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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넓은 주제에서 좁은 주제로 파고들어야 |
올해도 어김없이 영희네 학교에서는 개교 기념 글짓기 대회가 열렸습니다. 담임 선생님께서 칠판에다 ‘주제:우리 학교’라고 쓰시자, 여기저기서 훅훅 한숨짓는 소리가 들립니다. 성 마른 태훈이가 마침내 불만을 말합니다.
“또 ‘우리 학교’예요? 벌써 똑같은 주제로 세 번이나 썼는 걸요?”
영희도 가슴이 답답해 옵니다. 이제 학교에 대해서는 더 이상 쓸 말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할 수 없이 영희는 작년에, 재작년에, 재재작년에 썼던 말을 다시 씁니다.
대회가 끝나고 뽑힌 원고들이 학교 현관에 나붙었습니다. 원고들을 들여다보던 영희는 자꾸만 웃음이 나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글 제목이 죄다 ‘우리 학교’였으니까요. 게다가 내용도 작년에, 재작년에, 재재작년에 읽었던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친구들도 이런 경험이 있나요? 오늘은 이 문제를 함께 풀어 보려고 해요. 뾰족한 수가 있거든요.
무엇보다도 ‘주제는 제목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주제가 ‘우리 학교’라고 해서 제목도 ‘우리 학교’일 필요는 없거든요. 주제는 글의 중심 내용이지 제목(글의 이름)은 아니니까요. 제목은 주제 안에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정할 수가 있어요. 예를 들면, ‘우정이 시작된 학교’라든가 ‘스마일 수위 아저씨’ 따위로 자유롭게 붙일 수가 있지요.
둘째, 대회에서 주는 널따란 주제 안에는 수많은 좁은 주제들이 모여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좁은 주제들은 친구들이 학교에서 웃고 울었던 사연만큼이나 많지요. 밉기만 하던 선생님이 좋아진 사연, 엄마 없는 운동회, 친구 사이에도 예절을 지켜야 함을 일깨워 준 쉬는 시간의 공기놀이…. 이렇게 학교에서 있었던 수많은 일들이 모두 주제가 될 수 있어요. 이것들 가운데 가장 쓰고 싶고 알리고 싶은 사연을 하나만 잡아서 쓰면 돼요. 넓고 무거운 주제를 통째로 안고서 쩔쩔맬 필요는 없답니다.
셋째, 주어진 주제가 제아무리 거창하고 딱딱하더라도 얼마든지 아기자기하고 말랑말랑한 글로 살려낼 수가 있어요. ‘우리 학교’라는 주제로 글을 쓰라고 하면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다음 글과 비슷하게 써요.
우리 학교는 ○○산 기슭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학교로서 45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자애로우시고 학생들도 학업에 열중한다. 특별 활동 반에서는 어린이들이 각자 소질에 맞는 꿈을 키우고 있다….
내용도 평범하고 말투까지 딱딱해서 생각이나 감정이라곤 전혀 없는 ‘기계가 쓴 글’ 같지요.
하지만 글 속에 자기의 경험과 생각과 감정을 불어넣으면 말랑말랑한 글로 살아납니다. 다음 글처럼요.
나는 2학년 때 전학을 왔다. 전학 온 첫 날에 학교 현관에서 어떤 아저씨가 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을 건네셨다.
“아침은 먹고 왔니?”
어른들은 대부분 무뚝뚝한 표정인 데다, 아무런 이유 없이 말을 건네는 일도 좀처럼 없기 때문에 나는 이 아저씨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내가 아침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따위에 신경을 쓰시다니.
그런데 전학 절차 때문에 아빠와 함께 교감실로 들어갔다가 그 아저씨를 또 보았다. 그 분이 바로 우리 학교 교감 선생님이셨던 것이다.
나는 여태껏 그렇게 한결같이 웃고 계신 어른을 만난 적이 없다. 교감 선생님의 웃음은 갈갈갈 터져 나오는 주책 없는 웃음도, 비웃는 듯한 기분 나쁜 웃음도 아니다. 어떤 말이든 들어 주고 또 따뜻한 말씀도 건넬 준비가 되어 있는 편안한 웃음이다….
이렇게 친절한 교감 선생님이 계신 학교라면 시설 좋은 학교나 실력 있는 학교가 부럽지 않겠지요. 이처럼 학교 소개를 모조리 늘어놓지 않고서도 직접 겪은 일을 통해 학교 자랑을 자연스럽게 할 수가 있답니다.
‘우리 학교’라는 주제로만 작은 주제들을 뽑아낼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에요. ‘미래 세계’나 ‘자랑스런 우리 한글’이라는 다른 주제로도 얼마든지 작은 주제들을 뽑아낼 수가 있지요. 주제는 제목과 다르다는 것, 큰 주제 안에는 작은 주제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는 것, 고 작은 주제들 가운데 하나만 골라내 자기 경험을 담아 쓰면 살아 있는 글이 된다는 것들을 명심하시면요.
이제 교내 글짓기 대회가 열리고 또 똑같은 주제가 주어져도 선생님 탓만 하고 있지는 않겠지요. 그리고 해마다 똑같은 주제를 주는 까닭은 그 주제가 해마다 되새겨야 할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랍니다.
 문우일/과정중심 글쓰기/소년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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