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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소설

제목 월그 최종화
글쓴이 최자인
널 처음 만났을 때 내심 질투했었어.
나보다 훨씬 더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동경하고 싶었어.
하지만 나의 더러운 마음은 동경하고 싶단 생각조차 더럽혔어.
결국 난 더러운 존재인 거야. 깨끗한 너와 달리. 순수한 너와 달리.



아마 현실 속에서의 난 일주일 가까이 자고 있을 거다.
분명히 부모님은 걱정하고 계시겠지. 아마 일어난다면 난 왠지 병실 침대에 누워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사실이 중요하지 않다. 지금은 오직 월그 뿐이다.
" 여름아,여름아. 이번엔 뭐하고 놀까? "
"글쎄... "
월그가 날 빤히 쳐다보곤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 돌아가고 싶구나. 나 때문에 미안해. "
" 아냐, 딱히 그런 생각은 안 했어. 뭐하고 놀까? "
"정말로 괜찮겠어? 우리 일주일이나 놀았잖아."
"응, 괜찮아. 자, 연못으로 가자."
우린 천천히 연못을 향해 걸어갔고 월그는 꽃을 꺾기 시작했다.
이 세상은 지금 한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 그것은 ...
" 여기 정말 깨끗해졌네. "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이 꽃을 봐. 전보다 더 하야니까 이뻐보이지 않아? 맘에 들어. 응. "
월그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월그도 꽃과 같이 전보다 더 하얘졌다. 그녀는 그녀의 마음처럼 하얀 모습이 더 이쁘고 아름다운 것 같다. 그런 아름다운 그녀를 보니 마음 한 구석이 쓰라렸다. 난 월그에게 다가가 꼭 안아주었다.
" 미안해.... 미안해, 월그.... 흑.... "
" 왜 그래, 갑자기 울고말이야. 아직도 힘들어? "
월그도 하얘졌다. 꽃도 하얘졌다. 나무도 하늘도 연못도 모두 하얘졌다. 완벽히 하얘졌다고는 말 못하지만 전보다 더 하얘졌다. 하지만 아직도 하얘지지 않은 것이 있다. 그 존재는 바로 나.
" 나... 네 부탁을 못 들어줄 것 같애. "
느껴진다. 월그의 표정이 변한 것을.
"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농담하는 거지? "
" 농담아냐. 진심이야. 난 변하지 못해. 너도, 이 세계도, 나 자신도 못 바꿔. "
갑자기 월그가 벌떡 일어나곤 나의 뺨을 떼렸다. 울고 있었다.
" 약속했잖아.... 약속했잖아.....! 그 때 분명히...흑... 약속했었잖아! 왜 이제서야 말을 바꾸는 건데! "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된 건 어쩌면 처음부터 내심 가지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이 세계를 없애기로 다짐을 했었지만 반대로 지키고 싶었다.
" 미안해, 월그. 난 못해. 난 이 곳을 없애지 않을 거야. 지킬거야. 너가 나와 약속을 했었던 그 순간부터 이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거야.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




" 여름아. "
내 옆에 누워있는 월그가 작은 말로 속삭였다.
" 너가 만약 내 친구라면, 약속 하나 해주지 않을래? "
" 뭔데? "
그녀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날 빤히 쳐다보았다.
" 언젠가 이 세계를 하얗게 만들어줘. 그리고 없애줘. "
"그럼 너가 사라지게 되잖아! 싫어, 못해!"
" 그 말은 넌 내 친구가 아니라는 뜻이야? "
싸늘한 표정으로 그녀는 말하였다. 난 가슴 한 쪽이 아플정도로 시렸고 어떻게 대답해야 될지 몰랐다.
" 아,아냐... 난... 너의 친구야... 하지만... 친구니까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아... "
" 월그, 네 말이 맞아. 하지만 난 사라지고 싶어. 사라져야할 존재야. 그래야 너가 행복해져.
난 네가 현실에서도 행복하게 살았으면 해. "
눈물이 났다. 월그의 그 따스하고 순수한 마음에 녹아버릴 것 같았다. 나보다 깨끗한 그녀가 질투나면서도 좋았다. 사랑스러웠다.
" 그리고, 여름아. 난 사라지지 않을꺼야. 내가 왜 널 버리겠어. 다만 모습만 않 보일뿐이야. 곁에 늘 있을거야. 날 믿어. "
"흑...정말로...?"
"응."
" 월그를 위해서라면....흑...그렇게할께....난... 월그의 친구니까... 월그를 좋아하니까... "
월그는 내 눈물을 닦아주곤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그 때 그녀의 웃음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 월그. 난 이 세계가 좋아. 더러워서 좋아. 현실에선 내가 제일 더러운 존재가 되지만, 이 세계에 오면 누구 하나 더 더럽거나 하지 않아. 모두 다 공평해. 그래서 이 곳에 기댈 수 밖에 없어. 그리고 무엇보다....난 월그를 잃고 싶지 않아. 항상 내 세게 속에 있도록 하고 싶어. "
" 너가 이 세계에 날 계속 두면 난 널 싫어할지도 모르는데도? "
"응, 그래도 좋아. 월그가 날 싫어해도 난 계속 월그를 좋아할꺼니까 상관없어."
바람이 불자 월그의 묶었던 머리가 풀어지고 옷이 바뀌었다.
그 모습은 마치 나의 어릴 적 순수했던 모습과 똑같았기에 눈물이 났다.
이건 월그의 진짜 모습일까. 또다른 나의 진짜 모습일까.
" 너가 이 때까지 그런 표정으로 고집을 부려본 적이 없었지. "
월그는 다시 회색 빛으로 돌아가는 연못과, 꽃, 나무 그리고 하늘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 원래대로 돌아가는거구나... 나도 다시 돌아가네.... "
뒤를 돌아봤다.
" 여름아. 네가 이 선택을 잘했는지는 누구도 장담을 못해. 이게 정말로 옳은지 나쁜지는 아무도 몰라. 하지만 너가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린다면 나도 그 뜻을 따를께. "
" 정말로? 정말로 괜찮아? 내가 싫지 않아? "
"응. 당연히 싫지 않아. 왜냐하면 말이지.... "



" 나의 소중한 친구잖아. "




15년후.
" 엄마, 다녀왔어요-."
" 다녀왔니? 손 씻고 간식먹어. 사라다 빵을사왔거든."
아이는 손을 씻고 사라다 빵을 먹었다. 그러다 아이가 엄마에게 질문을 하였다.
" 엄마, 엄마는 엄마의 세계를 가지고 있어요? "
"갑자기 무슨 말이니?"
아이는 은색 빛 나는 포크를 쳐다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말하셨는데, 사람은 마음 속에 자기만의 세계를 갖고 있데요. 파란 세계 라던가, 노란 세계라던가, 분홍 세계라던가. 색깔도 저마다 다르데요. 신기하죠? "
엄마는 웃으며 아이에게 나무랐다.
" 그게 무슨 엉뚱한 소리야. 선생님이 말장난 하신건 아니고? "
그러자 아이는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 아니에요! 선생님도 자신만의 세계를 갖고 계신데요. 그 곳은 온통 회색 빛깔로 가득 차 있대요. 친구도 있다는데요? 그... 뭐였더라.... 이름도 말해주셨는데.... 뭐였지....? "
아이가 은색 빛의 포크를 쳐다보곤 말하였다.
" 월그.... 걔 이름은 월그래요. "
" 그래? 지금도 그 세계를 가지고 계신대니? "
" 아뇨, 어느 순간부터 가지 못하게 됬대요. 왜 그런걸까요? "



" ......아마도 어릴 때의 동심을 잃어버려서가 아닐까? "



아이의 손엔 은색 빛의 포크가 반짝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