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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장도서

젊은날의 초상

지은이
이문열
출판사
민음사
페이지수
287
대상
젊은날의 고뇌와 인간적 희비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가 이문열의 대표작. 젊은 주인공 나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겪어야 했던 이념적 혼란과 충동, 나아가 정서적 혼란과 지적모험을 관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우리 기쁜 젊은날', '그 해 겨울', '하구' 등 3편의 글을 묶었다. [서평] 독후감이라기보다는 편지글입니다. 이제는 많은 부분에서 매도당하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문학에 있어서 그처럼 강렬한 줄기를 발견하기는 힘듭니다. 한때 <이문열 신드롬>이라는 말을 만들어냈을 정도로 그의 문학은 우리 시대의 한 정표라고 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 듯합니다. 제가 이문열의 <젊은날의 肖像>을 읽은 것은 막 스물이 시작되려고 하던 86년의 늦은 겨울이었습니다. 아직 <사람의 아들>로만 기억하고 있던 그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소개받은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TV시리즈였습니다. 탤런트 '손창민' 씨가 주연을 맡았던 동명(同名)의 그 시리즈를 보지는 못하였습니다만, 그로 인한 호기심으로 결국 책을 사보았던 것이지요. 잠깐 그 첫 부분을 살펴볼까요. '흔히 나이가 그 기준이 되지만, 우리 삶의 어떤 부분을가리켜 특히 그걸 꽃다운 시절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표현하는 수가 있다. 그러나 세상 일이 항상 그러하듯, 꽃답다는 것은 한번 그늘지고 시들기 시작하면 그만큼 더처참하고 황폐하기 마련이다. 내가 열아홉 나이를 넘긴 강진(江盡)에서의 열 달 남짓이 바로 그러하였다.' -15쪽 우선 도입부에서부터 같은 나이를 다뤘다는 동질감은 당시의 저로 하여금 서둘러 이 책의 가치를 높게 판단하게 하는 미숙함과, 열아홉으로 시작하는 그의 젊음은 어떤 것일까, 하는 호기심으로 달뜨게 만들었습니다. 열아홉의 나이를 넘기는 일, 그것은 소년이 막 성인이 되려하는 과정입니다. 그 미숙한 과정 안에는 지금까지 겪지 못했던 많은 방황과 좌절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들은 그것을 보통 '통과의례'라고 부르지요. 결국 <젊은날의 肖像>은 성장소설의 한 범주 안에 속하는 셈입니다. 대개의 경우도 비슷하지만, 특히 <젊은날의 肖像>에 있어서 유독 우리들은 소설 속의 주인공과 저자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저자의 삶의 궤적과 소설 주인공의 궤적이 엇비슷하게 맞아떨어지고 있기 때문인데, 사실 '성민엽'의 말처럼 작가의 체험을 단순히 소설적으로 형상화시킨 것에 불과하다고 인정해버린다면 이 소설의 많은 부분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단순한 적용과 치환은 문학의 사회적 기능으로서는 유용할지 몰라도, 예술적 기능으로서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치열함은 있지만 그 치열함을 넘어서는 관조가 없다면 '예술한다'는 말은 치기 이상의 것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앞에서, 여러분께 드리는 첫 편지로 <젊은날의 肖像>을 꼽은 것은 동일한 나이를 살아간 자로서의 호기심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단지 그런 이유에서라면 김신의 <대학별곡>을 추천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책에는 김신이 펼쳐내지 못한 무엇, 즉 호기심 이상의 자극과 갈망이 들어있습니다. 스무살이 된 여러분은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거나, 진학을 앞둔 과정에 있겠지요. 또는 그 어떤 과정 속에도 포함되지 못한 국외자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이 <젊은날의 肖像>을 천거한 이유 중에 하나는 이 소설이 바로 그 '국외성(局外性)'으로부터 시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로의 진입이나 대학으로의 진학을 목표로 고등학교를 다녔든, 저처럼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른 채 마지못해 다녔든 여러분은 한국이라는 나라의 정서 아래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정서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일탈과는 무관한 학습과 모범적인 생활까지를 요구하는 것, 그 이외의 것은 어느 하나 인정하기를 꺼려하는 폐쇄성의 철저함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겪는 사회의 많은 귀퉁이들 사이에 끼여 신음하는 사람들은 궤도에 안착한 사람들보다 훨씬 많습니다. 여기에 바로 한국적 교육의 문제점이 있는 것이지요. <젊은날의 肖像>은 그 문제점을 모두 안고 있는, 거기에 안착까지도 포용하는 젊은 군상들의 자화상입니다. 존재에 대한 회의는 결코 제도권 아래에서 성숙하지 못합니다. 도서관에서 눈을 비비며 책을 읽는 손이 있는가 하면, 오토바이의 '쇼바'를 높게 올리고 굉음으로 질주하는 거친 손도 있는 법입니다. 간혹 '성민엽'처럼 텍스트상의 비평으로 이 책이 말하는 젊음을 악의적으로 비하하는 경우도 있고, '이태동'이나 '권영민'처럼 우호적인 분석을 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여러분은 우선 그런 평가들로부터 자유로이 벗어나 이 책을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젊음이라는 홍역에 대하여 아무런 예방조치도 강구하지 못하는 기성의 인식까지도 종식시키는 힘, 분석이 아니라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읽어내는 것이 이 소설의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좋은 책이라고 처음부터 말씀드렸습니다만 사실 <젊은날의 肖像>에는 몇 가지의 약점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개인적 에피소드라고 일컬어도 무방할만한 소품들이 작위적으로 연출되고 있다는 점 (별장집 황씨 남매, 날품팔이 소년, 칼갈이 노인과의 만남 등)이 그렇고, 지나친 현학성이 소설의 흐름을 끊어 놓는다는 것과, '김욱동'이 지적한 것처럼 불필요한 것으로 보이는 우화의 삽입, 그리고 결국에는 유교적 영향권 아래 자란 저자의 심증적인 회귀가 제도적인 선(善)아래로 종속되고 마는 귀결 등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런 몇 가지의 약점들은 소설적 장치의 거대화로 이해해도 무방하고, 당시의 소설적 풍토에서는 새로운 시도로 인정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장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판단이야 늘 시대와 관점의 폭을 어떻게 잡느냐하는 주관적인 것이니까요. 이런 몇 가지의 논란을 제외한다면, 이문열 자신이 '앞으로 내가 문학적으로는 이보다 얼마나 더 완벽한 글을 쓰게 되든, 그리고 또 어떤 평자(評者)가 어떻게 평을 하든, 내 가장 큰 애착은 이 책 위에 머무를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저 또한 이 책을 제 책읽기와 정신의 가장 우선에 두고 있습니다. 그것은 열아홉을 넘기는 과정에서 맞이했던, 그 참담하고 부끄러운 청춘의 시작을 장식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참 다행이었군요. 마침하게 만난 한 통찰로서의 젊음이 말입니다. ps. 여러분의 스무살 앞에 이 책이 놓여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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