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판단의 뜻
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부문 가운데 하나는 판단에 관한 것이다. 앞에서 우리는 개념에 관해서 살폈는데 개념 홀로는 우리의 생각을 온전히 나타낼 수가 없다. 그 개념들을 서로 연결하여 생각을 통일적으로 드러내야 우리의 사고 작용이 더 온전하게 된다. 이렇게 개념의 결합으로 한 걸음 나아간 사고 작용을 하는 것이 판단이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대할 때 그 한 모습을 주목하고 그것과 관련된 생각을 펴는 일이 있다. 이를테면, 자연계의 모습을 대하였을 때 아름답게 피어 있는 꽃을 바라보고 그것에 대하여 생각을 펴는 따위이다.
이렇게 한 고정된 대상 개념을 선택하면 그것에 대하여 무엇인가 한정하는 사고 작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 한정 내용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그 중에 "식물이다" 따위로 한정하여 보는 것이 한 예가 될 것이다. 그 두가지를 연결하여 "꽃은 식 물이다"와 같이 규정하게 되면 그것을 판단이라고 한다. 그런 판단을 일반화하여 말하면 "A는 B이다"와 같은 형식이 된다.
이런 판단 작용에서 A는 판단의 주어(주사)라 하고 B는 서술어(빈사)라 한다. 말하자면 판단이란 주어를 선택하고 그것에 대하여 어떻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주어 A는 "이 꽃," "저 개나리" 따위와 같이 특정 사항을 가리키기도 하고 "진달래 꽃," "들꽃" 따위와 같이 한 부류(무리)의 꽃을 가리킬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모든 꽃"과 같이 꽃이라는 부류 전체를 가리키는 수도 있다. 서술어 B도 여러 가지로 선택될 수 있다. "아름답다, 식물의 일종이다, 시들었다" 따위와 같이 주어를 한정하고 규정할 수가 있다. 주어와 서술어의 결합 관계를 선택하는 데 따라 판단의 내용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1)
(가) 꽃은 아름답다.
(나) 이 꽃은 아름답다.
(다) 우리집 뜰의 저 꽃은 아름답다.
(1)에서 (가)와 같이 일반성있는 주어를 선택하면 그 판단은 부류 전체에 걸친 일반적 판단이 된다. (나)나 (다)와 같이 주어를 특수 사항에 한정하면 그 적용 범위가 좁아지는 특정 판단이 된다. 이런 개별적인 판단은 일상 대화 등에서는 많이 쓰이는 것이지만 일반적인 논의나 논술법 등에서는 그런 개별적인 판단보다는 일반성이 있는 판단이 중심을 이룬다.
다음 글은 "꽃이 아름답다"는 판단을 소주제로 삼아 쓴 글이다.
[보기]
꽃은 아름다운 것이다. 꽃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을 가리켜 목석 같은 인간이라 한다. 꽃에는 장미나 모란과 같이 꽃중 왕이라는 화려한 꽃도 있고 청초한 들국화나 민들레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것이나 특색있는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 온 들판에 장미나 모란만 가득 피어 있고 다른 꽃이 전혀 없다고 하면 누가 장미나 모란을 아름답다고 하겠는가? 이는 마치 세상에 어디를 가나 이른바 미인이라는 사람만으로 득실거리는 경우처럼 즈겨운 꽃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니 이름 난 화려한 꽃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각기 특색있는 아름다움을 갖춘 모든 꽃들은 그 아름다움으로 조화를 이루어 자연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다.
--임유종, "꽃의 아름다움" 중에서
이처럼 우리의 판단은 그것을 심화하고 확대하여 가면 얼마든지 좋은 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판단은 실제로 두 개념을 연결짓는 사고 작용이라 할 수 가 있다. 개념은 특정한 사물에만 한정되지 않고 그 무리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성이 있는 판단의 주어나 서술어로 많이 등장한다. "저 소나무"라 하면 특적한 실물을 지시하는데 그치지만 "소나무"라 하면 소나무 전체가 지닌 공통된 속성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므로 판단의 범위는 훨씬 넓어질 것이다.
다음 글은 소나무와 관련된 여러 판단들로 이루어진 글이다.
[보기 4.20]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소나무를 사랑하셨습니다. 삼천리 금수강산의 대표적 나무는 뭐니 뭐니해도 늘 푸른 소나무입니다. 깊이 뿌리내리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 자리 내 땅 내 흙을 지켜 사는 소나무야말로 만고불변의 지조를 보여줍니다. 정몽주의 임향한 일편단심이나 성삼문의 독야 청청이 다 이 소나무에서 나왔습니다. 청태종 오랑캐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없다는 홍익한, 윤집, 오달제의 지조와 순국정신, 왜놈이 주는 물 한 모금도 마실 수 없다고 한 면암 최익현 대감의 그 꿋꿋한 나라사랑, 일본은 망한다 망하고야 만다고 외치다 돌아간 순국소녀 유관순 등의 횃불같은 지조가 다 이 소나무의 기상에서 나왔습니다. 우람한 솔바람 소리 들어 보셨습니까? 아람드리 솔숲이 우는 소리 태평양 성난 파도보다 더 큰 벼락이었습니다. 바람에 쏴아 우는 솔바람 소리에 온갖 잡념이 다 사라지고 일념으로 타오르는 정의의 신념이 샘솟았습니다. 소나무는 아침 저녁으로 변하는 잡목이 아닙니다. 소나무는 이 겨레 기상과 지조의 상징입니다.
<오동춘, "짚신 정신" 중에서 >
2. 판단과 계사
판단은 주어와 서술어를 연결하는 것이므로 그 연결 고리가 필요하게 된다. 그런 연결 기능흘 가진 것을 계사 (copula) 또는 연결어라 부른다. 이것은 주어, 서술어와 함께 판단의 구성 요소가 된다. 이것이 온전히 빠지면 판단은 성립되지 않는다.
(2)
(가) 꽃은 식물이다.
(나) 돌은 식물이 아니다.
(3)
(가) 꽃은 아름답다.
(다) 꽃은 아룸다운 것이다.
(4)
(가) 개가 달린다.
(나) 개가 달리고 있다.
(다) 개가 달리고 있는 것이다.
(5)
(가) 어떤 여자는 바가지를 긁는다.
(나) 어떤 여자는 바가지를 긁는 여자이다.
(2)에서 (가)의 "이다," (나)의 "아니다"가 대표적인 계사 형태이다. (3)의 (가)에서는 그런 계사가 안 나타나 있으나 (나)와 같이 변형시켜 보면 계사가 개입됨을 알 수 있다. (4)와 같은 동작에서는 계사가 표면화되지 않았으나 시간적 관계를 초월한 사태의 규정이므로 (나)나 (다)와 같은 방식으로 계사가 개입된다고 할 수가 있다. 또 동사의 경우에 (5가)는 (5나)와 같이 해석된다고 보기도 한다.
3. 판단의 참과 거짓
판단은 객관적인 사태와 일치하면 참된 판단이라 하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거짓된 판단이라 한다. 또 주어와 서술어의 개념 자체에 어긋남이 있을 때에는 모순된 판단이라 한다.
(1)
(가) 쌀은 먹거리이다.
(나) 쌀은 광물이다.
(2)
(가) 진달래는 빨갛다.
(나) 진달래는 까맣다.
(3)
(가) 원은 둥글다.
(나) 원은 네모꼴이다.
(1)과 (2)에서 (가)는 일반으로 사태와 일치므로 참된 판단이지만 각 (나)는 그러한 일치점이 없으므로 거짓된 판단이 된다. (3)의 (가)는 바른 판단이지만 (나)는 서로 엇갈린 개념을 연결한 것이므로 모순된 판단이다. 이것은 물론 참된 판단도 못된다.
4. 판단의 갈래
판단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나누어 볼 수가 있다. 여기에서는 그중에 중요한 것만을 골라서 간단히 살펴 본다.
(1)전칭, 특칭 및 단칭 판단
판단은 주어의 외연이 부류 전체에 걸치느냐 일부에 한정되느냐에 따라 전칭(全稱)과 특칭(特稱)으로 나뉜다. 또 그것이 특정한 한 대상에만 한정될 때에는 특칭 판단이라 한다. 이 세 가지는 판단의 양에 따른 구분이다.
(1)
(가) 모든 사람은 이성적이다. [전칭 판단]
(나) 일부 사람은 양심적이 아니다. [특칭 판단]
(다) 철수는 양심적이다. [단칭 판단]
이 문제는 뒤에서 명제를 다룰 적에 다시 논의하거니와 전칭과 특칭을 구분하지 않고 생각하거나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5)긍정 판단과 부정 판단
긍적 판단은 주로 계사 "이다"를 써서 하는 서술이고 부정 판단은 "아니다"로 서술하는 것이다. 이것은 판단의 질적인 구분이 된다.
(1)
(가) 개는 충실한 동물이다. [긍정 판단]
(나) 곰은 미련한 동물이 아니다. [부정 판단]
판단은 주어/주개념과 서술어/빈개념과의 관계에 따라 다음 세 가지로 갈라진다.
정언 판단 : 주어와 서술어를 단정적으로 연결하는 판단이다.
(1) 추석은 명절이다.
가언 판단 : 가정적 조건을 바탕으로 성립하는 정언 판단이다.
(2) 추석이 명절이면 그날은 휴일이다.
선언 판단 : 주개념과 그것을 규정하는 개념이 선택적으로 결합되는 판단이다.
(3) 추석은 명절이거나 휴일이다.
이 세 가지 판단은 우리의 일상 대화에서나 논술문 등의 글에서 흔히 쓰인다. 이런 판단은 모두 그 요건과 형식을 갖추어 참된 판단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판단은 양상에 따라 곧 두 개념의 결합이 가능적인가, 사실적인가, 아니면 필연적인가에 따라 다음 세 가지로 나뉜다.
개연(蓋然) 판단 : 주어와 서술어의 결합이 확실치는 않으나 그 가능성이 있음을 드러내는 판단이다.
(1) 그가 착한 사람일 것이다.
실연(實然) 판단 : 주어와 서술 개념의 관계가 실현되어 있음을 주장하는 판단이다.
(2) 그가 착한 사람이다.
필연 판단 : 주어와 서술 개념의 관계가 반드시 이루어 짐을 드러내는 판단이다.
(3) 둘의 세곱은 여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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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론에 관한 이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