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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과 변혁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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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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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생활이 과거의 그것에 비할 수 없을 만큼 편리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만큼 행복해지고 참되며 아름다워졌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동차의 대중화가 우리의 생활을 보다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그것으로 말미암아 교통 사고, 소음, 대기 오염 등을 병발(竝發) 함으로써 적지 않은 불안과 공포의 소인(素因)을 만들어 놓고 말았다.
이같이 현대의 과학 기술은 인간이 이상으로 추구해 온 기존의 전통 - 진, 선, 미에 따른 가치관을 급격히 변혁시킨 나머지, 인간 스스로가 만든 과학 기술에 의하여 인간 스스로가 규제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의 과학 기술에 대한 도전의 시대로부터, 과학 기술의 인간에 대한 도전의 시대로 바뀌고 있다고 해야 하겠다. 지난날의 기계란 물품을 생산하고 기계를 제작하는 기능에서 오늘날에는 인간만이 갖는 유일한 기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지식 정보화 기능을 대신하기에 이르렀다. 과학 기술이 가지는 이러한 기능적 위력은 인간과 사회에 끊임없는 흥분과 매력과 불안을 안겨다 주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을 배제 또는 소외시키는 상황에까지 이끌어 가고 있다.
오늘날의 지식인들은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현대를 어떻게 감각하고, 어떻게 수용하고, 어떻게 처리하면서 평가할 것인지에 관해 과거 어느 시대의 지식인들보다 심각하고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본다면 그들에게 주어진 냉엄한 과제이며, 사명이라 해야 할 것이다. 왜냐 하면, 그들 지식인들이, 주어진 과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인류의 흥망성쇠(興亡盛衰)가 판가름 날 수 있기 때문이다.
2
오늘날 흔히 '관리 사회 또는 조직 속의 인간'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 그 말이 상징하듯이 현대인은 자율을 원하고 선택을 희구하지만 과연 어느 정도까지 그러한 자율과 선택이 가능한 일인지 그것을 냉철하게 생각할 때 의아스러운 점이 적지 않음을 안다. 인간은 이념이나 제도를 어쨌든 자유라는 이름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생각하지만, 실은 자유가 아니고 매우 부자유스럽고 부자연한 면을 많이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있다. 개성의 자유라 하지만 따져 보면 그것은 관리되고 조직된 사회의 메커니즘 속에 일체화(一體化)된 것이지 그렇지 않고서는 규범이나 규정의 제한을 받게 되는 것이 개인 대 사회의 관계인 것이다. 자기의 의사, 자기의 선택, 자기의 행동이라 하지만 사실은 자기의 것이 아니고 남이나, 조직이나, 관리의 기술이나 수단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강제와 조종과 유도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극단에 가서는 본인과는 상반되는 부자유스러운 사실을 수용케 되고 거기에 동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와 현실의 상극은 우리의 생활 주변에서 한량없이 겪어 온게 사실이다. 때로는 어느 것이 정상이며, 어느 것이 이상(異常)인지의 분간도 흐려지고 판단이 모호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 속에는 정상과 비정상이 너무 횡일(橫溢)해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말미암아 정상이 질식되는 시대도 분명히 존재하였다. 나치즘 독일의 지도자들은 정신병자들을 치료실이 아닌 가스실로 보냈다. 가스실로 보내진 정신병자가 비정상인지, 아니면 그들을 가스실로 보낸 나치스들이 비정상이지 엄격히 따져야 할 문제이다. 그러한 절박하고 강압된 사회 속에서 어떤 모순이나 비정
(非正)함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정상인지, 아니면 그것을 심각하고도 예리하게 수상(受像)하는 사람이 정상인지도 따져 볼 일 임에 틀림없다.
긴 안목으로 볼 때, 그 시대에 앞서 그 비정상을 지적하고 그것을 정상화하려는 사람들은 대개 비정상인으로 박해받거나 역경을 헤매어야 했음을 안다. 예수, 석가, 갈릴레이 등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정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정상으로 박해를받아야 했으며, 오히려 그들을 박해한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정상으로 처우되곤 하였다. 그러나 먼 후일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정상과 비정상은 밝혀지기는 했지만, 이렇듯 그들의 사회를, 인간을 어떻게 평가하고 진단하며 나아가서는 내일의 그것들을 어떻게 예견하느냐 하는 과제는 그 시대의 지식인에게 주어진 숙제임이 명백하다. 거기에 '예견하기 위한 과학'의 본질이 있다 하겠다. 그것이 곧 인간을 부재로부터 구하는 길이며, 인간을 불안으로부터 구하는 길이 될 것이다.
현대 사회가 과거에는 경험치 못한 빠른 속도로 엄청나게 변혁되고 있다. 특히 과학 기술에 있어서는 일찍이 인류가 겪었던 5천 년 동안의 변동보다도 최근 5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더 많은 변화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50년간의 기술 혁신은 미처 정신 문명이 뒤쫓아갈 수 없는 폭을 남긴 채 앞질러가고 있다고 하겠다. 원래 문화 변용(文化變容)이란 정신 문화와 물질 문화가 균형 있게 조화 있는 발전을 이루는 속에서, 다시 제도나 전통 등의 적응문화(適應文化)가 조정을 이룰 때 서로 마찰 없는 변혁을 가져오는 것이다. 사실 그러한 속에서도 정신 문화가 언제나 선행되면서 예견과 가치를 부여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뉴턴 이후의 과학 문명
과, 산업 혁명을 통한 기술 혁명은 정신 문화를 앞지르게 되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더욱 그 간격을 넓히고 있다. 이른바 정신, 물질, 적응 문화 등 삼자(三者) 사이에 일종의 문화적 지체(遲滯)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기에 물질적인 면에서는 풍요하고 안이하면서도 정신적으로는 빈곤하며 심리적 갈등을 일으키며 살아야 하는 것이 현대인의 생활이라 하겠다. 그리하여 정신 문화를 압도하는 물질 문명은 개인의 의지나 선택이나 태도와는 상관없이 거대하고도 때로는 치밀한 작용의 변혁을 취하고 있으며, 인간은 그러한 변혁의 권외자(圈外者)가 되지 않기 위하여 안간힘을 다하고 있지만 그 간격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 생기는 인간 소외(人間疎外) 와 인간 경시는 좌절감과 낙후감만 조장케 되는 것이다. 물질 문화에 의한 균형 잃은 사회 변혁을 정상으로 보아야 하는지 비정상으로 보아야 하는지, 그것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주어진 과제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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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변혁이 기존의 경험과 가치를 무너뜨리기에 급급하여 이에 대한 자율적인 대처도 하지 못한 채 어떤 단절을 의식해야 하는 것이 현대인이다. 어느 시대나 장소를 막론하고 인간은 그들 나름대로의 경험을 통한 규범과 가치의 기준에 의지하면서 살아 왔다. 자연이 가지는 절대적인 위력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러한 속에서도 그 환경과 변화 속에 일정한 질서와 규칙이 있어 거기에 대한 예측이나 대처가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꾸준한 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기의 과학과 기술의 개발은 미지의 세계를 밝히기 위한 도전의 심폭(深幅)을 무한한 것으로 만들었으며, 그것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사회 변혁은 더욱 예측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때로는 인간의 주체적 의식을 흐리게 만들기도 한다. 인간을 위한 과학이라기보다 과학을 위해 존재하는 인간으로 전락하게 되는 양 인간 부재를 절감케 하며, 더욱 나아가서 인간 스스로가 그러한 사실조차도 느끼지 못할 일종의 불감증마저 만들어 가고 있다.
첫째, 오늘날까지 인간의 생활 공간은 지구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었다. 그러나 오늘날, 생활 공간을 우주로 확대할 수 있는 가능성과, 물체의 인력권 이탈을 실현시키는 데 성공한 인간의 과학 기술에의 잠재력은 무한히 기존의 경험을 뒤엎고 있다. 그뿐 아니라, 원자 에너지를 활용한 우주와 인간의 신비를 밝힐 수 있는 가능성과 함께 그 과학 기술이 갖는 정확하고도 치밀하며 세분화된 기능은 원자 계산기의 등장까지 가능케 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몇몇 기능 중 하나가 기계를 제작하고 조정하는 것이었지만, 오늘날 인간은 스스로 만든 과학 기술에 의해 공포와 불안을 느껴야 하고, 스스로 만든 과학 기술에 의해 배제되는 결과를 만들어 놓고 말았다. 기계가 대신하는 노동에 의해 인간은 노동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을 누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인간이 노동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생산해 낸다는 창조의 기쁨은 분명 잃어 가고 있는지 모른다. 기계적인 생활 환경, 균일화된 생활 수단, 변화 없는 생활 과정 속에 인간은 안이 보다도 권태를 강하게 의식하면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둘째, 인간의 원자화와 사회의 조직화이다. 개성의 자유, 역할과 기술의 분화 및 전문화, 욕망과 이해의 다양화는 개인을 무한한 것으로 개별화, 이질화(異質化)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이 갖는 능력, 관심, 종교, 가치, 지식, 이념 등을 분화시켜 그것은 끝내 인간의 자기 분열에까지 이끌어 가고 있다. 미시적(微視的)으로 볼 때, 적어도 백인백색(百人百色)의 복잡 미묘한 개성 분화로 말미암아 개인간의 공통의 광장, 공동의 목적, 공감의 윤리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이질화 또는 원자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사회의 조직이나 제도는 이러한 개별화된 인간을 방치해 두지는 않고 있다. 그들 개개인의 개별화하고 이질화하면 할수록 그들 개개인의 능력, 관심, 행동을 동일화시키고 균질화(均質化)시키기 위한 노력과 지혜를 다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것을 물리적 강제나 강압을 통해서 하느냐, 아니면 설득과 이해를 통해서 동조와 공감을 얻느냐의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인구가 양적으로 늘어가고 질적으로 나누어짐에 따라 인간이 모여 만들어진 사회는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그 자체의 효율적인 기능을 수행하기 위하여 조직이나 구조면에서 많은 합리화를 위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관리 사회(管理社會)니 조직 사회니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 대표적인 한 예가 바로 관료적 조직이다. 관료적 조직은 비단 행정 기구뿐 아니라, 산업 조직이나 심지어는 노동 조합에 이르기까지 널리 원용(援用)되어 있다. 각 개인은 이러한 조직이나 기구의 '살아 있는 기계'의 한 부품으로 주어진 역할을 수행케 된다.
셋째, 사회적 사실의 다양화와 인간의 심리 현상과 행위 양식의 복잡화는 인간의 사회 생활과 문화 수용에 많은 제한과 혼란을 가져오게 하였다. 오늘날 인간은 매스 미디어를 떠나서는 지식이나 기술의 전달도, 새로운 정보의 획득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개인은 대도시에 밀집해 살면서 정보 매체와 잠시라도 절연되는 순간 완전히 고립된 인간으로 전락한다. 매스 미디어와 함께 있는 동안 인간은 비로소 어떤 안정과 유대를 느낄 만큼 인간과 매스컴은 밀착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이 갖는 지식이나 기술, 심지어는 가치나 이념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개인의 깊은 사고와 숙려(熟廬)에서 연유되었다기보다 매스 미디어를 통한 정보에 의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 같은 인간은 매스 미디어로부터 벗어날 수도 없지만, 설사 벗어나려 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시도를 하면 할수록 매스 미디어는 보이지 않는 마력으로 개인을 여지없이 포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따져 보면 현대 문명은 지극히 인간의 주체적 의견과, 자주적 판단과, 독자적 행위를 강조하면서도 실은 자기 지향적이라기보다 타인 지향적이라 할 수 있다.
넷째, 비인간화의 메커니즘은 비단 과학 기술의 발달이나 능률 위주의 관료적 기구의 보통화나 대중 문화와 정보 산업의 전능에 가까운 능력화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 자신의 심리나 정신 상황에도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한 심리나 정신의 바탕이 기술이나 기구나 문화 현상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또는 거꾸로 기술·기구·문화 현상 등이 인간의 의식 구조와 가치 체계를 그렇게 하였는지의 논의는 본질적인 문제로서 여기서 논급을 피한다 하더라도 우선 잠정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가설은 그 두 가지 요인이 인과적인 상승 작용을 한다는 점이다.
4
소로킨은 문화를 세 가지로 분류하여 관념 작용적 문화, 통합적 문화, 감각적 문화로 나누고 이 세 가지 문화는 순환하면서 나타나게 된다고 하였다. 경험과 관찰과 분석과 조사를 위주로 하는 귀납적 문화와 사변(思辨)과 이론을 위주로 하는 연역적(演繹的)인 문화 등의 이분법도 그 예의 하나가 될 것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관념 작용적 문화가 하나의 유행으로 지속하면 그것을 판단하고 수정하는 감각적 문화가 대두되고, 그런가 하면 감각적 문화에 항거하는 관념 작용적 문화 또는 그것들을 통합하고 조정하는 통합적 문화가 생기게 마련인 것이다. 어느 한 시대나 장소의 문화가 감각적이라 하면 이는 곧 사회 구조, 생산 조직, 가치 체계, 행위 양식에까지도 그 경향을 뚜렷이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반면 형식과는 달리 내용에 있어서는 그것에 못지 않게 많은 것들과 교착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문화란 이러한 갈등과 모순과 대립의 역정(歷程) 속에서 통합과 분열의 순환을 되풀이해 온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날의 문화가 매우 감각적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문화에 있어서 감각적 요소의 밀도가 높은 시대라 해야 할 것이다. 소로킨의 말을 빌리면, 감각적 문화란 '세속적, 자연 문화적, 현실적, 시각적, 환상적, 일상적, 오락적, 자극적, 악마적, 절충적, 상품적, 유해적, 기교적, 물질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러한 감각적 문화는 나아가서는 말초 감각적 경향에까지 뻗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즉 퇴영적(退孀的), 항거적, 과격적, 향락적, 허무적, 호색적, 경멸적, 가학적(加虐的)인, 그러면서도 품위 없는, 조야(粗野)하고 추악하고 끈질긴, 그리고 폭로적 취미의 문화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한 문화 현상과 정신적 풍토 속에 휴머니즘, 철학적 사변, 도덕이나 윤리, 공동의 질서, 내면화된 가치관, 신앙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감각적 문화가 충만하는 속에서도 그것에 대한 비판과 반성은 물론 나아가서는 관념 작용적 문화에의 귀착을 고양하는 문화 운동도 끊임없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일부의 양식과 지성과 종교가 될 것이며, 그것은 수적(數的)으로나 양적(量的)으로 퍽 열세일지 모르나, 그렇지만 퍽 강인한 것일 수도 있다.
모든 문화의 역사와 전통은 이러한 다수의 감각 문화와 소수의 관념 작용적 문화의 갈등 속에 점철(點綴)되어 왔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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