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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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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승화된 인류의 연대 의식
김병철(중앙대 교수·영문학 박사)
1.경개(梗槪)
이제부터 살펴보려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1940년에 출판된 의 네 번째 장편으로, 대작(大作) 중의 대작이자 당시 베스트 셀러로 명성이 높았던 작품이다. 또한 오늘날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 관한 비평가들의 평가가 한결같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 작품을 헤밍웨이의 최고 걸작이라고 인정하는 비평가군과, 그와는 정반대로 작가의 실패작이라면 높이 평가하지 않으려는 비평가군의 두 부류가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기 전에 우선 이 작품의 경개(梗槪)를 적어 두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한다.
주인공 로버트 조던은 미국 몬태나 대학에서 스페인어 강사로 있던 미국 청년인데, 1936년부터 1년간 휴가를 얻어 스페인 내란(內亂, 1936∼39)에 참가한다. 그는 열성적인 공화주의자(共和主義者)로서, 파시즘과 싸우기 위해 정부군의 일원이 되어 다이너마이트 폭파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무대는 마드리드 북서 약 60마일 지점에 있는 과다라마 산중, 이곳에서 중요한 작전상의 분기점이 되는 철교 폭파의 명령을 받던 조던과 그것을 돕기로 되어 있는 게릴라 대(隊)가 1937년 5월 마지막 주 토요일부터 그 다음주 화요일에 걸쳐 펼치는 몇 가지 사건을, 묘사한 작품이 바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고 하면 대충 작품의 골자를 전달했다고 할 수 있겠다.
......<중략--에고..도서실에서 빌린 책이 이 페이지가 떨어져 나가서 그만 할 수 없이>.....
내란 초기에는 극히 국내적인 대립이었지만, 머지 않아 독일과 이탈리아가 반란군에 가담하고 소련이 정부군을 지원하는 형태를 취하게 되자 내란은 전혀 그 양상을 달리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선 민주주의와 파시즘이 서로 다툰다는 국제 분쟁의 장(場)으로 바뀐 것이며, 제 2차 대전의 전초전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이 내란은 진작부터 히틀러의 대두에 의하여 대표되는 파시즘의 진출에 위협을 느끼고 있던 전세계 사람들의 관심의 적(的)이 되어, 여러 나라의 많은 작가와 지식인이 신문 기자의 자격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헤잉웨이도 그 중의 하나였다.
그는 내란에 깊은 관심을 표명했으며, 4만 달러나 되는 구급차 구입 비용으로 사용될 수표를 써서 그것을 정부군에게 전달하기 위해 기자로서 스페인으로 건너간다. 활발한 문필 활동, 영화 제작, 공식적인 연설 등을 통해 파시즘과의 싸움에 전력 투구한 그가 이 내란에서의 경험을 소재로 한 작품 집필에 착수한 것은 내란이 끝난 1939년 3월이었고, 약 1년 반의 기간을 거쳐서 완성된 것이 바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였다. 작가의 분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주인공의 행동을 헤밍웨이 자신의 행동과는 구별해야만 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작자의 발랄함과, 체험에 기초한 생생함을 간취(看取)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선 우리들의 주의를 끄는 것은 주인공 로버트 조던의 영웅적 행위이며 인류에 대한 그 연대의식(連帶意識)과 자기희생(自己犧牲)의 정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 관한 기존의 작품론이 주인공의 행위와 죽음을 둘러싸고 전개되어 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주인공의 영웅적 정신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한 작가 헤밍웨이의 모습을 발견해 내는 것이 이 작품의 상징적인 독서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이 작품의 주요 테마가 개(個)와 전체(全體)와의 연관성이라고 보는 시각에는 이의가 없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표제(表題)에 주목해야 한다. 자기 작품의 제목을 과거의 문학 작품 따위에서 인용해 쓰는 수법은 헤밍웨이의 상투 수단인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는 17세기 영국의 종교 시인 존 던의 문구를 차용하고 있다. 그것은 던의 <죽음에 임해서의 기도>(Devotions upon Emergent Occasions) 중의 '명상 제17' ('Meditiation ⅩⅦ')로부터 인용한 것이며, 헤밍웨이 자신이 이 작품이 머리에 들고 있는 일절-No man is an Iland, intire of it selfe; everyman is a peece of the Continent, a part of the maine; if a Clod bee washed away by the Sea, Europe is the lesse, as well as if a Promontorie were, ad well as if a Mannor of the thy friends or of thine owne were; any mans death diminished me, because I am involved in Mankind; And therefore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에 유래(由來)한다. "모든 인간은 인류의 일부이며, 완전히 독립된 개인은 있을 수 없다. 죽은 한 사람의 인간을 위하여 울리는 조종(弔鐘)은 누구를 위하여 울리느냐고 물을 것도 없이 모든 사람인 그대를 위하여 울리니라"라는 것이 그 대체적인 의미다. 인류 전체의 연대성을 풀이한 구절이라고 보아도 좋으리라.
이 존 던의 시행(詩行) 속에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전체의 주제가 암시되어 있다고 보는 것은, 수많은 비평가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지극히 타당한 지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주인공 로버트 조던이 스페인 내란에 참가한 것은 그것이 그가 사랑하는 나라 스페인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작자는 설명하고 있지만(제13장), 동시에 조던은 전세계의 모든 피억압자에 대한 의무감을 가지고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던 것이다.(제18장)
그에게 있어 스페인 내란에 참가한다는 것은 십자군에 참가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으며, 그로 하여금 '절대적인 동포감(absolute brotherhood)'조차 느끼게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자유를 위해선 죽음마저 두려워하지 않는 조던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은 인류 전체에 대한 굳은 연대 의식이다. 스페인 땅에서 자유가 상실된다는 것은 머지 않아 전세계가 자유가 상실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청년은 결사적인 각오로써 철교 폭파라는 자기 희생적인 행위를 감행할 수 있었다. 그는 자기 자신의 희생이 전세계의 자유인을 위한 행위라고 믿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제까지 내가 믿는 것을 위하여 1년 동안 싸워 온 셈이다. 만일 우리가 여기서 이기면 우린 곳곳에서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다."(43장)라고 확신하며 다가오는 죽음에 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는 로버트 조던의 이러한 죽음에 임하는 자세에서 자못 장쾌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종류의 인류 연대감을 취급한 작품은 작자에게 있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처음은 아니다. 1937년의 스페인 방문 이후 작자의 인간관·사회관에는 현저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그것은 1937년의 《부자와 빈자》(To Have and Have Not)에서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사상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 주장이 작품 전체의 주조로 보아 다소 공허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고는 할망정 그것은 이어져 1938년에 발표한 희곡 《제 5열(列)》(The Fifth Coumn)에 이어져 내려오면서 점차 명확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헤밍웨이의 돌연변이적인 작품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헤밍웨이의 이러한 자세가 20년대, 30년대 초기의 헤밍웨이와는 전혀 다른 자세라고 하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무기여 잘 있거라》의 주인공 프레드릭 헨리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자기와는 거의 관계가 없는 나라의 전쟁에 참가하고 있다. 그러나 헨리에게 있어선 저 유명한 일절에 천명되어 있는 것과 같은 '신성(神聖)'이니 '영광'이니 '희생'이니 하는 말은 주인공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을 뿐이며, '명예'니 '용기'니 하는 추상적인 낱말은 불결하다고까지 생각될 정도였던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주인공 로버트 조던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낱말들이 그의 영웅적인 행위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그가 프레드릭 헨리의 후예가 아니라, 《부자와 빈자》의 해리 모건이나 《제 5열》의 필립의 후예라는 평을 받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또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전후에 있어서의 헤밍웨이의 변모를 강조하고, 개인 윤리(個人倫理)에 열중하는 헤밍웨이 상(像)과 사회윤리(社會倫理)를 창도(唱導)하는 헤밍웨이 상과의 대립에 초점을 맞추어 이 작품을 해석하는 독법(讀法)은 일리가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 방법을 즐겨 써 왔다. 하지만 기관총을 껴안고서 세계 평화를 위하여 싸우는 로버트 조던의 모습이 자못 현대적인 호소력을 내포하고 있다 하더라도 너무도 도식적(圖式的)이 아니냐는 비난의 목소리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벌써 어떤 비평가는, 헤밍웨이의 본령(本領)은 개인적 윤리의 추구여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 있어 그는 자기 본령이 아닌 사회적인 주제에까지 손을 뻗친 결과 실패했다고 지적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에는 주제의 혼란이 눈에 띈다고 주장하는 비평가들도 있다. 하긴 로버트 조던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감미롭다. 이상적 인간성의 권화(權化)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인 그는 너무나도 안이한 로맨티시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마리아와의 연애만 보더라도 너무나도 로맨틱하고 비일상적(非日常的)인 인상조차 풍기고 있다. 따라서 조던의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춰 이 작품을 읽어 나가는, 이 작품에 대한 일반적인 접근 방법은 자못 편파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것이라고도 하겠다.
3. 시간의 중층적 구조
이상과 같은 이중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헤밍웨이의 걸작 중 하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확실히 로버트 조던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할 뿐만 아니라 그 주제의 탁월함을 부정할 길이 없다. 이 작품이 걸작이라는 것은 결코 그것이 갖는 영웅적 주제 의식의 강렬함 때문이 아니라 그 주제를 떠받치고 있는 작품 전체의 구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헤밍웨이에게 있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로버트 조던이라는 한 개인의 이야기만도 아니고 스페인 내란에 관한 이야기만도 아니다. 조던의 영웅적인 행위에 관한 이야기를 써 나가면서 동시에 스페인과 스페인 국민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헤밍웨이의 의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조던의 이야기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입체적인 원숙성을 이 작품에 부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와 같은, 말하자면 헤밍웨이의 복안적(複眼的) 수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이 작품을 올바르게 읽는 자세일 것이다.
우선 로버트 조던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시간적 배경은 1937년 5월 마지막 토요일부터 그 다음주 화요일까지의 72시간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굉장한 시간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이러한 시간의 중층화(重層化)는 플래시백, 모놀로그, 대화 등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자면 로버트 조던의 시간적 흐름에 따른 이야기는 때로 그의 회상에 의하여 중단되지만 그 회상으로 하여 비로소 우리는 그의 과거와 사상을 알 수 있게 된다. 이틀 전의 골즈 장군과의 만남(제1장)이나 일곱 살 때 목격한 니그로의 린치 사건(제10장), 몬태나 대학 강사로서의 경력(제13장), 마드리드에서의 생활(제18장), 그의 용감한 조부와 자살한 부친(제30장) 등이 단편적으로 우리들의 뇌리에 깊이 자리잡아 감에 따라 주인공의 미국에 있어서의 생활 환경과 스페인에 있어서의 교우 관계가 보다 더 복잡한 정치의 틀 속에서 떠오르게 된다.
그의 시간을 단절시키는 그 자신의 이러한 회상에 그를 둘러싼 부차적 인물의 대화와 회상이 합쳐져 시간의 중층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다. 예를 들면 3개월 전의 열차 습격 사건의 전모가 라파엘에 의하여 소개되고(제2장), 필라르는 한때 애인이었던 피니토의 회상에 잠기며(제4,8,14장), 혁명 발발 당시의 파블로의 용맹성과 민중의 폭거(暴擧)에 관한 묘사가 상세히 전개된다.(제10장) 또한 폭파 전날 밤 마리아는 자신에게 가해진 혁명군의 폭행 상황을 조던에게 설명하고(제31장), 전령의 임무를 띠고 사령부로 가게 되는 안드레는 소년 시절의 일을 회상한다.(제34장)
따라서 조던의 현재의 시간을 Ⅹ라 하고 과거의 여러 가지 사건을 그 발생 순서에 따라 A,B,C……라고 한다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시간적 구성은 Ⅹ를 모체로 하면서도 A,B,C……의 시간이 전후의 맥락(脈絡)을 잃고 따로따로 배치되게 된다. 제 1일을 예로 들어 보자. 여기서는 현재-이틀 전 골즈 장군과의 만남-현재-3개월 전의 철도 폭파 사건-현재-안젤모의 6년 전 이야기-현재-필라르와 피니토의 이야기-현재-자살한 부친에 대한 이야기-현재라는 시간의 계속이 보이기 때문에 도식적으로는 Ⅹ-E-Ⅹ-D-Ⅹ-C-Ⅹ-A-Ⅹ-B-Ⅹ라는 형태를 취하게 된다. 이러한 도식화를 전편 43장에 관하여 시도해 본다면 현재의 시간이 과거의 시간에 의하여 분할되어 있는 상태를 명료하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거와 현재의 교착(交錯)이라는 시간적 구성뿐만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 있어선 현재의 시간 자체가 조던의 시간과 그 밖의 인물의 시간으로 분할되고 병렬되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작품의 후반부에 가면 더욱 현저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자면 안젤모와 적국 수비병에 대한 묘사가 조던과는 관계없이 전개되어 있고(제15장), 특히 귀머거리 영감이 분전하는 모습은 우리의 주인공이 총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공간적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립된 하나의 장에서 상세히 묘사되어, 이 작품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가 되어 있다.(제27장) 그 다음 장에선 귀머거리 영감 대의 전멸을 둘러싼 조던, 베르렌도 중위, 안젤모 세 사람의 각기 다른 반응이 묘사되어 있다.(제28장), 또 조던이 마리아와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는 것과 같은 시각의 마드리드 상황 묘사가 한 장을 차지하고(제32장), 제34장 이하에서 전령으로 떠난 안드레의 현재와 조던의 현재라는 두 개의 시간이 병렬적으로 묘사되어, 독자에게 대조적인 장면을 제시함과 동시에 작품의 긴박감을 연출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이렇게 시간 처리에 있어서의 헤밍웨이의 몇 가지 실험이 시간의 중층화를 노리고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와 더불어 조던의 이야기가 폭넓은 시간적 퍼스펙티브를 획득해, 거대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독자에게 어필하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이 시간의 중층화에 의하여 필연적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작품의 밀도가 고양(高揚)되어, 우리는 다만 청년 조던의 인생 중 불과 몇십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정도를 넘어서, 그를 둘러싼 사건의 연쇄(連鎖)를 입체적 다각적으로 고찰한 것과 같은 독후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에 있어서의 헤밍웨이 수법을, 워털루 전쟁을 묘사한 스탕달의 그것과 비교하는 비평가가 있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다.
이러한 시간적 구성과 관련하여 잊어선 안 될 점은 작품의 시간적 배경이 1937년 5월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확실히 이 1937년이라는 시기는 다 알다시피 공화파의 승리를 잉태하고 있는 한편 39년 3월의 패배의 그림자를 예감케 하는 불안한 시기였다. 헤밍웨이는 배신자 파블로와 스페인의 하늘을 뒤덮는 독일 비행기 등을 묘사하여 그 불안한 그림자를 예지(豫知)케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의 스페인 내란이 프랑코 장군측의 승리로 끝난 1939년에 기고(起稿)되어 다음해 10월에 출판되었다는 사실이다.
로버트 조던의 이야기를 읽어 나가면서 우리는 그가 결말에 있어 죽고 말 것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예지할 수 있다. 그의 옛날 동료였던 캬슈킨의 죽음에 대한 에피소드와 필라르가 그의 손금에서 죽음을 감지하는 장면 등의 세부 묘사에서 우리는 그의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조던은 자신의 가혹한 운명에 감연히 맞선다. 그 결과는 우리들이 예상한 바와 같이 그의 죽음이라는 처절한 운명으로 끝나고 만다. 그의 죽음이 패배라는 것은 극히 피상적인 의미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은 오히려 그의 영웅적 정신과 자기 희생의 태도가 강렬하게 제시되는 결과를 낳는다. 정신적인 면에서 본다면 조던에게 승리자의 영광이 돌아간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로버트 조던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하여 생명을 내걸고 싸운 결과 영웅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우리들의 눈에 숭고한 모습으로조차 보인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가 생명마저 바친 정부군의 내부가 부패되어 있다는 것을 안드레의 경험을 통하여 알고 있고, 스페인 내란이 공화파의 패배로 끝난 것도 알고 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이 무의미했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그에 대한 우리들의 느낌은 양면적이다. 한편으로는 영웅적 행위에 감동하면서 또 한편으론 그의 좁은 시야에 동정조차 느끼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주인공의 영웅적 정신에서만은 느낄 수가 없었던 인간미를 느끼게 되어, 마침내 그의 고귀한 정신에 찬사를 보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주인공의 위대함과 독자의 전능(全能)의 눈이 평형 상태에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주인공의 고귀함에 접하면서도 그 인간성도 간과하지 않는 저 비극 특유의 쾌감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가능케 하고 있는 것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시간적 배경 설정이다.
4. 성격 설정의 특징
이 로버트 조던의 이야기가 설득력을 가지는 또 다른 이유를 생각할 때 그가 미국인이라는 극히 단순한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에는 주인공이 미국인--등장 인물들은 시종 '영국 양반'이라고 잘못 부르고 있지만--이라는 사실이 거듭 반복되어 나오는데, 인류의 연대성을 믿는 영웅적 주인공으로 그 누구를 내세워도 무방했을 작자의 입장에서 미국인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점은, 우연이라고 간단히 처리할 수 없는 문제이다.
조던은 거듭 남북 전쟁의 용자(勇者)였던 조부를 회상한다. 그의 부친은 헤밍웨이의 부친과 마찬가지로 권총 자살을 한 겁쟁이였지만, 그는 스페인 내란에 참가하여 용감하게 싸움으로써 조부와의 정신적인 유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또 그는 '자유, 평등, 박애'를 믿으며,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를 입밖에 내는데(제26장), 이것들이 미국 독립 선언의 중요한 원리라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렇듯 조던의 마음 속에서 그의 개인적인 과거와 미국의 과거가 연결되어, 그는 다만 일개 의용병(義勇兵)이 아니라, 영웅적인 정신을 가진 한 사람의 전형적인 미국인으로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즉 주인공의 기본적 태도인 인류의 연대 의식이 한 미국인의 주의(主義)와 공통적인 것이며, 미국의 과거와 역사에 근거를 둔 의의 깊은 주장으로서 제시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유인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미국인의 영웅적인 과거와 결합되어 있다는 점은 죽음을 눈 앞에 둔 조던의 독백에서 산견(散見)된다. 어쨌든 다루기에 따라서는 공허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주인공의 언동이 침착한 무게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 미국적 특성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미국적 미덕에 대한 찬가(讚歌)라고 본 비평가가 있다는 것은 이러한 뜻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하겠다.
한편 주인공의 성격 이상으로 흥미진진하게 생각되는 것은 작품에 등장하는 부차적 인물의 성격 묘사다. 헤밍웨이는 보통 그다지 중요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인물의 묘사에 독특한 수완을 발휘한다는 평을 듣는 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는 시간적 구성의 관계와 더불어 여러 등장 인물이 꽤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그러한 평을 실증하고 있다.
과거엔 용감무쌍했지만 이제는 겁쟁이로 전락한 파블로와 공화주의의 열렬한 지지자인 필라르를 위시하여, 전령인 안드레, 살인에 관한 깊은 사색에 빠져 있는 안젤모 노인, 의리의 사나이 산티아고 등 게릴라 대원 각자의 모습이 뜻하지 않은 순간에 뜻하지 않은 신선함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들보다 더 중요하지 않은 인물, 예를 들면 귀머거리 영감의 부하인 호아퀸, 조던에게 사살되는 무명의 척후병에 이르기까지 헤밍웨이의 배려는 철두철미하여 그들의 생활적 배경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특히 성격 묘사면으로 보아 악평(惡評)을 받고 있는 마리아만 하더라도, 자아를 완전히 잃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 순종성이 오히려 전쟁이 지닌 참혹성에 둘러싸인 젊은 남녀의 운명을 단적으로 드러내놓는 데 도움을 준다고 볼 수는 없을까?
등장 인물들의 두드러진 묘사에 더욱 빛을 더하는 것은 그들의 말투다. 헤밍웨이는 그들이 쓰는 스페인어를 엘리자베드 왕조풍의 고투(古套)가 엿보이는 독특한 영어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설익은 스페인어를 듣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까지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한편 이러한 인물들이 주인공 로버트 조던의 연대 의식과 자기 희생의 정신을 정도의 차는 있을망정 서로 나누어 가지고 있다는 점에 독자들은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철교 폭파의 지령이 자신들의 생명에 위협을 주리라는 것을 그들은 대번에 깨닫는다. 그러나 그것이 스페인 공화국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행동이기 때문에 그들은 그 괴로운 운명을 감수할 것을 결심하는 것이다. 필라르는 모든 희망과 약속이 사라져 버리는 것을 알고서 분노를 터뜨리지만 결국은 조던의 계획에 찬성한다. 조던의 계획에 겁을 먹고서 배신 행위를 감행한 파블로조차 결국 외로움에 지쳐 다시 자기네 게릴라 대로 돌아온다. 이러한 부차적 인물들의 심정은 전령의 임무를 띠고서 떠나는 안드레의 독백, "해야만 할 일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하는 것이다."(제37장)에 집약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생각이 옳다면 로버트 조던의 이야기에 역설(力說)되어 있는 자유를 위한 자기 희생이라는 주제는 다만 조던에게만 부가된 명제는 아닐 것이다. 만일 이것을 조던 한 사람의 행동 속에서만 표현하려고 했더라면 그것은 설득력을 잃고 말았으리라. 그러나 헤밍웨이는 부차적 인물들의 생활과 그들의 가치관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더욱이 그들의 정신이 조던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영웅적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추상적인 주제에 강력한 설득력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다소 역설적(逆說的)인 이야기지만 필라르나 파블로를 빼버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있을 수 없다고 하겠다.
5. 승화된 연대 의식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 있어서의 중요한 문제로서 헤밍웨이의 객관적 현실 파악의 태도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 점은 독자들이 자칫하면 간과하기 쉬운 문제지만 이것 없이는 작품 전체의 인상이 일변되고 마는 것이다. '역사가의 안목'이라고도 부를 만한 헤밍웨이의 객관적인 시점 덕분에 조던의 이야기는 주관적인 영웅 찬미에 기울지도, 또 상투적인 연애 소설에 머무르지도 않은 것이다. 작가의 공정한 시각이 작품 전체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인류의 연대 의식이나 자기 희생 정신이 우리들의 마음에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확실히 젊은 주인공이 내란에 참가하여 자유를 위해 싸운다고 한다면 독자들은 그가 가담하고 있는 정부군을 두둔하고 파시스트 군을 증오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조던의 이야기는 권선징악적(勸善懲惡的)인 성격을 띠게 되어 주인공의 정의감과 영웅심에만 칭찬이 집중된다는 안이한 멜로드라마적 구성에 빠지고 말 가능성이 짙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선입관을 가지고 이 작품을 읽기 시작한 독자라면 제10장에서 만나게 되는 필라르의 긴 회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까?
여기서 필라르는 내란 발발 당시 한 촌락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상세하게 이야기하며, 파블로가 이끄는 공화파 민중이 파시스트에게 직접 가한 잔학 행위를 폭로하고 있다. 이 장면은 적인 반란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조던이 가담하고 있는 공화파에 의한 폭력 행위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마음에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조던도 그가 7세 때 오하이오 주에서 목격한 니그로의 린치 장면을 회상하지만, 두 가지 경우 다 '선천적으로 정의감이 강한' 인간도 '추악하고 잔인'해질 수 있다는 것(제10장)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 가까워짐에 따라 마리아에게 가해진 폭행이 드러나지만 독자들은 이미 이보다 더 잔인한 폭행담을 들어 왔기 때문에 비교적 가벼운 저항감을 느낀다.
이렇듯 헤밍웨이는 적과 자기 편의 구별 없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비인간적인 행위를 아무런 편견 없이, 하나의 사실로서 객관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내란의 전체상(全體象)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성 전반에 관하여 고찰하려는 작가의 냉정한 눈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점을 한층 더 명료하게 표현하고 있는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격전이 끝난 후 귀거머리 영감과 그의 부하들은 적기의 공격을 받고서 전멸한다. 이 장면은 개개인의 훌륭한 묘사로도 매우 감동적이지만 그 이상으로 인상깊은 것은 작가가 귀머거리 영감과 싸우는 적측 병사들마저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베르렌도 중위는 전멸한 산티아고 일당의 목을 가져 가라고 명령하는 장교로서 우리에게 제시되어 있는 반면, 차마 자기가 내린 명령이 실행되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다는 인간적 측면도 아울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제27장), 다시 그는 친우의 죽음에 접하여 전쟁의 가혹성을 저주하고 십자를 그으며 '우리들의 아버지'와 '성모 마리아를 찬양하라'의 기도를 되풀이한다.
그런데 이 중위가 실은 작품의 말미에서 로버트 조던이 겨누고 있는 기관총의 사정 거리 안으로 들어오는, '여읜 얼굴에 심각하고도 엄숙한 표정'의 바로 그 사람이다.(제43장), 우리들의 주인공은 그를 사살하고 그 자신도 머지 않아 적탄에 맞고 쓰러지고 말 것이다.
한편 귀머거리 영감의 전멸을 안 안젤모는 이 중위와 마찬가지로 '이 동란이 시작된 이래 그가 올리는 최초의 기도'(제28장)을 올리지만 그 역시 철교 폭파 시에 장렬하게 전사하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똑같은 운명의 장난의 노리개가 된 것처럼 보이는 세 인물을 묘사하는 데 있어 헤밍웨이는 끝까지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헤밍웨이의 객관적 자세는 존 던의 시구가 의미하는 바를, 극히 아이러니컬한 형태이긴 하지만 올바르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확실히 던의 시구는 인류의 연대 의식에 관하여 읊은 것이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임종시의 기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연대 의식이야말로 죽음의 그림자 밑에서 속삭이는 소극적인 희망에 불과하여 죽음만이 인간과 인간을 이어 주는 요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헤밍웨이가 조던, 베르렌도 중위, 안젤모 세 사람을 기묘한 운명의 실로 끌어당겨, 그들을 죽음이라는 양식으로 연결하고 있는 것은 이 던의 정신에 꽤 충실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셈이 될 것이다. 확실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고 있는가를 따질 필요는 없다. 그것은 적이니 우리 편이니 할 것 없이 모든 인간에게 똑같이 평등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고 작자는 우리들에게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헤밍웨이는 극히 아이러니컬한 방법에 의하여 인류의 연대감을 그 주제로 삼고 있는 조던의 이야기에 미온적이나마 참뜻을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를 작품에 부여함으로써 우리는 조던의 영웅적 행위에 깊이를 더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때 헤밍웨이는 "빙산(氷山)의 위용(偉容)은 8분의 1밖에 수면 위로 나와 있지 않다는 데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제 우리들은 이 말을 그대로 그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 적용하여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이 작품에 있어 로버트 조던의 영웅적인 행위와 죽음, 마리아의 열렬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전체의 8분의 1정도밖에 안 된다. 그리고 8분의 7의 위용은 죽음이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데 있지 않을까? 이렇게 죽음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이 소위 걸작의 테두리 안에 들 수 있는 것이고, 그만큼 고차원의 의미를 지닌 작품이 된 것이다. 또한 작품 자체가 그만큼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작가인 헤밍웨이의 삶뿐만 아니라 그의 문학 전체에서도 한층 더 높은 차원을 부여하고 부정에서 긍정에로의 돌파구를 제공해 준다. 헤밍웨이 문학이 막다른 골목에 몰린 자연주의 문학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는 평가는 이러한 점에서 연유된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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