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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림파의 선비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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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라고 하면 우리는 대개 전근대적인 유교인상을 연상한다. 선비가 예로부터 반드시 유교 교육을 익힌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유교적 교양인을 가리키는 것이 상례이다. 그 점에서 선비를 유교적 인간상의 하나로 간주하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다. 또한 선비는 전 시대의 인간상이지 이 시대의 인간상은 아니다. 따라서 선비에 대한 우리의 인상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전 시대의 유교라 하여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며, 그에 기초한 선비 또한 결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선비는 그 나름대로 과거에는 한 시대의 이상상이었다. 한 시대의 이상상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음으로써 가능해진다.
아무리 시대가 흐름의 조건을 달리하여 변천한다 하더라도 인간을 인간 아닌 다른 존재로 변화시킬 수 없다. 인간 자체를 근본적으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바람직한 이상인의 모습을 그릴 때 우리는 오늘의 인간상을 점검해 보기도 하지만 흘러간 인간상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말하자면 이상인의 전형을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경험지(經驗知) 탐색의 일환으로 찾게 된다. 이 글은 그 같은 맥락에서 조선 시대의 선비상 혹은 선비 정신을 그려 보고자 한다.
'선비'의 의미는 예로부터 일정하게 규정되어 오지 않았지만, 연암 박지원의 지적과 같이 '독서인'의 의미가 가장 강하다. 따라서, 오늘날의 지식인 내지 지성인에 해당하는 용어가 곧 선비였다고 할 수 있다. 남보다 많은 지식을 가졌기 때문에 선비는 과거를 거치든 거치지 않든 일정한 벼슬아치가 되게 마련이었고, 이런 점에서 선비 '士'자는 대부라는 말과 짝을 이루어 흔히 사대부(士大夫)로 일컬어졌다. 그리고 사대부로 일컬어질 경우, 선비는 곧 양반에 속했던 것이 조선 시대의 현상이었다. 그러므로 관리 내지 관리 후보로서의 양반 지식인이 곧 조선 시대의 선비였다고 하겠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선비와 관리가 불가분의 관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공자에게서 선비가 군자·인인(仁人)·현인으로 자주 대칭되듯이, 덕을 갖춘 이른바 유덕의 조건이 선비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중요시된다. 그러므로 한낱 관리와 관계되는 지식인이라기보다 현실을 폭넓고 깊이 있게 진단하면서 현실 사회를 이끌어 가는 철인(哲人) 기질의 지성인을 선비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선비의 상은 곧 오늘의 지성인을 되비추어 보는 거울인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유덕과 관련되는 선비의 기본 조건 몇 가지를 먼저 살피기로 한다. 공자에 의하면 "선비는 예를 터전으로 하여 선다(君子立於禮)."고 하였으며, 자신의 개인적 욕구를 이기고 예에 합치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인을 성취하는 인간이라고 했다. 이것으로 보면, 선비는 우선 합례적(合禮的) 행위를 할 수 있는 높은 윤리 의식 또는 도덕적 품격을 갖추지 않으면 아니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예를 중시한다고 하여 형식적인 것에만 치중하는 것이 곧 선비인 줄 알아서는 곤란하다. 대체로 어느 경우나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공자인 만큼, 그는 인위적으로 개발된 측면(文)과 더불어 타고난 대로의 바탕(質)을 다 갖추고 있어야 선비답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리하여 지·인·용(智仁勇)을 고루 갖추어야 바람직한 인간이라고 공자는 생각했다. 이러한 사실들로 미루어 본다면, 결국 선비를 선비답게 하는 조건은 예를 바탕으로 한 원만한 인격의 소유임을 알 수 있다.
이 때 선비에 있어서의 원만한 인격이란 결코 주관과 지조 없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공자는 "삼군을 거느리는 장수는 빼앗을 수 있어도, 필부의 뜻은 빼앗을 수 없다."고 한다. 평범한 필부를 두고는 이렇게 말하는 정도이고 보면, 선비의 경우는 아예 지절에 살고 죽는 인간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맹자가 말한 호연(浩然)의 기개를 지닌 대장부의 후보가 곧 선비이다.
때때로 지절은 편협한 옹고집을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선비의 지절은 알고 보면 옹고집 그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선비란 남과 더불어 한패로 됨이 없어도 잘 화합할 줄 알기 때문이다. 공자에 의하면 '한패로 되면서 화합하지 못하는 것'은 이른바 소인의 생활 태도인 것이다.
원리 바람직한 사람(君子)은 도를 배울수록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못난 사람은 남을 잘 부려먹으려 든다는 것이다. 남을 사랑하기 때문에 선비는 남들과 화합하려 노력하고, 남을 위해 자신의 이기적인 사리 사욕을 뛰어넘는다. 한마디로 해서 이(利)보다 의(義)를 생각하게 되고, 나아가 자신마저 희생하기를 주저치 않는다. 여기서 '봉공(奉公)의 정신'이 곧 선비의 정신이라는 말이 나오고, 선비가 곧 '나라의 으뜸 되는 힘'이라는 생각이 당연시된다. 나라를 떠받드는 근본 힘, 그것이 곧 선비라고 옛 사람들은 믿는다.
♣ 수업중에 읽는 155가지 이야기/교육부 독서지도 정책 연구학교/인천학익여고 자료
- 윤사순, [사림파의 선비정신], {인문과학과의 만남}, (문원각, 19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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