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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소설

제목 백합은 아직 피지 않았습니다 3
글쓴이 최자인
약속대로 난 지금 인하의 집에서 인하와 같이 공부를 하고 있다.
이번 시험도 망치면 안 되는데 이렇게 인하와 마주 앉아 공부하고 있자니 집중이 영 안된다.
늘 느끼는 거지만 인하의 곁에 있으면 진한 장미향이 내 코를 황홀하게 만든다. 어느 샴푸를 쓰길래 이런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걸까? 아니면 인하 자체로부터 이런 향이 나오는건가? 다른 사람이라면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인하이기에 가능한 얘기이다.
" 유정아, 너 이 문제 알겠어? "
" 으,응? 어.. 어디보자.. 수학이네... "
" 중학교때 인수분해를 열심히 공부해둘걸 그랬나봐. 도통 이해가 안 가는거 있지? "
10분동안 골똘히 쳐다보고 생각해봐도 식 하나 세우지 못한 채 답을 못 찾았다.
" 너도 모르겠어? 그럼 내일 선생님께 물어볼께. "
"정말 미안해. 나도 더 열심히 공부해둘걸 그랬나봐. 나도 내일 같이가야겠어."
인하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고 나에게 다시 조용히 말을 걸었다.
" 있지 유정이 넌 좋아하는 사람 있어? "
지져스.
" 뭐..뭐..뭐라고? 좋아하는 사람? 나? 나..나는 그게... "
자, 침착하자. 이 상황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다. 이 순간만큼은 기독교인이 되자. 난 지금 무슨 대답을 해야할까. 이참에 확 고백해버려? 하지만 차이면? 인하같이 예쁜 여자는 멋진 남자와 만나야 하지 않을까? 나 같은게 짐이 되버리면 어떡하지?
" 뭐야뭐야, 식은 땀 흘리는 거 보니까 있구나? 누군데? "
침착하자, 침착하자. 하지만 어떻게? 뭘 대답해야 하지? 근데 침착한 게 뭐였더라? 미쳐버리겠네 진짜.
내가 한참 고민을 할 동안 인하는 다시 제자리로 가 무릎을 껴안은채 수줍게 말을하였다.
" 사실은 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근데 그 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더 많아. "
아. 깜빡하고 잊고있었다. 난 내 입장에서만 생각했지 정작 인하의 사랑에 대해선 신경을 써 본 적이 없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 그래....?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구나... 그래.. 좋아하는...응... "
" 너한테만 말하는 거야. 보나마나 다른 애들한테 말하면 원조교제라는 둥 이상한 얘기만 뒤에서 할 것 같애서... 넌 그렇게 생각 않하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거니까. 그 사람은 정말 다정하고 똑똑해. 뭐든지 다 알아. 인생의 선배라서 그런걸까? 지난번에도 말야. "
그 뒤로 인하는 계속 얘기를 이어갔고 난 계속 나만의 침묵 속에 빠져 있었다.
고백하기도 차인 기분, 누군가는 알까.
" 그래서... 그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이야? "
" 응... 너도 아는 사람이야... 때가 되면 그 때 알려줄께. "
난 그렇게 인하의 집에서 부질없게 시간을 보내고 저녁때 쯤 집으로 돌아갔다.
그 뒤로의 기억은 하나도 않 난다.




하루가 지나고 다시 나는 학교에 있다.
인하는 평소처럼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젠장. 인하는 왜이리 이쁜거야. 차인 사람 또다시 맘 아프게.
" 유정아. 나랑 수학 선생님께 문제 물어보러 가자. "
" 응.. 그래. "
수학문제집을 챙기고 인하와 교무실에 가 수학선생님께 물어보았다.
수학선생님은 젊은 남자분이신데 다정하고 웃는 모습이 멋진 선생님이시라 아이들한테 인기가 많으시다. 난 전혀 이해가 안 가지만.
선생님 설명을 반쯤 듣고 흘러보낼 때쯤 난 무언가 깨달았다.
그것은 정말로 자연스러운 상황이다. 하지만 미묘하다. 미묘하게 다르다.
인하는 잘 웃는다. 하얀이가 고르게 보이도록 수줍게 웃는다. 하지만 저렇게 수줍게 웃은 적이 있던가.
선생님도 늘 다정하시다. 학생에게 설명해주실 때 마다 따뜻한 눈빛을 지니신다. 하지만 저렇게 남에게 따뜻한 눈빛을 보내셨던가.
둘은 마치 둘 만의 공간에 있는 것 같았고, 나는 그 곳에서 소외된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 같았다.
그래. 둘은 잘 어울려. 하나의 사람으로써 부족한 점이 없는 사람들이야. 내 말이 맞아.. 맞는데... 분명히 맞는데.... 왜이렇게 아프지...? 마음이 너무 아파.
" 인하야, 미안. 나 먼저 가볼께. "
" 어? 아직 설명 안 끝났어. 인하야. 인하야? "
난 무작정 화장실로 달려갔고 뒤에서 나를 부르던 인하의 목소리는 아이들의 소음 속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화장실 안은 아무도 없었다. 고요했다.
찬물로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볼 때 까지 많은 생각을 하였다. 많은 감정을 느꼈다.
드디어 거울로 나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다른 이들은 알까. 사람은 셀 수 없을 정도의 모습을 지니고 있단걸. 단지 우리들은 그걸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 난 이 모든 상황을 이해했고 나 자신도 완벽히 이해를 하였다.
인제부턴 또다른 나의 모습으로 살아갈꺼다.
거울에 있는 나의 얼굴은,
되게 낯선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