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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일한 서사시 <용비어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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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은 이씨조선의 건국을 신성화·합리화 하기 위해서 장중한 서사시를 계획했다. 그는 새로 창제한 훈민정음을 하나의 시금석으로서 사용하기 위해 이 막중한 노래를 지었던 것이다. 흔히, <龍飛御天歌(다음부터는 <龍歌>라고 약칭하겠다)>란 이름은 알고 있으나,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일반 교양인들도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龍歌>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하겠다.
'龍'은 '王'을 상징한다. <龍歌>는 '용'이 날아서 하늘을 덮었다는 뜻이니, 이 '용'들은 구체적으로 세종의 六祖(穆祖, 翼祖, 度祖, 桓祖, 太祖, 太宗)를 지칭한다고 보겠다. 새 국가건설을 위해서 진력한 이 여섯 선조들의 업적을 어사시의 형식으로 노래한 것이다. 용가는 한글로 창작하기 전 세종 24년 봄부터 경상, 전라 두 도의 관찰사에게 傳旨를 내려, 태조가 운봉에서 왜적과 싸우던 사적을 탐문하여 올리라 하여, 이 <용가>를 편찬하게 했으며, 동28년 훈민정음 반포 후에는 <태종실록>을 상고하여 <용가>詩를 첨가하여 넣었고, 同 29년 2월에는 <용가>에 주석을 붙여 10권을 만들었으며, 동년 5월에는 <용가>를 관현에 조음하여 치화평, 취풍정, 봉래의, 여민락 등의 악보를 만들어서 궁중연회에 쓰게 하였다.
이와 같이, <용가>는 한글 반포 이전부터 계획하여 6년만에 완성되었는데, 이것은 노래(歌)와 주석, 역사가 종합되어서 이루어진 서사시이면서 관현악에 맞추어 부를 수 있는 음악성까지 구비하고 있다.
세종대왕은 무엇보다도 새 문자인 훈민정음으로 선조들의 창국성업을 노래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남들이 '언문(諺文)'이라고 멸시한 정음에다가 막중한 창업의 노래를 실음으로써 문자의 권위를 높이려 했던 것이다. <용가>는 이와 같이 훈민정음의 제정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는 데에도 의의가 있다. 그 내용은 이미 언급한 세종 육조의 성덕을 찬송하고, 또는 자자손손이 왕기를 튼튼히 지켜 나가도록 규계하고 있다. 좀 구체적으로 분류하면, 총 1백 25장의 노래에서 제1장은 전체 노래의 序章이고, 제2장에서 109장까지는 선조들이 왕국의 터전을 마련함이 실로 원대하다는 것과 그 왕업의 힘들었음을 노래했고, 제110장에서 끝까지는 위의 왕업을 되풀이하면서 자손들을 경계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 전체가 3단계로 되어 있는데, 제1장이 전체의 序章이라면 제2장은 두 번째 단계의 序章이 된다.
해동(海東) 육용(六龍)이 나라샤
일마다 천복(天福)이시니
고성(古聖)이 동부(同符)하시니
이것은 제1장이다 '해동육용'은 세종의 육조를 상징하는데, 그들의 사업은 모두 하늘의 뜻이요, 옛 성현이 도와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총 125장 중에서 가장 걸작으로 치는 것은 제2장이다.
뿌리깊은 은
바람에 아니 뮐새
꽃 좋고 여름 하나니.
샘이 깊은 물은
가마래(가뭄에) 아니 그츨새
내이 일어(강을 이루어)
바라레 가나니.
순수한 우리말로만 표현된 매끈한 노래와 그 심원한 뜻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끄떡없거니와, 꽃도 이쁘고 열매도 풍성하다. 수원(水源)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유구히 흐르고 흘러서 바다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항상 푸르고 풍성하고 꽃과 열매가 탐스럽듯이, 이 왕국(王國)은 번창할 것이고 천고(千古)에서부터 영원히 흐를 가람(江)은 마침내 바다에까지 흘러서 동해와 서해를 이루어 이 강산을 풍요스럽게 지켜 줄 것이다. 서정적이면서도 굳은 의지, 쉬우면서도 깊은 철학을 간직한 훌륭한 작품이다. 아직도 시험 단계에 있는 한글로 어떻게 이처럼 미끈한 작품이 생겨날 수 있을까하고 놀랄 정도다. 이 노래에 장엄, 유려한 곡을 붙여서 모든 국민이 애창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종종 생각해 본다.
민족영웅의 행위를 중심으로 하는 역사적 사실을 장중, 웅대한 결구(結構)로 묘사한 시를 통칭 영웅서사시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역사적 사실과 창조적인 예술과 굳게 통일되어서 이루어진 것이라야 영웅서사시라고 할 만하다. 이러한 각도에서 볼 때 과연 <용가>도 영웅서사시가 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이미 學界에서도 논의된 바 있으나, 대체로 <용가>를 영웅서사시의 범주 속에 넣는데는 이설(異說)이 별로 없다. 그 논리적 근거로는 ①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설화를 소재로 했다는 점, ②많은 영웅이 등장하고 이 영웅들 중에서 이태조(이성계)라는 중심 인물의 활약이 부조(浮彫)되어 있다는 점, ③영웅에 수반하는 조건 - 예컨대 준마(駿馬), 용맹(勇猛), 무기(武器), 무훈(武勳) 등이 화려하게 장식되었다는 점, ④어디까지나 사건의 서술이 주정적인 정서의 영탄(詠嘆)이 아니라는 점 등이다. 이와 같은 여러 점은 모두 <용가>의 서사시적 분위기를 살리고 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비서사시적 요소도 지적할 수 있다. ①율문(律文)으로 된 원가만으로는 서사적인 스토리를 이해하기 힘들다(산문으로 된 한문 해설을 활용해야 전체의 사건을 이해할 수 있다.) ②전체를 일관하는 스토리가 없이 산만하고 단편적인 사건의 연속이다. ③서사시의 특징인 영웅의 분노, 항거, 갈등, 증오와 같은 장면이 극히 미약하여 서사시적인 긴박감이 결여되어 있다. ④주인공인 이태조의 성격이 혁명적 영웅으로서는 통일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부주인공격인 태종(방원)이 훨씬 영웅화되어 있다. 위와 같은 비서사시적 여건들이란, 물론 서구문학에서 말하는 영웅서사시와 비교해서 지적되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의 <용가>를 반드시 서구적 공식에 우겨 박아서 비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동양적이고 조선적인 환경과 당시의 시간적 조건을 고려할 때에는 <용가>는 훌륭히 영웅서사시로 규정지을 수 있다. 그러면, 이 작품에 나타난 주인공의 활동을 간략히 분석해 보겠다.
이성계를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서 장검을 채우고 준마를 태우고 그 인간적 미질(美質)과 영웅적 업적이 이성계를 장식하고 있다.
①무용 선사(활의 명수), ②승마의 명수, ③백전백승의 용장, 홍건적, 왜적, 여진족 등 다섯 차례의 싸움에서 외적(外賊)을 물리쳤다. ④스포츠의 명수, 격구를 잘한다는 것이 한 장에서 표현되어 있다. ⑤인간적인 미질(美質)로서는 우선 겸양의 인간이다. 고려왕에게 벼슬을 사양하고 낙향하겠다는 대목과, 조선왕조에 태조로 즉위하는 것을 굳이 사양한 대목이 강조되어 있다. 그리고, 부하를 사랑하는 상관으로, 또 우애가 극진한 학자를 존경하는 선비 등으로 과장되어 표현되어 있다. ⑥끝으로 그의 정치적인 업적으로는, 중흥주로서의 등장, 전제(田制)의 개혁, 정적(政敵)의 소탕 등이 묘사되어 있다. 총 125장의 <용가>에서 이성계에 관한 것이 80장, 이방원이 21장이고, 익조가 9장, 도조가 6장, 목조가 3장, 환조가 2장의 비율로 되어 있다. 이 통계로도 이태조가 주인공이요, 태종이 부주인공임을 알 수 있다. 그런, 창업의 중요한 일을 모두 방원이 과감성 있게 처리했다. 그때마다 이성계는 막후(幕後)에 있었다. 이 밖에 <용가>에 등장하는 인물로는 정몽주, 최영, 이두란, 방간 등이 단역의 구실을 하고 있으나, 이들은 한결같이 주인공과 부주인공의 활용을 부조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여인의 역으로는 태조비와 태종비가 훨씬 박력있고 또 진취적이어서 영웅의 아내다운 데가 있으나, 그것이 너무 간결한 것이 대단히 안타깝다.
♣ 수업중에 읽는 155가지 이야기/교육부 독서지도 정책 연구학교/인천학익여고 자료
- 장덕순, 한국 고전문학의 이해, 일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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