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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소설

제목 백합은 아직 피지 않았습니다. 2
글쓴이 최자인
" 아침마다 늦게 나와서 미안해. 헤헤. "
그녀 앞에선 나도 모르게 바보같은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 괜찮아. 하지만 앞으론 좀 더 일찍 일어나도록 해. 나 인제 아침마다 방송부에서 일해야하거든."
" 어라? 원래 독서토론부에 들어간다 하지 않았어? "
망했다. 난 인하가 독서토론부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독서토론부에 입부 신청을 했는데 방송부에서 일한다니. 이래서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는가 십다. 아님 말고.
" 독서토론부 맞아. 방송부에서 일하는 건 일손이 부족해서 내가 도와주기로 했거든. 거기에 아는 선배들도 계시고 해서 도와주지 안으면 또 뭣해서... "
그렇게 나는 인하와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누며 등교를 했다.



"얘들아, 얘들아. 너네들 얼굴책에서 그 글 봤냐?"
"그래그래! 너 말 잘했다. 완전 쩔지 않냐? 진짜 구역질 나더라."
아침부터 아이들은 웅성웅성거렸다. 무슨 사건이라도 터진건가.
조심스럽게 자기 자리에 앉은 인하에게 반 아이들은 인하에게 모여들어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인하야, 너는 얼굴 책 해?"
"아니, 난 휴대폰을 잘 안 봐서... 근데 왜?"
친구들은 인하에게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휴대폰의 작은 화면 안엔 여자 두 명이서 나체인 상태로 꼭 껴 안으며 셀카를 찍은 사진이 있었고 그 밑엔 글들이 적혀있었다.
" 어떤 미친 레즈년이 여친이랑 그걸 한 걸 자랑할려고 이렇게 셀카를 찍어서 자기 스토리에 올렸어. 진짜 미쳤지 않아? 이래서 레즈랑 게이는 역겹다는거야... "
아이들은 그렇게 동성애에 관해 오르락 내리락 까기 시작했고 구역질 시늉을 하는 아이들도 몇몇 보였다.
두 손과 발이 덜덜 떨리고 식은 땀이 났다. 인하는 저걸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는걸까. 왜 아무 말도 안 하는걸까. 제발... 제발 아무 말이라도 해줘.
" 정말 미친 사람들이구나. "
인하는 마침내 말을 꺼냈다. 좋다, 무슨 말이라도 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자. 아무 말도 안 하는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조차도 모르니 그것 보단 났다. 그런데... 그런데 왜이리 마음이 무거운걸까... 인하랑 사이가 멀어진 것 처럼... 아니, 이미 답은 알고있어...
" 하지만 동성애 자체가 나쁜걸까? 난 괜찮다고 생각해. "
모두들 일체 움직임이 멈추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모두 꿀 먹은 벙어리 같았다.
" 분명히 이 사람들은 이렇게 불건전한 사진을 올린 건 잘못된거야. 하지만 동성애까지 나쁘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동성애도 똑같이 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 뿐이야. 단지 좋아하는 대상이 남들과 다를 뿐이지. 안 그래? "
" 하, 하지만... 우리 오빠가 그랬어. 게이들은 막 서로 이런 짓 저런 짓 다 한다고... 레즈도 그렇고... 거기다가.... "
" 너가 직접 그걸 본 적 있니? "
그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 뭐든지 들은 얘기는 보지 못한 이상 믿으면 안되지 않을까? 확실한 것이 아니잖아.
나는 동성애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어. 그들은 얼마나 핍박 받으며 사는지 아니? 단지 다른 대상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불합리하게 사회를 살아가고 있어. 너네 모두들이 파랑색을 좋아하는데 나 혼자 빨강색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왕따 시키는 것과 똑같아. 하지만 생각을 해봐. 내가 빨강색을 좋아하는 게 잘못된 거니? 난 이 원리를 동성애에 적용해보면 동성애란 나쁘지 않다고 봐. 그게 내 이유야. 너네들도 조금씩 이해를 하는게 어때? "
모두들 어안이 벙벙해보였다. 하지만 그 중 제일 어안이 벙벙한 사람은 바로 나다. 지금의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기쁨, 고통, 혼란 갖가지의 감정들이 섞이고 뭉쳐 알 수 없는 기분이 느껴진다. 여느 때보다 가슴이 더 쿵쾅거리는 것 같다. 아, 여기에 계속 있다간 멀쩡히 있을 수 없을 것 같아. 빠져나가야겠다.
그 뒤의 일은 내가 화장실을 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아이들이 인하를 전처럼 똑같이 대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내가 없었던 짧은 그 시간 사이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
" 인하야. "
"응? "
다정하게 대답하는 인하.
" 아까 학교에서 한 말.... 진심이야? "
" 뭐가? 동성애 얘기? "
난 얼굴이 불그스름해진채 쑥스러운듯이 대답했다.
"으,응.... 넌... 동성애를... 싫어하지 않아? 게이라든지... 레즈라던지..."
" 당연한 거 아냐? 난 전혀 싫어하지 않아. 난 뭐든지 이해해줄 수 있어. 하나부터 열까지 말야. 그들의 마음을 좀 더 열어보고 알아가고 싶을 정도로 그들을 사랑해. 난 그들을 싫어하지 않아. "
눈물이 끌어오른다.
" 그...그렇구나.... 레즈라던지... 게이라던지... 싫어하지 않는구나. "
" 언젠가 그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 책으로만 접해서 그런가봐. "
아아, 더 이상 이 상황을 받아드리기 무섭다.
" 인하 너는? "
" 나? 나 말이야? "
목소리가 덜덜 떨린다. 식은 땀이 목줄을 타고 가슴골로 흘러간다.
" 너는 동성애를 싫어하니? "
한 걸음 먼저 뛰어간 나는 뒤를 돌아보며 쓸쓸하게 웃었다.
" 아니. 좋아해. 너 처럼 말야. "
노을빛에 흠뻑 젖은 우리는 서로를 향해 웃음을 띄었다.
그 웃음은 뭘 의미했던걸까.
하지만 웃음의 의미와는 상관없이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다.
이 노을빛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