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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정을 밟아 씁니다 |
먼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글의 주제와 내용을 짜요. 이 때는 혼자서 짜기보다는 여럿이서 의견을 모으면 내용이 더 튼실해진답니다. 주제와 내용을 정한 다음에는 그것을 바탕으로 원고지나 연습장에다 글을 써요. 이렇게 처음 쓰는 글을 ‘초고’라고 하지요. 이어 초고를 소리 내어 읽어보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고치고 다듬어요. 그런 다음에야 숙제 공책에다 옮겨 적습니다. 이렇게 글쓰기를 마치는 것을 ‘탈고(脫稿)’라고 해요.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림 그릴 때 색칠부터 하는 어린이는 거의 없잖아요. 그랬다가는 그림을 망치고 다시 그려야 해서 복잡해질 게 뻔하니까요. 그런데 어째서 글을 쓸 때는 과정을 무시하고 곧장 쓰려고 할까요? 아마 글쓰기 과정을 잘 몰랐거나, 과정을 밟아 쓰면 얼마나 편리한가를 절실히 깨닫지 못해서 그랬을 거예요.
제 경험담 하나 들려줄게요.
처음 미국에 공부하러 갔을 때, 대부분의 미국 학생들이 글을 잘 쓰는 것을 보고 저는 충격을 받았어요. 글이 논리적이고 깔끔하면서도 부드럽고 재미있을 뿐 아니라 알찬 정보를 듬뿍 담고 있더군요. 저는 ‘이 나라 사람들은 글재주를 타고 나나 보다!’고 부러워하면서, 제 글이 변변치 못한 까닭을 한국의 조상 탓으로 돌렸어요.
그러던 어느 날, 서점에 갔다가 어린이 글쓰기 책 베스트 셀러들을 보았지요. 제목들이 이랬어요. ‘이 책을 읽지 않고는 절대로 학교에 입학하지 마라-글 숙제에서 살아남기’ ‘쓰기 숙제-2·3학년 어린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 ‘멋진 독후감을 어떻게 쓰나’….
한국에 두고 온 딸아이 생각이 나서 얼른 펼쳐 보았어요. 그런데 뜻밖에도 내용이 시시하더군요. 제가 알고 있던 글쓰기 과정을 미주알고주알 설명해 놓았을 뿐 특별한 것이 없었어요. 특히 책마다 하나같이 ‘주제와 내용 짜기-초고 쓰기-고치고 다듬기-옮겨 적고 탈고하기’의 과정을 반드시 지켜 쓰라고 강조하고 있었어요. ‘칫, 글 잘 쓰는 비결은 알려 주지 않고 요즘같이 바쁜 세상에 ‘과정 밟아 쓰기’가 뭐람!’ 저는 크게 실망을 하고 돌아왔어요.
하지만 그 뒤로 눈여겨보니까 실제로 미국 친구들이 ‘과정 밟아 쓰기’를 실천하고 있지 뭐예요. 고민하면서 주제를 정하고, 사람들과 의논해서 내용을 짜요. 또 도서관과 인터넷을 뒤져서 자료를 모은 뒤에 조심스럽게 초고를 씁니다. 그런 다음 초고를 꼼꼼하게 읽어보고 또 다른 사람들도 읽게 해서 틀렸거나 싫은 표현들을 고치고 다듬어요. 그렇게 공을 들인 다음에야 탈고를 합니다. 어릴 때부터 그런 쓰기를 몸에 익혀 두기 때문에, 커서도 그렇게 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더군요. 제가 하찮게 여겼던 ‘과정 밟아 쓰기’가 바로 그들이 글을 잘 쓰는 비결 가운데 으뜸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저도 이런 희망을 갖게 되었어요. ‘아하, 조상 때문이 아니라면 나도 글을 잘 쓸 수가 있겠구나!’ 그러고서 과정 밟아 쓰기를 실천해 보았더니 과연 글쓰기가 훨씬 편하고 좋아졌어요. 어린이들도 꼭 실천해 보세요. 또 습관을 들여 놓으면 어느 나라에 가서도 글쓰기 때문에 고생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문우일/과정중심 글쓰기/소년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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