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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품

제목 발렌타인데이?
작성자 김영우 작성일 2003-02-14
작성일 2003-02-14
2003년 2월 14일 금요일 날씨: 약간 흐림

오늘은 발렌타인데이다.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이란다. 그런데 어제 우리 반 아이들은 남자애들도 초콜릿을 사오겠다며 떠들썩했다. 그 때엔 아무 생각 없이 웃고 떠드느라 몰랐으나, 일기를 쓰고 나서 잠자리에 들고나니 고민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이번 주 용돈을 이미 다 써버렸기 때문이다. 내일 친구들 앞에서 창피 당하지 않으려면 나도 초콜릿을 단 몇 개라도 사가야 할텐데 이미 용돈이 다 떨어졌으니 어떻게 하나?
이리뒤척 저리뒤척하며 머리를 쥐어뜯다가 갑자기 묘안을 떠올리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게 뭐냐하면 저 번에 돼지 저금통을 잡아서 나온 돈을 은행에 예금하고 난 뒤, 새 저금통을 사지 않고 청색 테이프로 붙여 둔 사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래, 바로 이거야!’
나는 마음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책상 위에 있는 돼지 저금통을 소리나지 않게 들어서 푹신한 이불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테이프를 살살 떼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반쯤 떼다보니 뒤통수가 근질거리고 양심이 내 맘속에서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변덕스런 내 맘이 그새 바뀌었나 보다.
그래서 하던 짓을 멈추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무리 돈이 필요하다해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내가 그동안 문구점 앞을 지나칠 때마다 게임하고 싶은 걸 참고, 먹고 싶은 걸 참아가며 모은 돈인데 그걸 내 손으로 몰래 꺼내려고 하다니...
이건 내 자신에 대한 모독이요, 배신 같았다. 한참 동안을 고민하던 나는 결국, 내일 친구들한테 창피를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내 양심에 어긋나는 짓은 안 하기로 결심했다.

오늘 아침을 먹으면서 아빠랑 대화를 하는데 ‘발렌타인데이’란 말이 어디선가 툭 튀어 나왔다. 아빠가 먼저 하셨는지, 아니면 내가 먼저 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아무튼 발렌타인데이 얘기를 하다보니 남자애들도 초콜릿을 사 가지고 온다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아빠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빠는, “너, 용돈 떨어졌지? 근데 초콜릿은 어떻게 사 갈 거냐?” 하셨다. 내가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 대자 아빠는 웃으시며 2000원을 주셨다.
“찌~익~!”------내 입 찢어지는 소리다.
어쨌든 아빠 덕분에 나는 친구들한테 조그만 초콜릿이라도 한 개씩 돌릴 수가 있었고, 쪽(?)팔리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여자 친구들이 초콜릿을 5개나 줘서 맛있게 먹고 또 저녁에 아빠한테도 드렸다.
3월 14일은 ‘화이트데이’라는 날인데, 그 날은 남자가 여자한테 사랑을 고백하며 사탕을 주는 날이라고 한다. 뭐, 엄마 말씀을 들어보니 우리나라엔 일 년 내내 무슨 날, 또 무슨 날... 수도 없이 많다고 한다.
아이고~, 초콜릿이나 사탕 같은 거 안 먹어도 좋으니 신경 쓰이지 않게 무슨무슨 날이라고 불리는, 그런 이상야릇한 날이나 모두 없어졌으면 좋겠다.
내일은 정월 대보름날이다.
오늘 발렌타인데이라고 하루 종일 들떠서 보냈던 사람들... 내일이 우리 고유의 명절인 ‘정월 대보름’이란 건 아시는지...?
저녁에 집에 갈 때 부럼(호두, 잣, 땅콩 등)이라도 사 들고 들어갔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