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마당 > 글나라우수작품 > 우수작품

우수작품

제목 나는 미래를 꿈꾸는 이주민입니다 / 이란주
작성자 노문희 작성일 2022-12-31
작성일 2022-12-31


단 며칠간의 외국 여행에서도, 아니, 해외까지 갈 것도 없다. 내가 익숙한 곳이 아닌 대한민국 어딘가에 도착해서도 긴장되곤 한다. 언어까지 잘 통하지 않는 이곳에 와서 삶을 다시 꾸리는 이들의 마음이라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린다. 거기에 이 사회의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상처를 받는 이들의 이야기가 편안하게 들려오지는 않는다. 이주민 인권 활동가인 이란주 저자의 말처럼, 대한민국 인적 구성이 너무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건 내가 사는 곳에서도 충분히 느끼고 있다. 그에 반해 이 상황과 이주민을 보는 사회적 인식이 그 인구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와닿을 수밖에 없다. 지방의 소도시인 이곳은 인접한 시골과 생활권이 같다. 병원, 공공기관 등 웬만큼 큰 곳을 찾으려면 모여든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도 자주 보는 이주민을 생각하면, 이 책이 우리에게 더 깊게 다가와야만 한다는 것을 알 것 같다.

24명의 이주민이 그들의 한국 생활과 상처를 그대로 들려주고 있다. 한국인 노동자의 차별과 피해를 들어오면서 화를 내곤 했는데, 이들의 한국 생활도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낯선 사회에 그 상처가 더 크게 다가오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제야 이들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볼 기회가 생긴 게 아쉬울 정도였다. 도서관에서 다문화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의 다문화, 이주민의 구성은 커졌다. 그만큼 우리 관심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라는 인식은 같은 비례로 커지지 않은 듯해서 이들의 이야기가 아프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들과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생각해야 할까. 인종, 국격, 피부색을 넘어, ‘이주’라는 공통의 배경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가 생생하다.

한국 생활 3년, 그사이 여러 지방을 떠돌며 살았어요. 남편은 일을 구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도 무척 힘들었어요. 일자리 알선 브로커에게 돈을 뜯긴 일도 여러 번이고, 못 받은 임금을 받기 위해 노동청에 가기도 했어요. 이집트인이라서, 또 불안정한 체류 자격 때문에 무시당하거나 부당한 처우를 받기도 했어요. 나도 일하고 싶지만 아직 기회가 없었어요. 한국 회사들은 히잡 쓴 여자를 고용하고 싶어 하지 않나 봐요. 덕분에 한국어 공부할 시간을 얻었으니 열심히 배워 일을 찾고 싶어요. (224페이지)

생계가 달린 일 앞에서 인정받을 시간을 기다리면서 또 다른 생활고에 시달린다. 난민 심사를 3년째 기다리는 이의 가슴은 타들어 간다. 다른 방법도 없다. 인정받고 제대로 된 삶을 꾸리려면 결과를 기다리며 일상을 유지해야 한다. 다방면으로 알아보고 있지만, 뚜렷한 대책을 주는 이도 없다. 얼마나 답답할까. 그 와중에 그들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도 견뎌야 한다. 이주민이라고 모두가 똑같지는 않을 테다. 국적, 배경, 이주의 목적 등 다양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 사회에서 이주민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받는 시선은 비슷하다. 부당함 역시 이들에게 거침없이 다가간다. 새로운 사회의 문화 차이를 극복하기도 전에 혐오를 먼저 느끼기도 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아마도 우리가 이주민을 바라보는 시선에 빠진 것은 그들이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가고자 하는 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서 그런 건 아닐까. 이 책의 제목처럼,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라고 인정하지 않아서 생기는 갈등과 차별을 이제는 바로 봐야 할 때인 듯하다.

중학교에 다니는 조카들이, 거리에서 만나는 외국인들을 그냥 관광객쯤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국에 살면서 다문화를 이룬 가족, 생산 현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관광객과 다르게 보는 모습에 뭔가 이해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읽게 된 책이다. 나 역시 이주민을 보는 마음이 어땠는지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었다. 내 주변의 타인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같은 지역에 살고 있지만 나와 다른 삶, 그들의 목적에 맞는 생활을 꾸리고 있는 누군가 정도로 생각했다. 이 책으로 이들의 마음을 더 잘 읽게 된 기분이다. 이들이 대한민국 국민과 다르지 않다는 것, 그들 나라로 돌아갈 목적이더라도 이 사회에서 똑같이 노동하고 생활하는 한 사람이라는 것,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부당함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 특히 사업자가 외국인 인력 고용을 관리하는 ‘고용허가제’라는 제도는 충격적이었다. 이런 제도가 만들어진 이유가 분명 있을 테지만, 이 제도의 악용도 뚜렷했다. 이 제도 때문에 노동자는 마음대로 일을 그만둘 수 없다. 심지어 어떤 사업주는 이 제도를 악용해 노동자에게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노동자의 가족 역시 동반 입국이 안 된다. 사업주가 아무리 잘못해도 노동자가 그만둘 수 없다는 사실이 이주노동자에게 억울함을 주겠지.

듣다 보면 몰랐던 이주민의 삶에 아픔을 같이 느낀다. 차별을 알면서도 숨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함께하고 싶어서, 한국으로 오려고 했던 목적이 분명해서 말이다. 이주민의 이런 고충은 성인도 감당하기 힘들 텐데, 이주 청소년의 삶을 더 혼란스러웠다. 이주 배경 학생 수가 전체 학생의 3%를 넘는다고 하던데, 앞으로도 이 비율을 늘어날 것이다. 그러니 다문화, 이주민의 적응에 같이해야 한다는 것도 분명하다. 현실에 그에 발맞추지 못해서 지금도 이 사회의 편견과 차별에 시달리는 이주 배경 청소년들의 마음을 더 읽어야 할 때이다.

시골에서 농사하는 주변 사람들을 볼 때마다, 평소에도 일손에 가담하고 있는 이들의 많은 수가 이주민이다. 농사철이 되면 더한 인력난에 시달린다고 한다. 그때마다 시에서는 일반 실직자나 이주민 노동자를 농사하시는 분과 연결해주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만큼 농사에 이주노동자의 비율이 커졌다. 가끔 몇 시간씩 나도 농사라고 불리는 일에 참여하곤 했지만, 정말 힘들다. 최저임금으로 고된 일을 해내면서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열악한 거주 환경까지 이들을 힘들게 한다. 때로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부당함과 혐오의 시선까지 감당해야만 하는 이들의 삶을 우리가 적극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기에, 이 제도를 관리하는 기관이 있기에, 이주노동자의 여러 문제를 국가가 나서고 책임져야 하는 게 아닐까. 거기에 우리를 비롯한 사회의 관심은 필수이며,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기에 공존을 인정하며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에 생각이 많아진다.

세상에는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 먹는 사람도 있고 찍어 먹는 사람도 있잖아요. 너는 왜 나처럼 안 먹느냐고 비난해봤자 소용없죠. 서로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니까요. 다문화든 아니든, 어느 나라 출신이든, 외모가 어떻든 나와 다르다고 해서 미워하고 싸워야 할 이유가 대체 뭐가 있겠어요. 우린 다 똑같이 ‘사람’인데요. (46페이지)

지금도 이주민을 향한 나쁜 말들을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종종 듣는다. 이주민이 오면 한국이 망한다고, 우리 고유의 민족은 점점 사라지고, 이주민들이 대한민국을 차지할 거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 사회가 이주민 없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유지할 수 있을까? 아이 돌보미부터 우리의 식탁을 책임지는 시골의 농사일, 산업 현장의 노동자까지, 우리 삶 곳곳에서 이들을 본다. 어느 한순간 이들이 이 공간에서 사라진다면 한국 사회는 어떻게 될까. 단순히 이들이 사라지면 우리 사회가 멈추니까 붙잡고 있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제 한국 사회가 이주민과 함께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꾸리듯이, 이들도 이제 우리 곁에서 그들의 삶과 꿈을 위해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뿐이다. 그동안에는 미처 다 알지 못했던 이주민의 삶, 현실을 이렇게 듣고 보니 이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한결 너그러워지고, 공감하게 된다. 그 속내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한 개인의 삶으로 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