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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소설

제목 살아있는 숨결이거늘.
글쓴이 유지은
"결국 너는 거기까지인가보구나."





성별을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소년의 심장을 관통했다. 차가운 암흑에 쓰러진 소년은 뒷모습만 보이는 목소리의 주인을 노려보았다.





"몇번의 노력을 했다고 벌써부터 그들의 호의를 바라는 거지?"



"……."​



소년은 고개를 떨구었다. 미처 흘려보내지 못했던 붉은 눈물이 그제서야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툭, 툭. 자꾸만 눈물이 나와 흐려진 시야로 인영이 뚜벅뚜벅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마치 그림자같았다. 그림자는 소년의 얄팍한 어깨를 거머쥐고 아까보다는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이 호불호가 확실히 갈린다는 것, 너도 잘 알고 있었잖아. 너도 그들이었으니까."



그제야 소년은 완벽한 울음을 터뜨렸다. 알고 있었어요. 알고 있어요. 각오했던 일이었어요. 하지만…… 하지만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 것일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너무 교만했나봐요. 사람들이 좋아해줄거라고 믿었는데……. 왜 시도하면 시도할수록 나는 더 무기력해지는 걸까요. 이게…… 제 한계인가요? 또 이렇게 음지로 도망쳐버려. 그들을 만나도 그들을 알 수 없는 그곳으로. 난……난 결국 여기까지인가요. 예전처럼.




그림자는 소년을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한없이 차갑고 냉혈한같았던 그의 품은 따스한 햇살을 품은 어머니의 가슴처럼 포근했다.







"바보로구나, 너는."







……예? 그의 품에 안겨 숨죽여 흐느끼던 소년은 반문했다.






​"그들이 아무리 너를 스쳐지나간다고 해도, 그들의 자취는 지워지지 않는다. 그들이 남기고 떠난 발자국들은 아직은 무심하지만 언젠가는 잦아질 수 있는 희망이거늘. 네가 그들이 낯설듯, 그들도 네가 낯설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군가는 이미 네게 다가오고 있고, 다가왔거늘. 어찌 너는 그토록 빠른 걸음을 바라는거냐. 비록 희미할지라도, 그들은 살아있는 숨결이거늘."





큰 손이 소년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그 횟수가 늘수록 그의 손은 점차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의 모든 것이 점점 작아지는 듯 했다. 편안함에 잠겨있다 깜짝 놀란 소년은 그의 품에서 살짝 몸을 떨어뜨렸다. 그와 얼굴을 마주했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소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는 소년 자신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자신과 달리 그의 얼굴에는 담담함이 깃들어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들 중에 한명임을, 그리고 내가 바로 너임을, 있지 않길 바라."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뒤를 돌아 열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문쪽으로 걸어가 문손잡이를 돌렸다. 문은 끼익, 소리를 내며 옅은 먼지와 함께 빛을 들여보냈다. 영원의 빛 속으로 발을 내딛기 전, 그는 고개를 돌려 아직 주저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소년을 보고 미소지었다.





"나는 언제까지나 네가 내가 되기를 기다릴거야."





그 말을 끝으로 그는 환희로 가득 찬 빛 속으로 아련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