찾는 이의 기념물 제작에 기울이는 정성에 박수를 보낸다.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니 하고자 하는 일에 즐거움을 가지고 집중하면 대단한 명인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양한 항아리로 주변의 정겨움을 정리하고 있었고 틈틈이 널브러진 쓰레기를 주어 담는 두건 두른 아낙네가 눈에 띄었다. 참으로 진지하게 자신의 할 바에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나름대로 반성을 해본다. 시간이 되어 아쉬움을 뒤로하고 버스에 올랐다. 뒤늦은 학생들은 부랴부랴 달려들고 일부는 개울에서 물장난에 흠뻑 젖은 옷가지를 추스르며 시끌시끌하다.
일행은 학교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