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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장도서

느림

지은이
쿤데라/김병욱
출판사
민음사
페이지수
181
대상
현대의 기술문명이 구가하고 있는 속도 숭배를 비판하면서 저물어가는 20세기의 세기말적인 삶의 실태를 반성하는 소설. 작가는 정보통신 시대의 전광석화 같은 속도에 대해 비판, 조롱하고, 나른한 백일몽으로 가득 찼던 18세기 낭만주의 시대의 완만한 삶에 대해 예찬하고 있다. <느림>은 <어째서 느림의 기쁨이 사라졌는가>라는 지배적인 테마를 둘러싼 공상의 혼합물이다. 미디어 서평 민주화되기 이전 체코 공산정권의 핍박을 피해 프랑스에서 작품활동을 해온 작가 밀란 쿤데라의 신작 장편 「느림」(민음사간)이 국내에서 출간돼 독자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쿤데라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비롯, 「불멸」 「농담」 「웃음과 망각의 책」 「이별의 왈츠」 「생은 다른 곳에」등 자신의 모든 소설이 우리 말로 옮겨 진 몇 안되는 외국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전의 작품들에서 보듯 그는 자기 소설의 주제를 제목 속에 함축하고 여러 에피소드들을 주제를 향해 집중시키는 작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새 작품 「느림」도 마찬가지 수법을 쓰고 있다. 「느림」은 정보통신 시대의 전광석화 같은 속도에 대해 비판, 조롱하고 있으며 나른한 백일몽으로 가득찼던 18세기 낭만주의 시대의 완만한 삶에 대해 예찬하고 있다.이 소설은 지금은 호텔로 사용되는 프랑스 센 강변의 고성에서 하룻밤 동안 일어난 이야기로 이뤄져 있다. 쿤데라는 5년전 발표했던 장편「불멸」에서 자기자신과 괴테, 헤밍웨이등을 작품 속에 등장시켜 서로 대화하게 하는 등 현존인물과 과거인물, 허구적 인물 등을 통해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불멸을 지향하는 욕망의 구조를 그려 보였다. 새 작품 역시 호텔에 머무는 「작가 밀란」과 그의 아내 베라,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18세기 그 고성에서 밀애를 나누었던 한 귀부인과 기사, 그 성에서 개최된 국제곤충학회에 참석한 학자들, 대중매체를 통해 신분의 수직상승을 꾀하는 군상들과 속기사 등을 통해 「느림」의 테마를 전개한다. 그 전개과정은 느릿느릿한 속도로 이뤄지는데 7개의 다른 이야기를 51개의 장을 통해 희극적이고도 에세이적인 필치로 그려내고 있어 이전 작품 「농담」과 닮은 꼴을 갖추고 있다. 작가는 소설 속에 18세기 프랑스 작가 비방 드농의 단편 「내일은 없다」를 재창작해서 들려준다. 원래 귀부인과 기사의 맹렬한 연애담이었던 것을 은근한 유혹과 절차상의 거절, 구애의 반복과 완만한 접촉으로 재구성해서 들려주는 것. 그간 존재론을 깊이 있게 다뤄온 쿤데라는 소설「불멸」에서『인간의 죽음에는 육신의 종말과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 둘이 있다』고 했는데 이번 작품의 메시지를 다음처럼 남기고 있다.『느림의 정도는 기억의 강도에 정비례한다. 빠름의 정도는 망각의 강도에 정비례한다』 <동아일보 95/04/27> 사망 임박설이 나돌고 있는 덩샤오핑(등소평)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의 얘기다. 일본측은 자국과학기술 수준의 상징인 고속철도 신간선에 등을 태웠다. 동승한 일본측 관계자가 『편하고 빨라서 좋지 않으냐』고 물었다.등이 대답하기를 『빨라서 좋긴 한데 이 좁은 나라에서 이걸 타고 어디에 가려하는지가 궁금하군요.』 쿤데라는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우리 나라 전통소설문법을 파괴한 원흉(?)으로 지목될 정도로 국내 신세대 작가 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작가다. 이번에 나온 『느림』도 전통적인 소설문법을 사정없이 뭉개버리는 누보 로망의 형식을 띠고 있다.시간과 공간이 엇갈리고 꿈과 몽상이 마구 뒤엉킨다. 그러나 결코 혼란스럽지 않다. 소설은 모두 7개의 각기 다른 이야기가 51개의 장에 걸쳐 이합집산하면서 하나의 목소리와 영상을 만들어 낸다.그 목소리는 덩샤오핑이 일본인에게 한 말과 울림이 비슷하다.그 영상은 속도를 늦추면 폭발하도록 폭약이 장치돼 계속 달릴 수 밖에 없는 버스를 소재로 한 영화 『스피드』를 연상시킨다. 『속도는 기술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엑스터시의 형태다. 오토바이 운전자와는 달리 뛰어가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육체 속에 있으며 끊임없이 자신의 물집들, 가쁜 호흡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인간이 기계에 속도의 능력을 위임하고 나자 모든 게 변한다.이때부터 그의 고유한 육체는 관심밖에 있게 되고 그는 비신체적·비물질적 속도,순 수한 속도 그 자체,속도 엑스터시에 몰입한다.』 쿤데라는 가속도를 이기지 못하는 기술문명의 맹목성을 신랄하게 풍자한다.그리고 살인적인 무한질주가 빼앗아 가버린 삶의 즐거움을 그리워한다.『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졌는가? 아,어디에 있는가,옛날의 한량들은? 민요들 속의 그 게으른 주인공들은 ….』쿤데라에게 느림은 행복의 형식이고 빠름의 대가는 망각이다. 이 무거운 주제를 그는 결코 심각하게 빨리 말하지 않는다. 그의 문체는 느리면서도 음악처럼 경쾌하고 표현법은 날카로우나 웃음이 있다. 그는 똥을 시로 만들고 시를 똥으로 뒤집는 ,아래와 같은 사유의 연금술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똥구멍.우리는 이를 달리 말할 수 있다.예를 들면 기욤 아 폴리네르처럼,네 육체의 아홉번째 문』.<세계일보 95/05/03 조룡호 기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체코출신 작가 밀란 쿤데라가 최근 <불멸>(90년) 이후 5년만에 신작장편 <느림(LaLenteur)>을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밀란 쿤데라는 이미 70년대부터 메디치상, LA타임스상 등을 수상했으며 요즘도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에 거명되고 있는 작가. 특히 「참을 수 없는…」은 국내에도 번역 출간돼 40만부 이상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했으며, 영화로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이번에 나온 「느림」은 한 작가 부부가 18세기의 고성에서 들은 2백년전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빠름」만이 미덕으로 통하는 오늘의 세계에서 「느림」이 갖는 미덕을 깨닫는다는 줄거리. 작가는 자신과 같은 이름의 밀란과 그의 아내 베라로 하여금 파리 인근의 센강변의 고성에서 하룻밤을 묵게 한다. 그들은 여기서 18세기 이 성의 주인이었던 마담 T와 정부, 그리고 남편의 삼각관계의 사랑이야기를 듣게 된다.2백년전의 연인들은 분별을 잃을 정도로 사랑에 빠지면서도 바로 육체적인 관계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냥 상대를 떠나보내고 련서를 교환하는 등 연애의 모든 과정 자체를 즐기면서 천천히 자신들의 사랑을 익혀간다. 작가는 밀란 부부의 사랑과 2백년전의 사랑을 중심으로 여자 TV연출가와 카메라맨 사이의 사랑, 불행한 사랑에 빠진 젊은이들, 작가 자신이 일상생활에서 보고들은 「만나자마자 통성명도 없이 동침하고 다음날이면 그냥 헤어지는」 현대식 「빠름(성급함)」의 사랑을 중첩시킨다. 작가는 이 흐름 속에 중국 장자의 고사 등을 인용해 독자들을18세기와 20세기, 동양과 서양의 「빠름」과 「느림」, 고상함과 저속함, 정연한 구조의 비극과 단순한 희극을 대비시킨다 . 이 과정 속에서 현대산업사회의 「빠름」에 익숙해 있던 주인공 밀란은 점차 『느림과 기억, 빠름과 망각은 각각 은밀한 끈으로 연결돼 있으며 느림의 정도는 기억의 강도와 정비례하고, 빠름의 정도는 망각의 강도와 연결돼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결국 이 작품은 현대가 상실한 「느림」의 미덕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작가는 이런 단순한 줄거리를 여러 개의 주제가 연결되고 중첩되면서 하나의 교향곡을 만들어내는 음악의 대위법처럼, 밀란 부부와마담 T의 사랑이라는 대 주제 가운데 여러 개의 소주제를 교직시 키는 중층적인 구조를 통해 펼쳐 보여준다. 한편 이 작품은 나오자마자 쿤데라의 대중적 명성과 문학성에 힘입어 「르 몽드」, 「르 피가로」 등이 「책특집」으로 대서특필하고 있는 등 다시한번 「쿤데라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국내에서도 몇 출판사가 전집 계약을 추진하고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 김한수 기자 ( 1995-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