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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소설

제목 꽃, 그림자, 너 03
글쓴이 최자인
윤 리 시점


노을빛을 등에 맞대고 걸어간다. 그리고 생각한다.
" 미쳤다, 내가 미쳤다. "
금화가 울 때 난 본능적으로 안을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때 만큼은 대나무 같은 그녀가 시멘트 바닥에 힘겹게 핀 민들레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급 후회돼는 마음을 주최할 수가 없다. 부끄러워 머리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
그래도 짧게나마 감상평을 하자면 부드럽고 작았다. 여자란 생물이 그렇게나 작은 존재일 줄은 몰랐다. 손에 닿은 머리카락은 미끈미끈 거렸고... 코 끝에서 느껴지는 샴푸 향기는 이루 표현할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가슴도... 아니, 여기까지 생각하면 범죄가 되버린다. 이런 잡다한 생각으로 둘러싸여 집에 도착하였다. 집 안은, 꽤나 혼란스러워보였다. 아무래도 그 녀석 때문이겠지.




금화 시점



오늘은 꽤나 복잡한 날이였다. 지금도 여러모로 복잡한 심정이다. 도서관에서 그에게 안겼을 때 부터 쭉 가슴이 쿵쾅거리고 있다. 이거, 병이라고 표현하기엔 미묘한 기분이다.
난 보통 꽤나 이성적인 아이이기 때문에 언행이나 행동은 항상 조심하고 필요한 표현만 남에게 보여왔다. 그러나 나도 꽤나 육체적으로나 심적으로나 힘들었는지 순간적으로 그런 말을 내뱉어버렸다. 그것도 그의 앞에서 말이다. 그치만 윤 리는 내 마음까진 몰랐을 것이다. 단지 책들에게 머리를 맞아 아픈걸로 착각하고 있겠지. 잠깐, 그게 더 쪽팔리는 일이잖아? 아,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수학 공식보다 더 어려운 녀석. 정말이지 재수왕이다.
그래도... 솔직히 얘기하자면 그 덕분에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었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난 지금쯤 아직도 홀로 도서관 바닥에 앉아 멍을 때리고 있을 것이다. 그 점은 감사하게 생각한다. 마침 녀석 얘기가 나온 김에 더 이야기를 하자면 첫 인상은 똥이라도 씹어먹은 듯 더러운 인상이였다. 기생 오라비 같이 생긴 얼굴이라 여자애들에겐 인기가 많았지만 난 전혀 잘생겼다고 생각되지 안는다. 넉넉한 집안에서 부족함 없이 살아왔단걸 당연하게 여기는지 가만히 앉아있어도 거만하게 앉아 더 재수없었다. 가벼운 언행과 행동도 덤. 교실 내에서 혼란까지 일으키니 반장인 나에겐 그야말로 쓰레기같이 느껴졌다.
이렇게 얘기해보면 뒷담처럼 느껴지지만... 난 걔가 쓰레기일지라도 싫지는 안았다.
윤 리 군의 똥 씹은듯한 표정엔 나도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마치 지금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부조리 없는 것 같은... 그런 것이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으니까...
아무튼 오늘부터 다시 정신 바짝 차려서 평소보다 더 강하게 그들을 대적할 것이다.
난 넘어지지 안는다. 그 녀석 말처럼 난, 대나무니까.




#
" 리 도련님! 잘 오셨습니다! 지금 현 도련님께서 난리가 났습니다! 와서 같이 좀 말려주십쇼. "
곧장 현의 별채로 달려가니 시녀들은 현이의 팔에 매달린채 달래고 있었다.
" 이거 놔! 형은 언제 오는건데? 너네들은 전부 꺼져! 꺼져란 말야! "
현이 왼팔을 휘두르자 매달리던 시녀 한 명이 소리를 지르며 쓰러졌다. 뺨엔 손톱에 긁혀 피가 떨어졌다.
" 현아! 형 왔어! 진정해! "
" 형...? "
시녀들은 바닥에 주저 앉고 현은 나에게 곧장 뛰어와 뺨을 때렸다.
"걱정했잖아! 왜 늦게 온거야? 늦는다면 나에게 얘길하던가! 난... 난...! 흑.."
" 미안해, 갑자기 일이 생겨서 그랬어. 다음부턴 꼭 연락할께. 그러니 걱정마. "
날뛰느라 반쯤 흘러내려간 기모노를 입은 현을 안고 별채에 들어갔다.
이부자리에 눕힌 후 가려하자 소매를 붙잡았다.
" 형... 나 버리고 가지마... 곁에 있어줘... "
" 아까 내가 너 버리고 갔을까봐 그리 날뛰었던거야? "
" 닥쳐. "
"에-, 상처인걸. 형한테 닥쳐라니."
내가 웃으며 장난을 치자 현은 손가락을 꽉 깨물었다.
"아! 아프잖아!"
" 난 진짜 날 버린 줄 알고... 걱정했단 말야. "
두 눈엔 눈물이 고여있었다. 진심이였던 모양이다.
가녀린 몸에 그런 표정까지 짓자니 이내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이 요동치었다.
자그마한 내 동생.
난 그를 와락 껴앉고 중얼거렸다.
" 널 버리지 안을꺼야. 끝까지 있어줄께. 믿어. "
" 정말이지...? "
" 응, 정말이야. "
언제나 현을 안을때마다 느끼는거지만 얜 마음만큼이나 몸이 차갑다. 혼자서 꽁꽁 얼어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보호하는 것 같다. 받아들이는 사람은 오직 나 뿐이다. 형인 나...
" 정말이지... 난 널 버리지 못해... "
현은 그런 형을 쓰다듬으며 차갑게 미소를 지었다.
" 그럼. 형이니까 말야. "



' 바보구나... 형은. '




" 또 그 녀석이 사고를 쳤나? 시녀들이 하나같이 엉망이 됐군. "
" 그... 그게 말입니다. 리 도련님이 늦게 오셔서 걱정이 됐는지 흥분을 하셨나 봅니다. "
담배 끝을 뭉개 불을 껐다. 손목엔 명품인 시계가 빛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 우리 회사의 수치이자 쓰레기 녀석, 어떻게든 뭉게버려 애미와 같은 꼴로 만들어주겠어. "
" 회장님, 쉐리입니다. 준비는 다 됐습니다. "
회장은 지갑을 안주머니에 넣고 비서와 함께 나갔다.
그는 뒤를 돌아보고 시녀에게 소리쳤다.
" 형이란 붙어있을 시간 얼마 남지도 안았을텐데 그 녀석 허튼 수작 부리지 안게 잘 감시나 해. 뒷판은 때가 되면 내가 벌여놓을테니 말야. "
"네, 회장님."
시녀도 곧 일을 하러 나간 뒤 오직 방엔 한 명 만이 남아있었다.
"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딸깍. "
" 응, 시로형. 오랜만이야. 나 윤 리야. "




" 부탁할게 있어, 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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