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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인체의 신비전'을 보고 난 후... ◀
작성자 이성곤 작성일 2003-03-18
작성일 2003-03-18
3월 14일 금요일, 날씨는 맑음∼
                   ▶ '인체의 신비전'을 보고 난 후... ◀

우리 가족은 '인체의 신비전'을 보기 위해 네 가지 사전 준비를 했다.
첫째, 어머니는 담임선생님께 허락을 받기 위해 편지를 쓰셨다. 그런데 어머니는 실수를 하셨다. 14일 금요일을 13일 금요일로 착각하신 것이다. 여하튼 선생님께서는 현장학습 가는 날로 허락하셨다. 다녀와서 기행문을 써야하는데 어떻게 써야할지 아주 약간 걱정이다.
둘째, 할인쿠폰을 받기 위해 세 명 모두 회원가입을 하고 천 원 짜리 할인쿠폰을 출력하였다.
셋째, 의미있는 관람이 되기 위해 '인체의 신비전'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기도 했고, 인터넷에서 자료도 찾아보았다. 이번 관람의 핵심은 '프라스티네이션'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들이 제법 많았기 때문에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프라스티네이션'에 관한 내용을 프린트한 다음 아버지와 함께 공부를 했다. '프라스티네이션'이란 살아있는 듯한 상태로 조직을 보존할 수 있는 매우 특별한 방법이다. 프라스티네이션을 만드는 과정은 총 4단계로 이루어지는데 고정→수분과 지방질제거→강압적인 주입→보존처리가 그것이다.
넷째, 내일 점심을 위해 어머니께서는 김밥재료를 준비하셨다.

14일 바로 오늘, 아침식사는 김밥으로 해결한 뒤 부산으로 출발했다. 입장료는 어른은 만 원, 어린이는 6천 원이었지만 쿠폰이 있어 3천 원이 할인되었다. 드디어 입장!!
맨 먼저 한글과 영어로 된 '사체 기증 동의서' 양식이 벽면에 붙어 있었다. 실제로 6,500여명이 사후 기증을 희망하고 하루에도 기증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약 5명 정도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바로 이런 희생적인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와 같은 전시회가 열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바로 옆에는 '프라스티네이션'에 관한 설명이 있었다. 그것을 발견했을 땐, 공연히 기분이 좋았다. 바로 어제 공부한 내용이 간략하게 요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전시회는 운동 계통, 신경 계통, 호흡 계통, 심장·혈액 계통, 소화기 계통, 생식기관 계통, 혈관의 분포, 인체의 발생, 생활 체험 등 총 9개의 코너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곳에 전시한 모든 전시물은 실제 사체들을 '프라스티네이션'한 것이다. 물론 약간의 성형을 거친 것도 있다고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약간일 뿐이다. 이 모든 것이 실제 사람이었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정말 대단했다. 그 동안 책에서 그림으로만 보거나 약간의 모형만 보았을 뿐인데 실물크기의 사람을 그것도 모형이 아닌 진짜 죽은 사람들의 인체였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9가지의 코너 중 특히 관심 있게 본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운동계통에 있던 '보형물을 주입한 다리'가 그것이다. 작년에 할머니께서 무릎 수술을 하시고 장착하였던 보형물을 실제로 보게 되어 한층 더 인상깊었다.
둘째, 생활체험 코너에서는 사람이 직접 장기를 만질 수 있게 해 두었는데 비록 2개뿐이었고, 그것마저도 '프라스티네이션'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시물을 관람하는 동안 줄곧 만져 보고 싶었다. 촉감이 어떨지 매우 궁금했지만 관람객들이 나 같은 호기심 때문에 만지게 되면 전시물은 금방 훼손될 것이라고 미리 부모님으로부터 주의를 들었기 때문에 꾹 참고 있었다. 만져보니 딱딱한 느낌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라스티네이션'을 거쳤으니까.
셋째, 아인슈타인의 뇌에 관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39번 구역 뇌 조직에서 신경세포의 활동을 돕는 아교세포가 다른 사람보다 월등히 많다는 것을 미국 버클리 대학의 매리언 다이아몬드 박사가 밝혀내었다고 한다. 역시 인류의 위대한 인물은 죽어서도 연구대상이 되는구나! 하지만 그냥 눈으로 볼 때는 보통사람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넷째,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졌던 태아, 그리고 임신 X개월 Y기의 태아의 크기에 관한 것이 인상깊었다. 장애아 중 '무뇌증', 즉 뇌가 없는 증세는 생존 가능성이 0% 즉 전혀 없다고 했다.
이 코너에 전시된 여러 기형아의 모습도 충격적이었지만 죽은 엄마의 몸 속에서 따라 죽은 5개월의 태아의 모습도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이 코너에서 한가지 의문 나는 점이 있었다. 즉 무뇌증의 아이는 생존가능성이 0%라고 했는데 이것은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죽는다는 것인지 아니면 아주 짧은 기간만큼 밖에 살지 못한다는 것인지 궁금했다. 뇌가 없으니 아무래도 곧바로 죽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지?

우리가 한 관람시간은 10분 정도의 휴식시간을 포함해 약 3시간 정도이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자세히 살펴보았기 때문이다. 관람객이 적당해서 우리 가족이 자세히 관람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아서 정말 좋았다. 관람이 모두 끝났을 때는 발바닥이 너무 많이 아팠다.

부모님께서 이 전시회를 나에게 보여주신 데에는 이유가 있다. 워낙 유명한 전시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일을 계기로 생물학쪽에도 관심을 가져 보라는 의미라고 하셨다. 이 전시회가 재미있긴 했지만 나의 꿈이 우주과학자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여전히 생물학보다는 우주과학이 더 재미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생물학 쪽에도 관심을 갖도록 해야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우리가족은 각자의 관람소감을 이야기 했다. 나의 소감은 이미 위에 적은 내용이었고 아버지는 운전하시느라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셨다. 어머니의 소감은 뜻밖이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이지만 인간의 육체도 소, 돼지, 닭....등등의 짐승과 다를 바 없다. 오로지 다른 것이라면 생각하는 힘을 가졌다는 것이다. 인간이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하면 금수만도 못하다고 하는데, 정말 그 말이 실감난다. 이 후로 좀더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해야겠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우리가족 중 어머니가 가장 대충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니가 제일 깊이있는 생각을 하신 것 같다. 아버지도 이에 동감하셨다. 그리고 신나는 일이 한가지 더 있다.  이곳 부산 벡스코 전시장에서 2003년 11월 4일부터 11월 9일까지 '한국 항공 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를 한다고 한다. 이 전시회도 꼭 보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