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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품

제목 가장 로마인 다운 사람. 카이사르. (로마인 이야기 율리우스 카이사르 상, 하를 읽고)
작성자 이슬 작성일 2003-03-03
작성일 2003-03-03
내가 요즘 읽고 있는 이 로마인 이야기는 지금까지 총 11권이 나왔고, 나는 그 책을 다 읽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재미있을 것 같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두 사게 된 이 로마인이야기.
1권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2권에서 한니발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너무 지루해서 읽다 안 읽다 했었다.
하지만 2권의 1차 포에니 전쟁이 끝나고 한니발이라는 인물이 등장하고부터 나는 '정말로 이 책이 로마이야기가 아니라 로마인이야기구나.'라는 것을 깨달았고, 로마인들에게 심취해버렸다.
시오노 나나미의 말을 빌리자면, 이 카이사르라는 인물은 제일 로마인다운 성격과 생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 두 책의 독후감을 쓰기로 했다.
그러므로 나는 카이사르라는 인물에 대해서만 아니라 가장 로마인다운 카이사르를 통해 로마인들에 대한 나의 생각과 느낌들을 쓰려고 한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는 명문 귀족 가문 출신이었지만 그가 태어났을 때쯤에는 가문의 세가 그리 세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당시 유력자들의 주목을 받고 자라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는 18세 때, 그 당시 절대 권력자였던 술라의 명령을 거역하고 로마에서 달아났다.
카이사르는 무슨 생각을 하고 탄탄한 지지기반도 없었던 18세라는 젊은 나이에 권력자의 명을 무시하고 고향인 로마에서 달아났을까.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어쩌면 이것도 계획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만큼 카이사르는 로마에 있지 않았던 그 기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자신의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술라가 죽고 난 뒤 로마로 다시 돌아온 카이사르는 '멋쟁이'로서 유명해지게 된다.
그는 그만큼 멋과 친구들과 클리엔테스와의 교제와 여자들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해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런 카이사르를 보는 로마인들도 그를 돈만 펑펑쓰는 헤픈 사람이 아니라 진정한 삶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로마인들은 풍류를 즐기며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어느덧 세월이 흘러 그는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삼두정치를 하게된다.
원로원은 '삼두'를 두려워하며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 사이를 갈라놓으려 한다.
원로원과 폼페이우스 간에 말이 오가고 있을 때,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쟁에서 눈부신 공적을 쌓고, 갈리아 전쟁기를 집필하며 부하들과 끈끈한 정을 맺고 있었고, 파르티아 원정을 갔던 크라수스는 전사하고 만다.
그리고 드디어 삼두정치는 깨져 폼페이우스는 원로원 파로 돌아서고 카이사르는 루비콘 강 앞에 서게된다.
나는 이 부분을 읽은 후 누군가가 갈등이라는 말을 하면 제일 먼저 카이사르가 떠오른다.
자신의 생명은 물론 자신을 따르는 부하들의 생명과 로마라는 제국의 앞날이 걸려있다.
그리고 카이사르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렇게 외쳤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카이사르의 결정은 맞아 떨어졌다.
여러 번의 전쟁을 하던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는 결국 폼페이우스가 이집트로 도망을 갔다가 암살을 당한다.
그리고 그는 여러 차례의 내전을 잘 처리하고 자신은 술라와 다르다며 '관용'을 표어로 내걸었다.
물론 우리가 알고있는 관용과는 약간 성질이 다른 관용이지만, 나는 카이사르가 이 표어를 아주 잘 택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관용'이야말로 로마인들의 기본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쳐서 점령하게 되면 철저하게 식민지로 만들어 착취한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달랐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로마는 속주를 관리하고 지켜주는 대신 약간의 세금을 걷어갔을 뿐이라고.
나에게 로마와 속주는 한 나라라기보다는 한 연합국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 속주들도 그런 로마인들의 방식에 찬성했고, 진심으로 자신들이 로마인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다.
이 모든 것이 카이사르의, 아니 로마인들의 기본 정신인 '관용'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옥타비우스가 로마의 1대 황제라고 한다.
물론 옥타비우스가 로마의 1대 황제이긴 하다.
하지만 나는 카이사르도 로마의 황제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후계자를 위해 황제의 자리를 다져놓은, 형식적인 칭호를 갖추지 못한 황제.
카이사르, 그는 원로원체제를 무너뜨린 '개혁자'였다.
그는 그 개혁을 한꺼번에 무력으로 하지 않고 조금씩 교묘하게 해 나갔다.
그리고 그의 정책은 그가 후계자로 지목했던 옥타비우스, 즉 로마 1대 황제가 되는 아우구스투스가 이어받아 빛을 발하게 된다.
그는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원로원 파들에게 암살을 당하여 죽었다.
하지만 시민들이 기뻐할거라고 생각했던 원로원 파들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시민들은 진정으로 그가 죽은 것을 슬퍼하고 그를 신격화하여 '신격 카이사르'라 부르게 되었다.
나는 암살당한 것이 그에게 어울리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가 자연사나 전쟁터에서 죽었다면 사람들은 며칠정도만 슬퍼하다가 다시 잊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암살당해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카이사르가 신처럼 살아있게 되었다.
카이사르는 "누구나 모든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현실밖에 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나는 말할 수 있다, 카이사르는 모든 현실을 볼 줄 알았던 세상에 몇 안되는 사람이었다고.
* 중 1때 쓴 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