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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장도서

부끄러운 문화 답사기

지은이
기록문학회
출판사
실천문학사
페이지수
338
대상
역사바로잡기에 나선 젊은이들의 생생한 현장 기록. <기록문학회>학생들이 3년에 걸친 답사와 취재를 통해,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는 유형의 일제 잔재물들을 모아서 그들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기록한 문화 답사기. 이 책은 우리 내부의 일제 잔재 청산 문제와 관련 분야의 연구가 절실한 시점에서, 그 시작의 단초를 제공하는 책이다. 미디어 서평 우리땅 곳곳에는 아직도 일제잔재라는 꼬리표를 달고있는 건물들과 문화유적들이 적지 않다. 민족정기를 끊기 위해 박아놓은 쇠말뚝,일본의 대륙침략 발판 역할을 했던 서울역,창경궁내에 남아있는 식물원(대온실로 명칭이 바뀜)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최근 한국외국어대 기록문학회 회원 9명이 펴낸 <부끄러운 문화답사기>(실천문학사)는 전국각지에 흩어져 있는 오욕의 역사를 속속들이 들춰낸 답사기다.해방후 반세기가 지나도록 청산되지 않고 있는 일제잔재들을 93년부터 3년여동안 찾아다닌 필자들은 `역사를 올바로 기록하고 우리땅에 남아있는 문화유적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한다는 취지에서 답사기를 펴내게 됐다`고 밝혔다. 서울 정동에 있는 옛 대법원은 일본인 다다구미(다전조)가 공사를 맡아 28년에 준공한 경성 3재판소 건물이었다.또 서울시청 맞은편에 있는 서울시의회 건물은 일제가 식민문화를 전파했던 부민관이었다.특히 부민관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선출된 장소이며,70년대 중반까지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됐던 건물이다. 충북 옥천 죽향초등학교에 있는 통일탑은 원래 `황국신민서사탑`이었으며,대전에 있는 영렬탑도 42년 일본인들이 성금을 모아 `일본군 위패보관소`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충남 홍성군청은 `작은 총독부`로 불린다. 일제가 경복궁앞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세운 것처럼 홍주아문앞에 홍성군청 건물을 세웠기 때문이다.그동안 홍성군민들이 여러차례 군청이전을 요구했다.그러나 군 당국은 예산로 청사 이전을 꺼리고 있다. 전북 군산은 `일본의 민속촌`으로 불릴만한 곳이다.일본식 지명과 건물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특히 월명공원에는 34년 일제가 군산항을 통해 2백만석이 넘는 쌀을 수탈했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2m 높이의 `개항 35주년 기념비`를 비롯,수많은 일제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천년 고도 경주에는 일제가 지은 신사건물이 있다. 경주시 서부동에 있는 농촌지도소 건물은 28년 일제가 신사로 사용할 목적으로 지은것이다.해방후 `경북 사방관리소`로 사용된 이 건물은 현재 전면은 경주시 농촌지도소 중부 농민상담소로,후면은 경주시 농어민 후 계자연합회 사무실로 이용되고 있다. 필자들은 이밖에도 일본의 압력에 의해 세워진 경북 영일만의 장기곶 등대,친일화가 이상범에 의해 그려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박중양의 친일행적을 기념하는 대구 침산공원의 일소대 등 일제가 남겨놓은 치욕스런 흔적들을 낱낱이 밝혀냈다.<경향신문 97/03/17 박구재> 자랑스런 겨레의 문화유산이 있는가 하면,부끄러운 문화유산도 있다.답사 열풍이 분 요 몇년 새 사람들이 주로 찾았던 곳은 단연 앞의 `자랑스런` 문화유산 쪽이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기록문학회` 동아리가 93년 9월부터 찾아 나선 곳은 남들이 잘 돌아보지 않는 `부끄러운 유적지였다. 여기서 `부끄러운` 이란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것은 일제의 잔재다.외국어대 체코어과 90학번인 강경석씨 등 9명이 엮은 <부끄러운 문화 답사기>(실천문학 펴냄)는 지난 3년여 발로 뛴 일제 잔재물에 대한 기록이다. `올해는 `문화유산의 해`다.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을 알리는 것뿐만 아니라,부끄러운 유산들을 청산하고 우리 자신을 다시 돌이켜 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문화유산의 해가 단지 전시 행정과 단발성으로 끝나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올바르게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왜 중요한 일인지도 깨닫게 되었다`는 이들 젊은이의 말은 문화유산 답사의 진정한 뜻을 일깨운다.북한산 백운대 정상에 올라 일제가 박았던 쇠말뚝의 흔적을 찾는 일로부터 시작한 이들의 답사 발길은 서울시 일대를 돌아 대구 침산공원 안에 있는 친일 일소대까지 전국 곳곳을 누빈다. 이들이 찾은것은 유형의 유적만이 아니다. 그 유적들을 낳게 한 무형의 친일 인사까지 들추어냈다.민족 정기를 끊기 위한 일제의 `풍수 침략`,국립묘지에 나란히 묻혀있는 독립 유공자와 친일파,독립문과 서재필의 <독립신문>을 둘러싼 왜곡된 역사,변절자이자 친일파인 정춘수·모윤숙·홍난파 등에 대한 재비판,패배주의적 역사관의 산물 독립기념관 등 이들이 찾아본 일제 잔재의 현장은 해방 52돌을 맞는 올해도 여전히 그 부끄러움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었다. 관련 자료를 모으고 전문가들과 향토사학자들을 취재하던 이들은 현장에 도착해서 놀랐다. `일제가 남겨 놓은 부끄러운 문화는 전국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 잘 보존돼 있었기 때문이다.` 22편의 글 뒤에 꼼꼼하게 단 `뒷이야기`는 그 놀람에 대한 젊은이들의 자기 검열과 같은 것이다. 한번 간 것으로 끝내지 않고 다시 찾아가 그동안의 변화를 살피고 소감을 달면서 새삼 역사 바로잡기의 자기다짐을 한 셈이다.그들은 `또 한번의 대대적인 청산이 필요하다`고 썼다.`부끄러운` 문화 유적지를 답사하면서 신세대로서 그들 자신의 부끄러움까지 고백한 이들의 정직함은 이 책이 세상에 나와야 했던 또하나의 까닭이다. `일제의 식민통치를 겪지않은 세대는 일제 식민통치의 잔악성을 잘 모르고 있다.그저 `우리나라의 국권이 일본의 손에 있던 시기`라는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일제통치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건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는 대목은 젊은이들의 손으로 일제 잔재의 말끔한 청산이 앞당겨지리라는 점을 내다보게 한다. 추천의 글을 쓴 민족문제연구소 김봉우 소장은 `민족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읽기만으로 끝내지 말고 실제로 현장을 돌아보기를 권한다.그리고 여기에 더 많은 살을 붙여주기를 부탁드린 다`고 말했다. <한겨레신문 97/03/18 정재숙> : 광복 52년, 문화유산의 해. 우리의 문화재 속에 일제의 잔재는 과연 얼마나 남아있을까. 이것들이 우리의 의식을 얼마나 좀먹고 있을까. 우리 국토 도처에 산재해 있는 일제 잔재 22곳을 직접 찾아 그 부끄러운 역사와 현실태를 고발한 젊은이들의 현장보고서. `일제가 남겨놓은 부끄러운 문화만큼은 전국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 대체로 잘 보존돼 있었다`는 이들의 말은 충격을 넘어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이들은 민족정기를 훼손하기 위해 일제가 박아놓은 쇠말뚝을 찾아 그 위치를 기록하고 직접 말뚝을 제거했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된 인사중 친일문제 시비가 일고 있는 사람들의 행적에 대한 준엄한 비판도 들어있다. 진주 촉석루에 이르면 논개 영정이 친일 화가 김은호의 작품이라는 사실과 이 그림을 제거하기 위한 진주시민들의 몸부림을 접하게 된다. 또한 신라 천년고도 경주의 농촌지도소건물이 일본 신사였다는 점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일제 치안유지법의 산실인 서울의 옛 대법원 건물, 일제 식민문화의 홍보 창구 역할을 했던 서울시의회 건물 등 건축물에 숨겨진 일제의 흔적도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옛 조선총독부 건물이 완전 철거됐음에도 불구하고 95년 8월 건물 첨탑 철거까지의 상황만을 기록한 점 등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기록문학회는 지난 93년 한국외국어대를 중심으로 결성된 대학생 문화유적탐방동아리. 부끄러운 문화를 극복함으로써 비로소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애정과 긍지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 <동아일보 97/03/20 이광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