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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땐 이런 책

* 어떻게 죽을 것인가 - 만가


만가

궂은 비 줄줄이 내리는 황혼(黃昏)의 거리를
우리들은 동지(同志)의 관(棺)을 메고 나간다.
만장(輓章)도 명정(銘旌)도 세우지 못하고
수의조차 못 입힌 시체(屍體)를 어깨에 얹고
엊그제 떼메어 내 오던 옥문(獄門)을 지나
철벅철벅 말없이 무학재를 넘는다.

비는 퍼붓듯 쏟아지고 날은 더욱 저물어
가등(街燈)은 귀화(鬼火)같이 껌벅이는데
동지(同志)들은 옷을 벗어 관(棺)위에 덮는다
평생(平生)을 헐벗던 알몸이 추울상 싶어
얇다란 널조각에 비가 새들지나 않을까 하여
단거리 옷을 벗어 겹겹이 덮어 준다.
(이하(以下) 육행(六行) 략(略))

동지(同志)들은 여전(如前)히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숙인 채 저벅저벅 걸어간다.
친척(親戚)도 애인(愛人)도 따르는 이 없어도
저승길까지 지긋지긋 미행이 붙어서
조가(弔歌)도 부르지 못하는 산송장들은
관(棺)을 메고 철벅철벅 무학재를 넘는다.


* 만장 : 장사 때 비단 또는 헝겊에 적어서 기를 만들어 상여 뒤를 따름, 명정 : 죽은 사람의 관직・성명을 기록한 기, 가등 : 가로등, 귀화 : 도깨비 불 




* 출처 : 『그날이 오면』, 한성도서주식회사, 1949 

* 심 훈(1901~1936): 서울 출생, 시집 『그날이 오면』 

* 도움말
여기서 역사의 한 장면을 그려봅시다. 무학재에는 비가 옵니다. 아주 쓸쓸하고 구슬픈 비가 내립니다. 날은 어두워져 더욱 서글퍼집니다. 우리들은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동지의 시신을 메고 떠나갑니다. 보통의 사람들도 죽음으로써 그들은 이승의 죄과를 벗고 화려한 만장이며 명정을 세우고 떠나는데 우리들의 동지는 그 흔한 만장 하나도 세우지 못하고 떠납니다. 우리들은 동지의 관에 우리들 결의의 뜻을 함께 했던 옷을 벗어줍니다. 먼길 떠나는 동지가 추위에 떨까 우리의 옷을 벗어줍니다.
(이하 육행 생략된 부분은 일제 검열 과정에서 삭제됨)


우리는 동지의 주검 앞에서 맹세합니다. 독립이 되는 그날까지 이 목숨 민족에 바치겠노라고. 일본 경찰이 따라옵니다. 아마도 저승길까지 따라오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그것에 개의치 않습니다. 우리는 동지의 관을 메고 철벅철벅 무학재를 넘으며 맹세합니다. 광복의 그날까지 신명을 바쳐 동지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죽는 것이 참된 삶이 되는지를 생각하면서.

* 관련 내용
새야 새야 파랑새야 / 녹두 밭에 앉지 마라 / 녹두 꽃이 떨어지면/ 청포 장수 울고 간다.


들어들 보았지? 동학 혁명을 전후해서 불려진 노래로 우리 나라 근대 가요의 효시라고도 해. 가사 중 ‘파란’은 ‘八王’으로 되어진 온전 전(全) 자를 뜻하며 전봉준 장군을 상징한 것이고 ‘파랑새’는 전봉준을 따르는 민중들을 일컫는 것이라고도 하지. 노래는 식민지 시대에 금지되어 있었으나, 민족의 가슴에 오래 새겨져 오늘에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어. 이 노래만큼이나 널리 알려져 있는 분이 오늘 얘기하려는 농민 장군 전봉준이야. 전봉준의 굵은 삶을 짧게 훑어볼까?


1894년 3월에 전봉준은 동도 대장이라는 이름으로 무력 단계의 동학 운동을 총지휘하였지. 그는 순식간에 호남 전역을 해산하고 대세의 움직임을 관망하다가 9월에 다시 일어났지. 그러나 봉건적인 지배층과 일제의 야만적인 토벌 때문에 결국 동학군은 전면적으로 패주하게 되었고 전봉준도 1894년 12월에 순창의 피노리라는 산간 벽촌에서 잡히고 말았어. 1895년 3월 29일 마침내 동지들과 함께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졌는데 이때 그의 나이 겨우 41세였지. 


그러나 오늘은 나라를 바로잡고 외국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봉기한 그가 감옥에서도 일제의 집요한 회유를 뿌리치고 당당히 교수형을 받은 장쾌한 모습을 통해 인간 ‘전봉준’을 떠올려 보려고 해. 1984년 전주성을 점령한 전봉준은 폐정 개혁을 맡을 집강소(執綱所)를 호남 지방 곳곳에 설치하고 간부 20여 명을 데리고 각 집강소를 돌아보러 다녔어. 그는 농민군을 위로하고 앞으로 할 일을 이르고 있었지. 그가 담양에 이르렀을 때 청군은 아산만에 상륙하였고, 일본군도 뒤따라 서울로 들어와 설치고 다녔었지. 순창에서 전봉준이 일을 보고 있을 적에 일본에서 파견한 시찰원 무전범지(武田範之)가 열 다섯 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면회를 청했어. 전봉준은 이들의 면회를 거리낌없이 허락하고 장청에서 하룻밤을 그들과 함께 지냈지.


“장군! 우리와 힘을 합해 청나라 군사를 몰아 냅시다.”
“싫소!”
“장군! 청나라 군사를 몰아 내야 조선이 완전 독립됩니다.”
“우리는 청나라 군사도 싫지만, 당신네 나라는 더욱 싫소. 물러가시오.

우리는 나라를 바로잡고 외국 세력을 몰아 내기 위해 일어선 것이오.”
지략과 학식이 뛰어난 무전은 온갖 꾀로 전봉준을 회유했지만 전봉준의 행동은 굳고 의연했어. 일본의 간교한 이 교섭은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지. 전봉준이 서울로 잡혀 왔을 때에 그는 한 쪽 다리를 다쳤어. 그가 일본 병원에서 다리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일본 공사관에서 사람을 보내 그를 회유하려 들었지.


“그대의 죄상은 일본 법률로 따질 것 같으면 상당한 국사범(國事犯)이지만 사형에까지는 이르지 아니할 수도 있으니

그대는 마땅히 일본인 변호사에게 위탁하여 재판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오.

또는 일본 정부의 양해를 얻어 살길을 찾는 것이 좋지 않겠소?”
전봉준은 “나는 일본을 몰아 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고 말하고 결코 그들의 회유를 귀담아 듣지 아니했어.
일본은 끈질기게 전봉준에게 달라붙었지. 그리하여 6월에 전 순창 장청에서 하룻밤 얘기를 나누었던 무전을 또 다시 동원했어. 무전은 그때 일본에 있으면서, 전봉준의 사형날이 확정되자 장문의 편지를 전봉준에게 보냈어.


‘명숙 족하’ (明叔足下 : 명숙은 전봉준의 자)라는 친밀한 어투로 시작한 편지는 학문과 국제 정세와 조선의 실정을 논하고 ‘우리 일본이 조선의 독립을 지원하여 500년 사대(事大)의 폐습을 바로 잡아 주겠습니다……. 족하께서는 바라건대 화를 복으로 옮기는 계기로 삼으십시오.’ 라고 끝맺었어. 그러나 그는 당당한 모습으로 일제의 회유를 뿌리치고 사형장으로 끌려갔다고 해. 그는 그야말로 전화위복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뿌리치고 민족을 위해 당당히 교수형을 받은 것이지. 뒷날, 전봉준과 함께 동학 농민 혁명에 참여했던 이용구는 일제의 이용물이 되어 매국 주구라는 손가락질을 받았지. 전봉준과 이용구 두 사람의 길은 너무나 달랐어.
(『선생님! 이야기해 주세요』, 도서출판 참) 

* 관련 어록 및 어휘 
인류는 산 사람보다는 죽은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다.《A.콩트》 


인간은 죽어서 비로소 완전히 태어난다.《B.프랭클린》 


열심히 일한 날은 잠이 잘 찾아오고, 열심히 일한 일생에는 편안한 죽음이 찾아온다.《레오나르드 다 빈치》 


진실한 죽음의 자태도 현자의 눈에는 공포로 여겨지지 않으며, 경건한 사람의 눈에는 종말로 비치지 않는다.《괴테》 


귀토(歸土) : 사람의 죽음을 이름 

* 생각 거리
1. 일제 치하 민족의 독립에 신명을 바친 독립 운동가들의 존함을 적어보자.
2. 일제 치하 일신의 영달을 위해 민족을 배반한 자들을 적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