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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장도서

시대가 선비를 부른다

지은이
정옥자 외
출판사
효형출판
페이지수
288
대상
미디어 서평 들고 남의 때를 아는 선비정신 지금은 어디에 여름 꽃들이 내년을 기약하고 다시 처음의 씨앗으로 되돌아간다. 어느 것 하나 어긋나지 않고 고집하지 않으며 순리를 따르는 것이겠지. 이런 얘기가 있다. 작은 옹달샘이 있었다. 그 곁에는 아름드리 나무가 서 있어서 더운 여름 날 목마른 이들이 찾아와 맑은 샘물로 목을 축이고 그 나무의 그늘에 쉬어가고는 했다. 시원한 바람이 나무 그늘에 불어와 사람들의 마음을 푸르게 물들이고는 했다. 한 욕심쟁이가 찾아왔다. 그는 옹달샘 곁에 서 있는 나무가 물을 많이 마시기 때문에 샘물이 항상 이렇게 조금밖에 나오지 않는다 생각하고 나무를 잘라버렸다. 나무가 죽자 작은 옹달샘도 시름거리며 물이 말라버렸다는 이야기다. 내가 사는 전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이가 오백여년이나 되었다는 곰솔이 얼마 전부터 죽어가고 있다. 그 나무는 병충해나 노쇠 현상으로 죽어 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독극물을 주입시켜서 죽어 가는 것이라고 한다. 누가 그랬을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 곁에 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랬을까. 자신의 재산권 행사에 방해가 된다고 그랬을까. 그게 사실이라면 그 넉넉한 자태와 기품 있는 소나무가 자신의 집 곁에 있노라고 자랑스러워하지 못하는 물신주의가 못내 서글프다. 죽어 가는 소나무를 보며 생각했다. 아닐 것이다. 이 소나무는 스스로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병든 시대, 너무 오래 살아 이런 험한 꼴들을 보는구나 하고 차라리 눈 감아버리는지도 모르지. 스스로를 기꺼이 죽여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지.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시대가 선비를 부른다』는 자신의 학문적 이상을 정치에 접목시켜 실천하려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한 시대의 폐단을 고뇌하는 지성으로서 선비정신이 어디 그 시대에만 국한되는 것인가. 자신의 학문을 부단히 연마하고 덕을 함양하며 벼슬길에 나아가고 미련 없이 물러서는 출처의 때와 기개를 잃지 않은 선비들은 오늘날 왜 보이지 않는 것인가. 모리배들이, 협잡꾼들만이 아귀다툼하는 이 시대의 정치판 속에서는 도대체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고통받는 이들의 아픔도, 나라의 자주도, 산과 강 갯벌의 환경문제도, 민족의 화합과 통일문제도. <한겨레신문 책과사람 01/9/8 박남준 (시인)> 조선을 떠받친 기둥 큰선비들의 올곧은 자취 '나라가 선비 기르기 5백 년인데 나라가 망하는 날 한 사람 죽는 자 없다면 어찌 통탄스럽지 않으랴`` 1910년 8월, 한일합방 소식에 식음을 전폐하고 누웠다가 유시(遺詩)와 절명시(絶命詩) 네 수를 남기고 자결한 매천 황현.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벗들의 거듭된 출사(出仕) 요청에 '어찌하여 나를 귀신 같은 나라의 미친 놈들 속에 들어가 한 패거리가 되라 하는가'라고 내쳤던 반골의 지식인. 그런 그였지만 죽기를 결심하고 약을 먹은 이튿날 아침, 아우가 달려오자 이렇게 탄식하였다. '내가 약을 삼키려다 입에서 뗀 것이 세 번이었구나. 내가 이다지도 어리석었던가.' `시대가 선비를 부른다`(효형 출판). 이상과 현실의 벽 사이에서 고뇌해야 했던, 이상과 원칙이 현실과 변칙 앞에서 참담히 무너지는 비극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던 조선의 선비들. 그들의 사상과 철학, 그리고 세상과 부대꼈던 그들의 내면세계를 짚었다. 작년 9월부터 반년 넘게 동아 일보에 연재될 당시 기존 인물 사상론의 한계를 극복한 시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우리가 잘 알지 못했거나 무심히 넘겼던 일, 또는 잘못 알고있던 일들의 이면과 배후를 꼼꼼히 들여다 본다. 1906년 유배 중이던 일본 쓰시마섬에서 단식으로 일제에 저항하다 순국한 면암 최익현. 허나, 그는 굶어 죽지는 않았다. ``일본이 주는 밥을 먹었으니 시키는 대로 하라'는 일본 군인의 협박에 결연히 단식에 돌입했던 면암. 그는 그러나 어느날, '당신의 식비는 조선의 국왕이 보내오고 있다'는 말을 듣고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종묘사직을 섬겨야 하는 유림으로서 어명을 거역할 수 없었던 것. 낙향하는 퇴계를 붙잡고 선조가 물었다. '지금 나라 안의 학자 중 누가 으뜸이오?' '기대승은 학식이 깊어 그와 견줄 자가 드문가 합니다. 내성(內首)하는 공부가 좀 부족하긴 하지만...' 영남의 퇴계(이황)와 호남의 고봉(기대승). 두 사람은 서로 천리 밖에서 편지를 주고 받으며 8년 여에 걸쳐, 그 유명한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을 벌인 당사자들. 심성 개념의 분석을 극도로 정밀하게 파고 들어갔던 이들의 논쟁은 조선시대 사상사의 찬란한 족적을 남겼다. 그런데도 퇴계는 왜 고봉을 일컬어 내성이 부족하다 했을까? 죽음에 이르러서도 '내가 죽거든 관을 두껍고 무겁게 하지 말고 얇게 하라. 먼 길에 운반하기 힘들까 두렵다'라고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정암 조광조. 엄청난 질주(疾走)와 교만, 유아독존의 특권의식으로 똘똘 뭉친 원칙 주의자이자 이상주의자. 정녕 개혁가에겐 절의와 죽음만이 최고의 가치이며 미덕인가? 한영우, 정옥자, 금장태, 김충렬, 최원식, 김준석, 정민 교수. 한국사 동양 철학 국문학 각 분야의 여러 중진 학자들이 필진으로 참여했다. 때로는 굽이굽이, 역사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며 역류하는 역사의 포효(咆哮)를 듣기도 하고 또 따로는, 수천길 낭떠러지로 낙하하는 역사의 외마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동아일보 이광표 기자가 시대와 인간의 이면을 들추는 선비들의 뒷이야기를 곁들였다. 여기에 중진 화가 김병종, 황창배, 이양원 화백의 그림. 말로는 다할 수 없었 던 감동과 여운을 실어 조선 사상의 빛깔을 전해준다.<후략> <동아일보 98/06/19 이기우기자> 정도전, 조광조, 조식, 이황, 이이, 유성룡, 송시열, 정약용, 황현, 최익현, 박은식, 신채호 등 불 같은 정신으로 시대를 호령하고, 때로는 초야에서 깊이 있는 사색으로 시대를 떠받친 선비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비춘다. 끊임없는 학문 연구와 수련으로 인간의 도리를 체득하고 실천한 참 선비 들의 삶을 통해 가치 체계가 흔들리는 이 시대의 좌표를 돌아보게 만든다. 동양철학이 특정 문중의 조상 기리기에 동원되는 이른바 ‘門中學(문중학)’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조상의 봉분을 석물로 뒤덮고, 족보를 새로 만드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게된 사람들에게 문집을 간행하거나 사상과 행적을 기리는데 권위를 파는 학계의 관행이 한국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폐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학회에서 한형조 한국정신문화원교수는 `문중의 지원을 받은 이들 연구 중에는 아예 존경하기로 작정하고 낯뜨거운 미사여구만 늘어놓은 글이 수두룩했다`고 지적한다. 한영우(서울대·한국사) 정옥자(서울대·한국사) 금장태(서울대·종교학) 김충렬(고려대·동양철학) 김준석(연세대·한국사)교수 등 한국사학자와 동양철학자들이 내놓은 <시대가 선비를 부른다>는 학계중진들이 쓴 것 치고는 가벼운 저작이다. 조선 초 학자이자 정치가인 정도전을 시작으로 조광조, 조식, 이황, 김인후 등을 거쳐 구한말의 신채호까지 이어진 23인의 선비전은 초등학교 시절 읽었던 위인전을 연상케 한다.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인물의 행적이나 사상적 특색을 기술하기보다 미사여구로 일관하는 선비전은 아예 감탄하기로 작정하고 쓴 듯하다. 이를테면 정도전은 `이 땅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순교자`로, 조광조는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우는 개혁의 화신`으로 묘사되는 식이다. 그나마 책을 묶은 것으로 보이는 이광표씨의 뒷글과 김병종, 이양원,황창배 교수의 그림 정도가 책의 모양새를 근근이 지탱할 정도다. 책은 96년 일본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 미야지마 히로시가 쓴 <양반>과 여러가지 점에서 대비되기도 한다. 일본인 한국학자가 쓴 <양반>은 김홍도나 신윤복의 풍속화나 여러 소설을 통해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있던 양반의 실체를 객관적이고도 냉철하게 조망한다. 안동의 유력한 지방 양반인 유곡 권씨 가문을 중심으로 양반 이야기를 풀어나간 미야지마 교수는 책을 내놓은 뒤 `조선양반의 면모에 대해 객관적으로 잘 정리된 책이 없다시피해 놀랐다`고 술회한 바 있다. <양반>에 대해 정리된 책 하나 내놓지 못한 채 이를 일본학자에게 미룬 학계의 계속되는 가벼움이 마음에 걸린다. 지금이야말로 참 선비가 절실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문화일보 98/06/18 김종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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