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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시골신부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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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應烈
불치의 병이 들어 몹시 고생하며, 위에서는 보통 음식을 받아 주지 않기 때문에 포도주에 빵을 담가 조금씩 먹을 수밖에 없어, 알코올 중독자라는 비판까지 듣게 되는 젊은 신부가 앙브리꾸르라는 조그마한 동네에 본당 신부로 새로 부임해 온다. <다른 본당과 조금도 다름없는 본당이다.> 즉 선과 악이 균형을 이루고 있고, 현대 사회가 지니고 있는 권태에 시달리는 그런 사회이며, 그런 암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그 구차한 목숨을 질질 끌고 가는 본당이다.
이런 본당을 맡아 가지고 악과의 싸움을 치열하게 벌인다. 그런데 악은 인간의 양심에서만 활동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조 안에 파들어 그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으며, 이 사회와 긴밀히 결합해서 그와 더불어 연대적인 세상을 조직해 놓는다. 이 악이 사회라는 얼굴로 나타나는 것은 바로 빈곤, 부정의, 가난한 자들에 대한 멸시, 사랑의 결핍 따위이다. 앙브리꾸르의 본당 신부는 이와 같이 우리 사회에 도사리고 있는 악을 내쫓으려고 갖은 정열을 기울이는 것이나, 이 싸움을 벌이는 데 있어서 사람들의 이해를 얻지 못하고, 상사들에게서까지 비판을 받는 불운을 겪으며, 더 나아가서는 기도를 드릴 수도 없어 하느님에게까지 버림을 받지 않을까 하는 절망감을 맛보게 된다.
다만 걸찍한 말씨와 털털한 태도와는 달리 사물에 대해 진보적이면서도 그르침이 없는 판단을 하는 또르씨의 본당 신부가 이 젊은 신부의 미숙을 염려해서 여러 가지로 지도 편달을 해 준다. 이 늙은 신부는 "본당은 으레 더럽기 마련이라"고 말하며, 그 더러운 것을 뿌리뽑으려 하는 것은 이상에 치우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서 젊은 신부의 지나친 정열을 억제한다. 앙브리꾸르의 본당 신부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또르씨의 늙은 신부를 찾아가 의견을 묻곤 하는데, 이 늙은 신부야말로 베르나노스의 사상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앙브리꾸르의 젊은 신부가 벌인 악과의 싸움에서 가장 어려움을 느꼈던 것은 백작 가(家)와의 관계였다. 겉으로 보면 행복하고 남부러울 것 없는 듯한 이 집안이 사실은 사랑도 없고 믿음도 없는 황량한 사막 같은 것이다. 백작은 수십 년의 결혼 생활 동안 수없이 아내를 속여 왔고, 지금 가정교사로 들어와 있는 루이즈 양과도 떳떳치 못한 관계에 있다. 백작 부인은 남편의 부정을 일일이 탓할 수도 없을 만큼 지쳐서, 어려서 죽은 아들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 속에서 삶의 보람을 느끼는 불행한 여인이다. 그들의 딸 샹딸은 성질이 불같고 질투심이 강한 처녀로서, 사내 동생이 날 때부터 어머니의 사랑이 동생에게 옮겨간 것을 용서하지 못하고 어머니에 대한 반발로 아버지를 독차지하다시피 한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밖에 모르던 샹딸이 장성해서 아버지와 가정교사의 관계를 눈치챈 뒤로부터는 걷잡을 수 없는 질투심을 느껴 집안의 평화를 여지없이 깨뜨리고 추문을 일으킬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에 딸에 대한 애정이 조금도 없는 어머니가 남편을 설득해서 딸을 얼마 동안 영국으로 보내려는 계획을 꾸민다. 여기에서 샹딸의 심한 반발이 일어나고, 이 사건을 본당 신부에게 들고 와서 간섭을 청하는 데에서 젊은 신부가 백작 가의 집안일에 깊이 간여하게 된다.
백작 가의 딸 샹딸이, 부모가 자기를 영국으로 보내려는 낌새를 채고 신부를 찾아와, 부모가 자기를 영국으로 보내려는 계획을 버리지 않으면 파리로 가서 몸을 버림으로써 부모에게 복수를 하겠다고 말하며, 어머니에게 그 계획을 중지하도록 타이르라고 청한다. 이에 젊은 신부는 백작 부인을 찾아가 딸의 구원을 위해 재고할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백작 부인은 남의 집안일에 참견하지 말라하면서 거절한다. 여기에서 젊은 신부와 늙은 백작 부인 사이에 기나긴 토론이 시작되는데, 이 토론 중에 백작 부인은 자기가 남편과 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잃게 된 까닭을 솔직히 밝힌다. 백작 부인은 온갖 애정을 쏟았던 아들을 잃음과 동시에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남편과 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잃고, 자기의 모든 희망을 잃었었다. 그런 절망 상태에서 헤어나는 데는 역시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했고, 그 은총은 젊은 신부의 진심이 깃든 설득을 통해 백작 부인의 가슴에 다시 살아난다. 젊은 신부와 백작 부인 사이에 그 격렬한 토론이 있던 날 밤 부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젊은 신부는 백작 부인이 마음을 돌이킨 것을 아는 만큼 그녀의 구원을 의심치 않는다.
한편 앙브리꾸르의 본당 신부는 교리 문답을 배우는 아이들 중에서 가장 총명하고 열심인 세라피따라는 소녀를 귀여워하는데, 이 소녀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순진하지 못하고 교태를 부려 젊은 신부의 애를 먹인다. 교리 문답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유를 묻는 신부에게 "신부님의 눈이 예뻐서 그랬다"고 대답할 만큼 깜찍한 소녀에게 어떻게 해서 그렇게도 불순한 기운이 들어가 있는 것일까? 베르나노스는 어린 시절을 몹시 귀하게 생각하고 그와 같은 어린이의 정신을 매우 높이 평가한다. 그런데 왜 그 어린 소녀의 마음에 그렇게도 순진하지 못한 생각이 자리잡게 되었을까? 그것은 어른들이 흐려놓은 썩은 공기를 마시기 때문이라고 베르나노스는 생각하는 것이다. 앙브리꾸르의 본당 신부가 어렸을 때 어떤 친척 아주머니의 술집 계산대 뒤에서 공부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어른들의 말씨나 태도에서 어린 소년이 보고 느낀 것은 결코 그의 순진함을 북돋아 주고 길러 줄 만한 것은 아니었다. 이와 같이 어린아이가 되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그 순진함을 어린이들조차 잃어가는 것은 어른들의 몸에서 나와 이 세상에 가득 차 있는 독기를 저도 모르게 어린이들이 마시기 때문이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이런 악에도 약점은 있다. 증오로 표시되는 악은 하느님의 사랑으로까지 승화할 수 있는 인간의 사랑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강한 사랑도 <은총>으로 순화되지 않으면 절대적인 힘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니, 이래서 결국은 <모든 것이 은총이다>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베르나노스는 가톨릭 작가로서 자기의 신념을 가장 솔직 대담하게 내세운 사람이다. 그는 르낭(Renan)과 아나똘 프랑스(Anatole France)의 영향을 맹렬히 비난했다. 회의주의와 딜레땅띠즘은 고민하는 인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현대인은 권태에 사로잡혀 있고 절망에 허덕이고 있다. 현대인은 음탕과 증오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이리하여 지각없는 어린이들의 순진성에까지 더러운 흙탕물을 튀겨 준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어린이의 정신을 가져야 하건만, 악마는 이 세상에 끊임없이 오만과 불신의 씨를 뿌려 놓는다. 이러한 악의 발로로 세상이 숨을 헐떡이는 것을 보고, 성직자들은 고민을 금할 수가 없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말할 수 없는 부패와 모순을 통탄하고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그것을 시정할 수도 없는 것이다. 진정한 가톨릭 정신은 이 현대의 고민을 몸소 도맡아서 그것을 중화시키고, 역설적인 것 같지마는 거기서 희열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진리와 생명을 찾으려고 암중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베르나노스는 이미 그것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진리라는 것이 자명한 것이 아닌 때에는 각자의 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겠으나, 어떻든 문제를 제기하고 동시에 해답도 제시해서 독자로 하여금 비판하게 하는 것은 신념을 가진 사람으로 떳떳한 일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베르나노스가 내놓는 해답이란 결국 <모든 것이 은총>이라는 것이다.
신이 없는 세계의 인간의 실상
조르즈 베르나노스(Georges Bernanos)는 1888 년 2월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것처럼 그의 어린 시절의 가장 좋은 때는 빠 드 깔래의 프레생이라는 조그마한 촌락에서 보낸 시절이었다. 그 동네는 우거진 숲과 목장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베르나노스는 자신의 작중인물들로 하여금 거의 거기서 살고 활동하도록 만들었다고 말한다. 초등 교육과 중등 교육은 예수회와 수도회에서 경영하는 여러 학교에서 받았으며, 소년 시절에 즐겨 읽었던 발자끄(Balzac), 빅또르 위고(Victor Hugo), 윌터 스콧(Walter Sxott), 바르베 도르빌리(Barbey d'Aurevilly), 레옹 블르와(Lon Nlois), 드뤼롱(Drumont) 등의 작품은 그의 일생 두고두고 영향을 끼쳤다.
1906년부터 1913년까지 베르나노스는 파리대학과 가톨릭대학에서 교육을 받고, 법학과 문학 두 가지 학사 학위를 획득, 그 즉시 왕당파의 투사가 되어 활동하다가 감옥살이도 잠시 맛보게 된다.
1913 년-1914 년에는 루왕(Rouan)에서 <노르망디의 전위대(L'AvantGrade de Normandie)>라는 왕당파 기관지에 주필로 있으면서 많은 기사를 썼고, 1914년 제 1 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지원병으로 출전하여 여러 차례 전상을 입기도 했다. 전쟁이 채 다 끝나기 전인 1917 년에 쟌 다르크의 오라버니의 직계손인 쟌 딸베르 다르크(Jeanne Talbert d'Arc)와 결혼하여 1918 년부터 1933 년까지 여섯 명의 자녀를 두게 된다.
1918 년 제 1 차 세계대전 종전과 더불어 제대하여 기자를 그만두고 한 보험회사에 들어간다. 베르나노스가 창작 활동을 시작한 것은 보험 권유원으로 지방에 출장다닐 때에 카페에서였다. 맨 처음 희곡을 한 편 썼으나 그 원고를 맡았던 친구가 잃어버렸고, 두 번째로 쓴 것이 <악마의 태양 밑에서(Sous le soleil de Satan)>인데, 이 작품은 1919년에 시작하여 1925년에 가서 비로소 탈고되었다. 그 동안 줄곧 왕당파와 손을 잡고 활약하다가 모라쓰(Maurras)와 레옹 도데(Lon Daudet)의 의회 활동에 불만을 품고 <악시옹 프랑세즈>(Action Francaise : 20 세기 초에 일어났던 프랑스 왕당파 운동)와 손을 끊고 완전히 독립한다. 그러는 중에도 신문에 많은 기사를 싣고, <주간 잡지>에 발표한 <다르쟝 부인(Madame Dargent)>이라는 중편 소설에서 상당한 재능을 보였는데도 일반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하고 있던 <악마의 태양 밑에서>가 1926 년 봄에 비로소 발간되어 즉시 그의 이름은 유명해진다. 이때부터 두 차례의 세계대전 사이에 끼어 있는 동시대의 문학과 지식 청년의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지목받게 된다. 악마와 어떤 신부와의 격렬한 싸움을 그린 이 소설이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그의 사상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1927 년에 <사기(L'Imposture)>를 발표하였으나 별로 흥미를 주지 못했었는데, 1929 년에 발표한 <환희(La Joie)>는 대단한 인기를 끌어 그 해의 페미나 문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으로 생활비가 덜 드는 스페인령 발레아레스 군도의 마조르카 섬으로 이사해 가서 산다. 그곳에서 여기에 번역, 수록한 그의 걸작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Journal d'un cur de campagne)>를 집필하여 1936년 3월에 발표한다. 그가 마조르카에 있는 동안 저 처절했던 스페인 내란이 일어난다. 베르나노스는 처음에 프랑코의 국민 전선파에 대하여 공감을 표했었으나, 그들의 독재적인 성격에 혐오를 느껴 잡지에 그들을 비난하는 글을 실었으며, 그 후 <달빛 어린 큰 공동묘지(Les Grands cimetires sous la Lune)>를 써서 그들의 교도주의적 행동을 맹렬히 비난한다.
마침내 프랑코의 스페인에 혐오를 느껴 1937 년에 프랑스로 돌아왔으나, 그의 방랑벽은 다할 줄을 몰라 1938 년 뮌헨 회담 직전에 파라과이로 이주한다. 그러나 그곳에는 겨우 열 하루밖에 머무르지 않고 브라질의 리오 데 자네이로로 옮겨가, 거기에서 오래 전부터 집필해 오던 산고의 《윈 선생(Monsieur Ouine)》을 탈고한다. 한편 1940년 6월부터 <자유 프랑스(la France libre)>의 여러 회지에 기고하며, 리오 데 자네이로에서 1942 년에 <영국인들에게 부치는 글 (Lettre aux Anglais)>을 발표한다.
1945 년에 파리로 돌아와 잡지에 기고하는 한편, <갈멜 수녀들의 대화(Dialogues des Carmlites)>를 탈고한다(이 작품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 1949 년에 출간된다).
마침내 1948년 7월 5일 빠리 근교 뇌이이(Neuilly)의 미군 병원에서 세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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