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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땐 이런 책

* 자기 찾아와 부끄러움 - 쉽게 쓰여진 시


쉽게 쓰여진 시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나라,

시인(詩人)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時)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곰 내몰고,
시대(時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最後)의 나,

나는 나에게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最初)의 악수(幄手)




출처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음사, 1948 

* 윤동주(1917~1945) : 만주 용정 출생,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도움말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자주 갖지 못한다. 그러나 자신을 냉정히 살펴볼 수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삶의 방향도 바로 세울 수 있다. 일제 말기의 시인 윤동주는 낯선 나라의 한정된 공간(육첩방)에서 자신을 돌이켜 보고 자신의 삶에 대해 한없이 자책하고 부끄러워한다. 부모와 이웃과 친구와 떨어져 있는 외딴 곳에서 자신의 삶이 시대와 역사 앞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끊임없이 자책하는 시인의 행동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이러한 내면적 갈등을 통해서 비로소 시인은 순결한 자신의 내면과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의식과 마주칠 수 있었던 것이다. 음울하고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밝은 아침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나’의 모습을 통해 자기성찰의 힘이 얼마나 큰 지를 볼 수 있다. 

관련 내용
나의 남편 윤이상 선생이 세상을 떠난 뒤, 1996년 4월에 일본의 제자들이 돌아가신 스승을 추모하여 제각각 주머니에서 돈을 모아, 추모음악회를 두 번에 걸쳐 열었다. 제자들은 나를 초대했으며 왕복 여비와 호텔 비용까지 지불했다. 대학을 갓 나온 홍안의 청년들로 베를린에서 와서 공부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그들은 40이 넘어 일본 사회에서 각자의 위치에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대개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국경을 달리하는 제자들이 모두 옛날로 돌아가서 스승을 추모했다. 한 제자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현대 음악을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북 독일 킬에서 윤 선생님, 리케티, 노노 등 쟁쟁한 당대의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연주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선생님의 작품을 듣고 눈물을 흘린 저는 그 길로 베를린에 가서 선생님에게 사사하여 배웠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첫마디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네는 정직한가?’ ‘네,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자네는 솔직한가?’ ‘네, 저는 솔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좋다. 나에게서 배우도록 하라.’ 이러한 문답 끝에 저는 선생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저의 작품을 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 교단에 서면 선생님께서 하신 이 세가지 물음을 제자들에게 얘기합니다.”


남편은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예술은 솔직하고 진실한 데서 생겨난다. 그렇지 않고서는 진정한 예술이 될 수 없다. 듣는 이에게 설득력이 없고 감동을 주지 않는 예술은 죽은 예술이다.”
(이수자, 『내 남편 윤이상』, 창작과 비평사) 

관련 어록 및 어휘 
제 모습 비춰 보는 마음의 거울이란 흐림과 맑음의 대담(對談)이다. 《C.P.보들레르/악(惡)의 꽃》 


군자는 물을 거울로 하지 않고 사람을 거울로 한다. 물에 비추면 얼굴 모양을 본다. 사람에 비추면 즉 길흉을 안다. *君子不鏡於水而鏡於人 (*물을 거울로 하는 경우는 외형만을 보지만 사람을 거울로 하면 善惡이 분명해진다) 《묵자》 


거울이란 것은 얼굴을 보는 것이다. 얼굴에 불길한 것이 묻지나 않았는가, 또는 얼굴빛이 평화스럽지 못하지나 않는가 하는 것을 살피는 것이다. 그래서 군자는 거울을 대할 적마다 그 거울의 맑은 본성을 취해 얼굴에 비치는 거울처럼 자신의 마음을 맑게 하여 세상을 비치는 것이다. 《이규보 /동국이상국집》 

* 생각 거리
1. 나는 나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을 살아왔는지, 또 자신의 삶은 이 사회와 역사에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생각해 보자.
2. 자신이 지금까지 해 온 일 중 가장 부끄럽고 후회되는 일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