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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도의 시대에 맛보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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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의 시대에 맛보는 은밀한 즐거움, 책 읽기
인터넷에 접속하면 엄청난 정보의 양에 놀란다. 70일 단위로 그 정보량은 두 배가 된다. 정보들을 공유하게 만든 디지털 환경은 그야말로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켰다. 가공할 속도의 시대이다. 현대인들의 '생각'에도 좀더 빠른 속도의 추를 매달라고 재촉한다. 사람들의 바쁜 걸음으로 채워지는 길거리 풍경. 일터에선 경쟁하느라 눈코 뜰새 없다. 어제의 지식이 오늘은 통용되지 않는다. 모든 노력은 화폐의 가치로 평가된다. 화폐로 바꾸지 못하는 가치는 쉽게 용도 폐기된다.
현란한 속도의 세상 속에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그 변화 속에 급히 동참해야 할 것 같은 조급증에 시달린다. 기업의 많은 인재들이 닷컴으로 빠져나간 현상도 그런 조급증의 한 반영일 수 있다. 빠른 세태를 좇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변화 공포증에 빠지는 것도 사회적 현상일 것이다. 사람도 그대로이고 세상도 그대로인데, 모든 게 달라져야 한다고 한다. 삶의 속도가 빨라져 가면 갈수록 내면의 공허는 커져만 간다. 그럴 때면 더욱더 간절한 것, '느림'과 '몰입'이다. 그곳으로 들어가는 문은 '독서'다.
읽기에 사로잡힌 인물들의 이야기를 <독서의 역사>에서 읽었다. 10세기 페르시아의 총리를 지낸 이스마엘. 11만 권의 도서를 소장한 그는 먼 곳으로 여행할 때면 소장 도서를 낙타 400여 마리에 나눠 싣고 다녔다. 그는 책을 쉽게 골라 읽을 수 있도록 낙타가 책제목 순으로 이뤄진 대열을 만들고서 이탈하지 않도록 특수훈련을 시키기도 했다. 책 보따리 없이는 남극이든 아프리카든 결코 여행을 떠날 수 없는 걸로 알았던 빅토리아여왕 시대의 교양인 아문젠은 남극탐험 길에 얼음장 밑에 책 보따리를 빠뜨리고는 존 고든의 <고독과 고통에 빠진 폐하의 초상화> 단 한 권으로 객지에서의 기나긴 외로움을 이겨냈다. 또한 읽기를 너무 좋아해 길거리에 나뒹구는 종이조각까지 읽었던 <돈키호테>의 세르반테스, 나체인 채로 바위에 올라가 땀이 식을 때까지 <헤로도토스>를 읽었다는 영국의 시인 셸리 등 무슨 꿍꿍이 수작이라도 부리듯 책에 파묻혀 책 세상에 빠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읽기는 개인이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은밀한 특권이자 빠른 속도의 시대에 느림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즐거운 체험이다. 책 읽는 모습은 아름답다. 스산한 가을 바람 속에서 유유자적, 요람의 흔들림에 몸을 맡기며 책장 넘기는 소리, 잔뜩 짊어진 배낭의 청년이 기차 안에서 펼쳐든 문고판의 여유란!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아야 한다는 심리적 위축에 대한 저항감으로 지금 서점에서는 '느림'을 예찬하는 책들이 사랑받고 있다.
지난 3천 년 동안 인류 문명사는 이런 느림의 여유를 간직한 읽기 행위가 정신세계의 축적을 이루어 왔다. 인간의 오랜 지적 유산을 전수하고 풍부한 문명의 역사를 일구기도 했다.
누구나 빠른 세태 속으로 치달리는 시대에 느림과 여유를 권장하는 독서가 정체나 무가치란 말로 치부되지 않기를, 우리 모두 행복한 책 읽기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기를.
[심순영 / 생각의 나무 편집부 과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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