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마당 > 글쓰기마당 > 일기/생활문/수필

일기/생활문/수필

제목 다이어리 시집
글쓴이 조단비


다이어리 배경이 민트인데, 이불도 민트라서 색상이 번졌다.


몰랑이(Molang)는 하얀 오리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윤혜지 캐릭터 디자이너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아이러브캐릭터 공식 블로그에 의하면 이제 곧 콘텐츠계 10년차가 되는 베테랑 캐릭터이다. 희고 고운 몸체는 말랑말랑한 데에다 동그랗고 아기를 연상시키는 조그마한 손과 발을 지닌 돼지 토끼가 콘셉트라 하니 귀엽지 않을 수 없다. 발그레한 볼에 올망졸망한 눈, 코, 입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한 겨울에 눈이 쌓이면 공터에 나가 눈을 굴리는 아이들과 함께 눈사람을 만들고는 했는데, 사람 모양의 눈 사람만큼 토끼를 빼놓지 않고는 했다. 동그랗게 빚어 동그란 걸 달아주는 정도에 그쳤지만, 형체는 토끼였던 덕분에 나는 몰랑이라는 캐릭터를 볼 때마다 가끔은 내가 어릴 적 만든 눈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정도로 정감이 가는 캐릭터다.

당시 나는 어린 왕자를 읽고 하루가 다르게 녹아가는 눈사람과 사계절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 울적해 있었다. 눈사람을 냉동실 한편에 보관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인 것은 없다. 관계는 서로를 자주 돌아보다가도 때로는 잊히고 사그라들기도 한다. 그렇기에 추억이 생기고 경험이 자리 잡는다. 그럴 때마다 그냥 전화했어,처럼 '그냥'에 담긴 마음으로 기록하지 않은 다이어리를 열었다. 형용하지 못한 낱말은 스케줄도 아무것도 아닌 낙서를 하고, 여백을 남기다 잊히고는 했다. 여름을 좋아하는 올라프처럼 녹는 것마저 좋은, 짧은 시. 누군가와 같은 시간을 마주하며 익숙해지는 것이 기다림에 따른 기대와 길들임이라면, 나는 함부로 길들이고 길들여지는 시간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 손 떼 묻은 책이라고 의미를 다 알겠는가. 자리에 남은 향기도 그저 시선에 의해 바라보고 말 일인 걸. 그래서 느끼는 순간은 감칠맛이 난다.

기억 내 책장은 놓을 일은 드물어도 풀 일이 요원한 여백의 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노트에 펜이 따라다니듯이 다이어리에서도 자물쇠와 열쇠를 같이 두려 한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지만, 때마다 다름이 쌓이는 게 일상이듯 같은 일을 보더라도 다르게 느낄 수 있는 오늘이 있어 신선하다. 몰랑이와 함께 상기된 일들은 빗장을 풀어 헤치듯이 추억 속에 자리 잡은 일들을 끄집어냈다. 비록 녹았다 하더라도 행복은 행복을 부른다.


다이어리 하나로 시집을 선사한 너에게 보내는 글.
너는 내게 있어 좋은 추억이자, 현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