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
독서감상
독서신문과 독후활동
청소년 논술강의
HOME > 청소년마당 > 독서감상 > 소설해설 및 서평
말테의 수기


릴케는 이 소설의 완성에 만 6년이라는 세월을 바치었다. 릴케가 파리로 이주한 것은 1902년의 8월말이다. 이 책은 그 파리에서의 암담한 생활을 기조로 한 릴케 자신의 내면의 기록이다. 그는 '말테는 나의 정신적 위기 속에서 태어난 인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는 소설다운 줄거리의 전개가 전혀 없다. 일기 형식의 단상이라든가 편지의 일부, 과거의 추억과 비망록 같은, 여러 개의 단편적 수기가 집성된 것이다. 주인공 말테 라우리즈 브리게는 파리에 살고 있는 덴마크의 귀족 출신인 28세의 청년이다. 그는 참담한 처지와 무서운 고독 속에서 살며, 남몰래 이와 같은 수기를 엮는 것이다.

말테는 감정이 무척 예민하다.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는 일--이를테면 파리의 거리에서 우연히 보게 된 눈이 먼 캐비지 행상이라든가, 노출된 변소의 도관이 꾸불거리는 다 쓰러진 폐가라든가, 조그마한 밀크홀에서 문득 보게 된 낯선 사나이라든가--이러한 것이 모두 무거운 힘이 되어 그의 내면을 뒤흔드는 것이다. 때로 그는 자기가 병이 들어서 무엇을 할 힘도 없다고 생각한다. 의사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라고 하지만 그는 그 병원의 대합실에서 가난한 환자들에 섞여 기다리고 있다가 형언할 수 없는 고통 때문에 정신없이 뛰어나오고 만다. 그는 또 무서운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 모포의 가장자리 털실이 혹시 바늘처럼 딱딱하고 뾰족하지 않을까, 침대에서 떨어진 빵조각이 방바닥에서 유리처럼 산산이 부서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 등이다.

이러한 생각들이 그의 혈액 속에 녹아들어, 어떤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되어서, 그 형체가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그의 내부에 스며든다. 말테는 "나는 보는 것을 배우고 있다. 왜 그런지 나도 잘 모르지만, 모든 것이 더욱 깊이 나의 내부에 들어와서 여느때라면 멎어야 할 곳에서 멎지를 않는다. 나도 모르고 있던 마음의 밑바닥이 있는 모양이다. 지금은 모든 것이 거기까지 들어간다."고 말한다.

그는 아무런 목적도 없이 매일같이 파리의 거리를 헤맨다. "중요한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라고 늘 생각하면서, 그리고 그가 거리에서 보는 것은 요드포름과 기름과 불안의 냄새가 자욱한 병원이며, 비틀거리다가 쓰러지는 남자이며 께느른하게 걸어가는 임산부며, 기묘한 경련의 발작을 일으키는 노인이며, 거지며 패배자들이다.

"나는 보는 것을 배우고 있다. 그래서 나는 볼 수가 있게 되었다. 지금은 아직 서투르지만, 될 수 있는 대로 그것에 시간은 잘 쓸 생각이다."라고 말테는 말하고 있다. 보는 것은 말테에 있어서는 순수한 수동적인 행위이다. 그는 그 대상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것이 주는 인상과 자극을 무엇 하나 거부할 수 없다. 아니 거부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처럼 아무런 선택이나 거부도 없이 오로지 보는 것을 배운다는 것, 이것은 이 수기의 커다란 테마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말테는 보는 것을 배우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그 노력은 거의 언제나 지긋지긋하게 추한 것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고독과 불안과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말테의 영혼에게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기도 하며 또 그 노력의 무서운 진지성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현실의 추악과 혐오감을 릴케는 시야에서 몰아낼 수가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예술은 현실에서의 임의적인 선택이 아니라, 그 현실을 빠짐없이 아름다운 것으로 전환하는 작업이었다. 그처럼 예술작품으로 전환될 때, 추악한 것도 그 부정적 영토에서 구원되고, 오히려 보다 큰 긍정으로의 잠재력이 된다. 따라서 이 책은 말테의 절망과 몰락을 그리고는 있지만, 말테 자신도 "앞으로 종이 한 장……앞으로 한 걸음만 나아가면 나의 심각한 재앙도 행복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고, 릴케 자신도 후에 젊은 사람들에게, <말테>를 그 흐름의 방향과는 반대 방향에서 읽어주기를 권하며, 이 책은 말하자면 사진의 네거티브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소년시절의 추억에 많은 지면을 주고 있다. 시종직인 조부 브리게의 고통을 극한 독특한 죽음에 대한 것, 젊은 나이에 죽은 어머니에 대한 것, 어머니가 죽은 후에 집에 와 있게 된, 어머니의 여동생 아벨로네에 대한 것, 그리고 그 아벨로네를 사랑하게 되는 것, 또 외조부 브라에 백작가의 방문에 대한 것.

그러나 이러한 소년시절의 회상은 그리운 회고의 대상으로서 회상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릴케는 파리에서의 심한 불안과 놀라움이, 육군 유년학교(10∼15)에서의 체험과 흡사하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는 여기에서 소년시적을 다시 한번 살아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말테는 이 수기의 마지막인 탕아의 귀향 대목에서, "이런(소년시절의) 모든 것을 다시 한번 괴로워하자, 이번에야말로 낱낱이 체험하자는 생각이 그 귀향의 동기였던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아마도 이와 비슷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는 후년에 말테라는 자신이 창조한 인물의 소년시절을 이렇게 그림으로써 자신의 소년시절을 추체험(追體驗)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그 슬픔이 일종의 중압이 되어 자신을 누른다고 했다.

말테가 성장한 후에 부친이 세상을 떠나는데, 그의 부친은 자기가 죽은 후에 자신의 심장을 바늘로 찔러 달라고 유언했다. 말테는 억지로 그것을 입회한다. 여기에서 그는 죽음의 공포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는 또 어릴 때 읽고 감명이 깊었던 가짜 황제와 카알 대공의 죽음을 자기 나름대로 기억을 보완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어릴 떄의 맹렬한 독서에 대해서도 회상하고 있다. 그는 프랑스의 샤를르 6세와 교황 요한 22세의 이채로운 생활에 대해서도 상세히 이야기하고 있다. 말테는 이 두 사람에게서 자기와 비슷한 성격을 보는 것이다.

수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말테는 사랑의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를테면 엘로이즈. 가스파라 스탐파, 루이즈 라베와 같은 여인들에게 있어서는 그 순수한 사랑의 정열이 "최초의 몇 걸음으로 이미 남자를 앞지르고, 전방에 있는 것은 하느님뿐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강렬한 사랑을 마지막까지 성취하려고 했으나, 자기의 사랑이 미칠 만한 남자를 바랄 수 없어서 한탄했다."는 그리스의 여류시인 삽포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있다. 그는 베니스의 살롱에서 덴마크의 여가수를 만남으로써 오랫동안 잊고 있던 아벨로네의 존재를 갑자기 느끼고. 그 본질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신에 대한 관계를 생각하는 것이다.

수기는 성서에 나오는 탕아의 이야기에 대한 대담하고, 독자적인 해석으로 끝나 있다. 말테에 의하면, 이 탕아는 사랑받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고독을 바라며, 마침내 하느님에의 영원한 사랑이라는 끝없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에게 이르는 길은 너무나 멀었다. 그가 어린 시절을 다시 한번 살기 위하여 귀향했을 때, 하느님만은 자기를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느님은 아직 좀처럼 그를 사랑하려 하지 않았다." 이 소설은 이 말로 끝나고 있다.

릴케는 이 소설을 끝내자 일종의 허탈감에 빠져서 앞으로는 더 이상 작품을 쓸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한때는 시골에서 의사 노릇이나 하며 평생을 보낼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리하여 1922년 2월에 《두이노의 비가》가 완성될 때까지 만 12년간의 침묵시대가 계속된 것이다. 물론 단편적인 시작과 약간의 번역 작품이 있기는 하지만.

삶과 죽음을 하나로 한 참된 사랑의 모색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r)는 1875년 12월 4일에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당시 프라하는 독일령 뵈에멘의 수도였다. 아버지는 요셉 릴케, 어머니는 조피, 혹은 피아라라고도 했다. 아버지는 군인이었으나 병으로 인하여 퇴역한 후, 철도 회사에 근무하며 일생을 보낸 수수한 성품이었다. 어머니는 제국평의원이라는 직함을 가진 엔츠가의 출신으로서, 사치스럽고 향락적인 여성이었다. 릴케는 아버지의 수수한 성품을 사랑하고 어머니의 경박한 성격을 미워했다. 성격의 본질적인 차이 때문에 1884년에 양친은 이혼했다. 릴케가 아홉 살 되던 해이다. 그는 일곱 달 만에 태어났기 때문에, 원래가 연약한 체질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1886년 9월, 열한 살 때, 성 푈텐의 육군유년 학교에 입학했다. 1890년 9월에는 매리쉬 바이스키르헨의 육군실업학교로 진학했으나 다음해 6월에 퇴학했다. 군사학교의 집단적이고 획일적인 교육이 릴케의 성격에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의 군사 학교 생활에서 겪은 고뇌를, 후에 그는 도스토옙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에 비유하고 있다. 군사학교를 퇴학한 후 그해 9월에 도나우 강변에 있는 린쯔의 상업학교에 입학했으나 연애사건으로 다음해 5월에 퇴학하고 말았다. 그의 문필활동은 이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그후 백부의 도움으로, 고등학교 과정을 개인 교수로 마치고, 1895년에 프라하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미술사·문학사·역사철학 등의 강의를 들었다.

1894년에 처녀 시집 《생명과 소곡(Leben und Lieder》을 냈다. 오스트리아 포병 장교의 딸 발레리 폰 다비트 론펠트와의 연애 과정에서 나온 시편들이다. 그녀는 릴케보다 나이가 많았으며 예술가적이고 첨단적인 여성이었다. 릴케는 그녀의 매력에 사로잡혀 많은 시를 바쳤다. 아름다운 사랑의 말로 매워져 있는 연애시였다. 후년에 릴케는 이 시편들을 몹시 부끄럽게 여기고, 어느 작품집에도 다시는 수록치 않았다.

1896년 9월에 뮌헨으로 옮겨가서, 뮌헨 대학에 적을 두었다. 당시 뮌헨은 남부 독일 문단의 중심지였다. 그는 처음으로 대도시의 공기에 젖을 수 있었고 문단과도 접촉을 가질 수 있었다. 솔쯔와 바서만을 알게 되고, 데틀레프 폰 닐리엔크론이나 리하르트 데에멜 같은 선배 시인도 알게 되었다. 이 해에 시집 《가신봉사(Larrenopfer)》가 간행되었다.

1897년 5월에 그는 뮌헨에서, 그의 생애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여성인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 부인을 만났다. 그녀는 한때 니체의 애인으로서도 유명했다. 당시 릴케와 열렬한 연애 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루는 사후에 발표된 《생애의 회고》에서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 관계가 청산된 후에도 그녀는 평생동안 릴케가 정신적으로 의지한 친구였다.

청년 시절의 두 번에 걸친 러시아 여행은 그를 개성적인 시인으로 성장하게 했다. 첫 번째는 1899년 4월 말에서 6월 중순까지, 두 번째는 1900년 5월 초에서 8월 말까지였다. 첫 번째 여행 때는 루 부부와, 두 번째 여행 때는 루가 동행했다. 그는 그 때마다 톨스토이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러시아의 자연·풍물·인간 속에서 무한한 예감을 느끼고, 그가 추구하는 신을 느꼈다. 동시에 시인으로서도 모방 시대를 탈피하고 개성적인 길을 걷게 되었다. 이 무렵을 전후하여 시집 《나의 축제에》와 소설집 《하느님 이야기》를 발표했다. 또한 러시아 체험을 기초로 한 《기도시집》의 제 1 부 〈수도원 생활〉을 탈고했다. 《나의 축제에》는 프라하의 풍물시에서 출발한 그 이전의 모방시대를 마무리하는 것으로서 시인의 기본 감정이 자연 속에 표출되어 있다. 그것이 <수도원 생활>에서 강렬하게 개성적인 비약을 이룬 것이다. 여기에는 러시아 체험으로 깊이 배양된 신의 추구가 노래되어 있으며 《하느님 이야기》는 그 동화적인 것이 뒷받침되고 있다.

두 번째의 러시아 여행에서 돌아온 후, 그는 북부 독일의 화가촌 보릅스베데를 방문했다. 그곳에는 친구인 화가 하인리히 포겔러가 있었다. 그곳에서의 한 달 남짓한 생활은 다감한 청년에게 많은 수확을 안겨다 주었다. 그곳에서 여류 화가 파울라 베커와 여류 조각가 클라라 베스트호프를 알게 되었다. 다음헤 1901년에 클라라 베스트호프와 결혼하여, 보릅스베데의 이웃 마을인 베스터베데에 새살림을 차렸다.

결혼 직후, 《기도시집》의 제2부 <순례>와 《형상시집》을 썼다. <순례>에서는 러시아에서 얻은 체험이, 베스터베데 생활의 조용한 응시와 더불어, 한없이 내부의 깊이를 추구해 가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형상시집》에서는 나중에 나온 《신시집》의 선구가 되는 요소를 느낄 수 있다.

아내 클라라는 로댕의 제자였다. 이 무렵 릴케는 로댕의 물(物)의 구성에 강한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는 로댕과 직접 접함으로써, 로댕 예술의 신비를 알아내려고 했다. 움직일 수 없는 물 자체의 모습을 정시하려고 했다. 때마침 의뢰된 《로댕론》을 쓰기 위하여 그는 홀로 파리로 갔다. 1902년 9월 1일 그는 처음으로 로댕을 방문했다. 이후, 로댕의 예술에 심취하여 중기의 창작에 압도적 영향을 받았다. 한 때 로댕의 비서로서 로댕의 집에 함께 기거한 적도 있었다. 그는 로댕에게서 받은 영향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러시아는 어느 의미에서 나의 체험과 수용의 근저가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1902년부터 시작된 파리, 저 이를 데 없는 파리는 --나의 구성 의욕의 기조가 되었다. 그것은 로댕의 위대한 영향에 의한 것이었다. 그는 천박한 서정성과 활발하기는 하지만 발전이 없는 감정에서 생겨나는 값싼 기연성을 나에게서 제거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것은 마치 화가나 조각가처럼 철저하게 자연을 이해하고 그것을 재창조하며, 자연에 직면하여 작업하는 것을 의무로 하는 가르침에 의한 것이다.' 《신시집》《신시집 별권》《말테의 수기》등 그의 중기 작품은 모두 로댕의 강력한 영향을 받고 있다. 그리고 파리에 온 다음해 이탈리아의 비아레죠에서 《기도시집》의 제3부 <가난과 죽음>을 완성했다.

《신시집》과 《신시집 별권》은 중기 릴케의 대표적 시집이다. 이 두 시집은 경향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완전히 같은 것이다. 젊을 때의 서정시가 감상적인 감정으로 흐르고 있는 데 반하여, 이 시들은 객관적인 시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주관적인 서정이 후퇴한 표현을 보이고 있다. 동식물원의 인상, 거리의 인상, 여행, 고대사원, 그리스 신화의 많은 소재, 신구약 성서에서의 제재, 고대조각에 대한 감개 등, 모두 객관적인 수법에 따른 묘사가 전면에 강하게 나타나 있다. 물론 거기에는 시인의 강렬한 서정이 내재되어 있다. 이들 작품 중에서 뛰어난 것은 감정을 억제하면서도 내적 구성의 복잡한 배음에 성공하고 있지만, 소재와 표현의 조응이 결여된 것도 있다. 그러나 이들 중기의 시작품은 만년의 거작 《루이노의 비가》의 표현의 배경이 되었다.

《말테의 수기》는 그의 유일한 장편 소설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 내용이 특이하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가지는 작품이다. 그는 1904년 2월 8일 로마에서 이 작품에 착수하여, 1910년 1월 27일 라이프찌히에서 탈고할 때까지, 만 6년 동안 심혈을 기울였다. 이 소설에는 줄거리의 전개가 없고 제목 그대로 주인공 말테의 수기의 집성이다. 여기에는 사랑과, 죽음과, 병과, 불안과, 고독과. 신의 문제 등, 시인이 진지하게 대결한 여러 문제가 내면적인 풍요와 조각적인 수법으로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죽음과 병을 다루고 있지만 퇴폐적이 아닌 드맑은 눈으로 현상의 근저를 바라보고 있다.

《말테의 수기》를 단락으로 하여, 그의 생활은 <비가>의 세계로 옮겨 갔다. <말테>가 완성될 무렵, 그는 친구 루돌프 카스너의 소개로 마리폰 투른 운트 탁시스 후작 부인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유럽의 명문 호엔로에 가의 출신이었다. 릴케에게는 어머니와도 같은 이 부인은 드물게 보는 성품이 고귀하고 교양이 높은 여성이었다. 시인의 후반생은 후작 부인의 정신적·물질적 도움에 힘입은 바 크다.

1910년 11월말, 그는 북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났다. 4개월에 걸친 긴 여행이었다. 이집트에서의 체험은 시인의 시야을 확대하고, 후에 <비가>의 소재로서 그의 정신 영토에 되살아난다.

1912년 1월, 탁시스 후작 부인의 초청으로 두이노 성을 방문한 릴케는 갑자기 하나의 시상이 떠올랐다. 이것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발상이었다. 이때 이 성에서 제1, 제2 비가가 단숨에 완성되고 제10비가의 일부를 썼다. <비가>를 향한 새로운 걸음이 시작된 것이다. 이해 11월 초순부터 다음해인 1913년 2월까지 그는 스페인을 여행했다. 그레코의 그림에서 강한 감명을 받은 것이 이 여행의 동기였다. 스페인 여행에서 그는 <비가>에 대한 많은 시상을 얻었다. 그는 그 후에 파리에서 제 6비가를 완성하고, 제10비가를 계속하고 있었으나, 1914년 7월 말에 발발한 제 1차 세계대전 때문에 그 완성이 늦어지고 말았다.

1914년 1월말, 당시 파리에 있던 릴케는 미지의 여성에게서 열려한 편지를 받았다. 이 편지가 계기가 되어 그들은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릴케가 벤베누타라고 부르던 이 여인은 여류 피아니스트 마그다 폰 하팅베르크였다. 그러나 6개월 후에, 두 사람의 공존 생활에서 오는 위험성을 예언한 벤베누타의 제의로 그들은 헤어졌다. 세계대전은 릴케에게 한없는 심신의 피로를 주었다. 1916년 1월, 릴케는 오스트리아 육균에 복무하게 되었다. 몸이 허약한 그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친구들의 열성적인 운동으로 그 해 6월에 제대할 수 있었다. 그는 전쟁 중 여류 화가 루우 알베르라자르 부인을 알게 되어 크게 위안을 받았다.

또 전쟁 중에 그가 파리에 남겨 두고 온 재산이 적성 재산으로 지목되어 경매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슈테판 쯔바이크, 로망 롤랑, 앙드레 지드 등의 노력으로 그중의 소수를 구해낼 소 있었다. 1919년 6월 11일 그는 스위스에서의 강연 의뢰를 받고 뮌헨을 떠나 쮜리히로 향했다. 처음부터 스위스에 영주할 생각은 아니었으나 그후 다시 독일로 돌아오지 않았다.

1920년 11월 이르헬의 베르크 성애 주거를 정했다. 여기에서 전쟁 때문에 오랜 동안 단절되어 있던 창작의 실마리를 비로소 풀 수가 있었다. 라는 일련의 시  작품을 얻었다. 다음해인 1921년 7월에 발리스 지방에서 뮈조트 성을 발견, 이윽고 이곳에서 살게 되었다.  뮈조트 성은 13세기에 세워진 고건물로서, 전등도 수도도 없는 고원 속에 있는 고탑이었다. 1922년 2월 가정부 한 사람과 함께 살고 있는  이 고독한 생활 속에서, 오랜 동안 단절되어 있던 <비가>의 시상이 폭풍처럼 시인을 엄습해 왔다. 이 때 제7, 제8, 제5비가가 일시에 완성되고 단편으로 남아 있던 다른 미완의 비가들도 완성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전혀 예기치도 않던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55편도 단숨에 쏟아져 나왔다. 그는 시인의 사명을 다한 것과 같은 기쁨을 느꼈다. 이 10편의 비가 속에는 릴케의 가장 근본적인 사상이 전개되어 있다. 무상·사랑·죽음·인간 내부의 황폐, 인간의 운명, 영웅 찬양, 삶의 송가, '열려진 세계', 인간 존재에게 독특한 감명을 준다. <소네트>는 우연히 쏟아져 나온 사물이지만 심원한 시상과 갖가지 추억이 싱싱한 격조로 노래되어 있다.

<비가>와 <소네트>를 끝낸 릴케는 20세기의 지성, 프랑스의 시인 폴발레리에게 존경과 공감을 느끼고, 그 번역에 몰두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프랑스어로 시작을 시도했다. 이 시들은 발레리의 찬양과 격려에 힘입어 프랑스의 잡지에 발표되었다. 《과수원》 《장미》 《창》 등은 프랑스어 시집이다.

발라디이느 클로서브스카 부인과의 만년의 사랑은 그에게 많은 위안을 주었지만 창작과 사랑의 갈등에서 많은 고뇌도 격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스위스에서 베르너 라인하르트, 분덜리 폴카르트 부인과 같은 귀중한 친구를 얻었다. 스위스의 생활이 해마다 점점 풍족해 간 것은 이들 우정에 힘입은 바가 컸다. 1925년 1월부터 8월까지 그는 추억의 파리를 다시 찾았다. 지드, 발레리 등 많은 옛 친구를 만나고, 또 새로운 친구도 얻을 수 있었다. 이 파리 체재 중에 그는 모오리스 베츠의 《말테의 수기》의 불역을 도왔다.

1926년 10월 초순, 뮈조트성의 정원에서 장미를 꺽다가 왼쪽 손가락에 가시가 찔려, 그것이 화농하여 패혈증 증세를 나타냈다. 마음과 정신이 모두 지친 그는 이 병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1926년 12월 29일 오전, 그는 발몽요양소에서 51년의 생애를 마쳤다. 그의 유해는 유언에 따라 라론의 묘지에 묻혔다.


[宋永擇]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