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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온의 별난 독서 |
걸어다니는 책
조선 세조 때에 영중추부사라는 벼슬을 지낸 김수온은 책을 읽는 데에 이상한 버릇이 있었습니다. 그는 남에게서 빌려 온 책도 한 장씩 뜯어서 소매 속에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외웠습니다. 그러다가 막히는 곳이 있으면 꺼내 보고, 보지 않아도 모두 욀 정도가 되면 책장을 찢어말아서 노끈으로 만들어 물건을 묶는데 쓰곤 하였습니다.
하루는 영의정 신숙주에게 귀한 책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습니다.
"대감 댁에 귀한 책이 한 권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좀 보고 싶으니 빌려주십시오."
그러나 신숙주는 그 책을 자기도 아끼고 있었기 때문에 빌려주기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핑계를 대었습니다. 그러나 물러설 김수온이가 아니었습니다. 김수온이가 책에 대해 남다른 욕심이 있다는 것을 안 신숙주는 마지못해 책을 빌려주며 다짐하였습니다.
"이 책을 그대로 베끼고는 도로 가져와야 하네. 기간은 열흘로 하겠네."
그런데 열흘이 지나도 김수온은 책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책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신숙주가 책을 찾으러 김수온의 집으로 갔습니다.
신숙주는 김수온의 방에 들어가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김수온이 신숙주의 책으로 벽과 천장에 도배를 했는데 새까맣게 그을려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책이란 모름지기 읽는 사람이 주인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아무리 베껴 두면 무엇을 합니까? 읽어야 하지요. '책을 백 번만 읽으면 그 뜻을 저절로 깨우치게 된다' 하여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책을 백 번 정도 읽으려면 누워서도 읽어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했소이다. 이제 이 책의 내용을 다 알게 되었으니 곧 뜯어다가 다시 책으로 엮어 돌려 드리겠으니 용서하시지요."
김수온은 태연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신숙주는 화가 났지만 꾹 참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내가 그 책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을 때마다 대답이나 잘 해 주구려."
"네, 그거야 어렵지 않습니다. 그것은 일찍이 제가 바라던 것이옵니다."
그리하여 김수온은 신숙주의 옆에서 신숙주가 모르는 것이 있을 때마다 대답해 주었습니다. 말하자면 김수온은 신숙주의 걸어다니는 책이 된 셈이었습니다.
훗날 <동문선(東文選)>에 실린 김수온의 글을 보면 그가 얼마다 독서를 많이 하였는가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동문선은 조선시대 성종 임금 때에 유명한 문장가인 서거정·양성지 등이 임금의 명령을 받아 우리 나라 삼국 시대 후반부터 조선시대 중반까지 학자들이 쓴 글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난 것만 뽑아 엮은 문집입니다. 거기에 김수온이 쓴 <뜰에 핀 매화>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주역(周易)>의 상(象)으로 말하면 이 때는 모든 양(陽)이 다 사라지고 음(陰) 뿐인데, 위에서 없어진 양이 아래로 돌아와 양이 하나인 복괘(復卦)가 되니 시기로는 11월이다. (중간 줄임)
유자후(柳子厚)는 이 때를 가리켜 '산에는 날아다니는 새조차 없고, 길에는 사람의 발자취도 끊어지네.'라고 읊었는데, 눈과 서리가 내릴 때의 기후를 잘 묘사하였다고 볼 수 있다. (아래 줄임)
위의 구절을 보면 그가 <주역>과 중국의 시인 유자후의 글을 자세히 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책을 많이 읽어야 훌륭한 문장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후섭 엮음 /독서동기 형성 유발 자료집 /'소의 뿔에 책을 걸고'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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