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철 

요즈음의 학생들이 어떤 책을 주로 읽는지 알 수 없 거니와 나 의 경우를 돌아보면 가장 왕성한 독서를 했던 시절이 바로 고등 학교 시절이었다. 나이로 친다면 15세 에서 20세까지가 된다.

이 때에 읽은 것으로 지금까짇 기억에 남는 것이 빅토르 위고 의 「레미제라블」, 톨스토이의 「부활」, 「 안나 카레니나」, 「전쟁과 평화」, 스탕달의 「적과 흙」, 플로베르의 「보봐리 부 인」,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도스토예프스 키의 「죄와 벌」, 「백치」등이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괴테를 빠뜨릴 수 없다. 즉 「햄릿 」, 「베니스의 상인」, 「젊은베르테르의 슬픔」등이 그 것 이다. 그밖에도 발자크, 막심 고리키, 고골리, 안톤 체호프, 투 르게네프 등 세계문학의 대표적인 고전들을 이 무렵에 섭렵하였 다. 그리하여 3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그 때 읽은 그 신선한 감동과 충격이 오늘까지의 나라는 사람을 형성하는데 가장 큰 몫을 했던 듯이 여겨진다.

어째서 그런가 ?
우리가 글을 읽는다는 것, 특히 세계적으로 이름이 있는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 자신이 미처 경험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의 풍부한, 그리고 독특한 혹은 처절한 인생 경험을 고스란히 공짜로 경험할 수가 있다는 뜻이다.

인생을 산다는 것은 크든 작든 바로 경험의 누적이며, 경험만큼  귀하고 값진 것이 없다. 사람은 경험을 통해서만 진짜 삶의 슬기 를 알차게 토득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한평생의 경험이란 스스로 한정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경험을 통해서 인생의 슬기와 지혜를 배운다는 것도 그 한정된 경험 안에서의 이야기다.

그런데 독서란 무엇인가 ? 풍부한 남의 경험을 자기의 경험인양  체험할 수 있는 가장 편리한 길이다. 생각해 보라. 열다섯 살에서 스무 살의 청년이 그야말로 인생의 경험이라곤 거의 백지나 매한 가지의 상태에서 남들이 살아가는 삶을 자기가 사는 듯이 경험 한 다는 것은 공으로 얻는 것치고는 얼마나 값진 것인가 ?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나이만큼의 수준으로 읽는 것이다. 같은 소설이라도 열다섯 살 때 읽는 것과 예순 살이 돼서 읽는 것은 천양지차가 있다. 소설 속에 벌어지는 인생은 같은 인생이지만 그 것을 겪는 독자는 그 나이 분수만큼 겪는 것이다.


[이호철〈조금만 눈을 들면 넑은 세상이 보인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