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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문화의 독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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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논함에 있어서 이것은 내 것이요, 저것은 네 것이다 하는 식으로 그 유래(由來)를 따짐으로써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제 것이라도 점점 자라가는 자기 자신에 맞지 않으면 버리게 마련이고, 아무리 남의 것이라도 성장하는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면 받아들이게 마련인 것이다.
그러므로 외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않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만일, 외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에 독자적인 입장을 살리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남의 것이 아니라 자기의 것이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물론 서구에서 처음 생겨난 것이지만, 미국에 민주주의를 건설한 사람들은 스스로 싸워서 이를 얻은 것이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의 것임과 마찬가지이다. 중국의 불교가 그러하고, 서구 여러 나라의 기독교가 그러하다.
이런 점에서 흔히들 생각하고 있는 것과 한국 민족이 결코 어리석지는 않았다. 한자(漢字)를 쓰되 이것을 우리말에 맞도록 쓰고 있었다. 이두(吏讀)가 그것이었다. 아무리 한문학의 대가(大家)라 하더라도 한자 지식만 가지고도 향가를 읽어 내지 못하며, 우리말을 알아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은 그의 정서를 한자라는 그릇에 담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또 사상면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아마 우리 나라에 들어오기는 유교가 불교보다 먼저였겠지만, 삼국 시대 사람들은 불교를 보다 더 숭상(崇尙)하였다. 중국에서 들어오는 것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사회적 욕구에 알맞은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강력한 왕권을 중심으로 한 중앙 집권적 귀족국가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것은 불교였지 유교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삼국이 불교를 받아들인 연대는 대략 삼국이 그들의 국가 체제를 정비한 연대와 일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를 받아들이는 데 열심인 것은 왕을 중심으로한 귀족들이었지 일반 민중은 아니었다. 일반 민중은 그들대로 생리(生理)에 맞는 불교, 가령 정토교(淨土敎) 같은 것을 받아들였다. 한국 불교사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원효(元曉), 의천(義天), 지눌(知訥) 등은 모드 한국의 현실에 적합한 불교 이론을 세우기에 노력한 인물들이었다. 한국의 불교는 한국 불교이지, 중국의 불교나 중국의 문화일 수는 없는 것이다.
조선 왕조가 서면서 불교가 유교로 바뀌었다. 이것은 밖으로부터 강요된 것이 아니라 안으로부터의 요구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조선의 유교라 해서 무조건 중국 유교의 모방에만 그친 것이 아니고, 사단 칠정론(四端七情論) 같이 한국인의 치밀한 철학적 이론을 나타내 주는 면이 있었음이 지적되고 있다.
정치 제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흔히 한자로 된 중국적인 용어로 인하여 중국 것의 모방으로 잘못 인식된 것들이 많다는 사실은 요즈음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가령 구분전(口分田)이라는 것이 그러하다. 당(唐)에서는 각각 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일정한 면적의 땅을 구분적이라고 말하는데, 고려에서는 그것이 주로 전쟁 미망인에게주는 땅이었다. 중국의 용법을 알고 있었을 것인데도 어째서 이렇게 다르게 썼는지 그 까닭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중국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예는 지극히 작은 것에 지나지 않지만, 중앙이나 지방에 있어서의 행정 조직의 근본에 있어서도 커다란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예술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앞서 석굴암의 조각이 그리스, 간다라 및 당의 영향 밑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였지만, 그러나 석굴암 안의 여래(如來), 보살(菩薩), 나한(羅漢) 등을 대할 때 거기서 느껴지는 것은 신라 귀족의 체취(體臭)일 것임에 틀림없다. 불국사의 석가탑이나 다보탑에서 느끼는 것도 역시 매한가지다. 이들은 어디까지나 한국인이 창조한 한국의 정서가 풍기는 한국의 예술이지, 중국의 예술일 수는 없다. 고려의 청자(靑瓷)도 역시 그러하다. 고려 사람이 아니면 못 만드는 하나의 독특한 맛이 있는 것이다. 조선의 백자(白磁)가 또한 고려 자기 이상으로 한국적인 정서가 어린 것임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요컨대 우리 나라에는 중국 것의 모방에 지나지 않는 것도 있기는 하지만, 자기의 독창성(獨創性)을 발휘하는 데 결코 인색하지 않았음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 문화는 스스로 한국 문화이지 결코 중국 문화의 아류(亞流)일 수는 없는 것이다.
♣ 수업중에 읽는 155가지 이야기/교육부 독서지도 정책 연구학교/인천학익여고 자료
- 이기백, [민족과 역사], (일조각, 19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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