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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소설

제목 앤설 연필
글쓴이 김률희
집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집으로 매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반복한다. 학원을 다니지 않는 걸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친구들은 학원에 이곳 저곳 다녀 같이 놀 시간이 없다. 저번에 쪽지시험을 보고 점수가 나와 담임선생님이 무한의 이름을 지목했다. 키득거리는 몇몇 애들이 신경쓰였지만 신경 쓰이지 않는 척하며 선생님께 갔다.
"지무한! 연습 시험이라 해도 그렇지 점수가 이게 뭐냐?!"
애들이 무한을 비웃어댔다.
받은 시험지의 점수는 국어랑 수학은 40점대 나머지 과목은 10점대에 머물렀다. 시험지를 들고 자리에 앉는데 별명이 까불이인 까불고리고 사고뭉치에 놀기만 하는 애인 기엽이가 자기 시험지를 무한의 앞에 펼치며 자랑을 늘어놨다.
"이래가지고 종간고사나 잘볼 수 있겠냐? 내가 너보다 더 잘봐서 부럽지?"
까불거리는 녀석한테 화내려고 했지만 시험지에 90점이라고 적혀있는 걸 보고 뭐라 할 수가 없었다. 저 녀석은 맨날 술버시간에 자고 애들하고 놀기만 하고 학원도 안다니는 애가 어떻게 공부를 잘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50점 미만은 남아서 보충수업을 일주일동안 해야해서 기엽이를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무한 외에도 두 세명 정도 같이 남아 보충수업을 억지로 듣고 집에 왔는데 엄마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무한 앞에 서있었다.
"선생님한테 들었다! 남아서 보충한다며?! 이번 중간고사 못보고 또 보충하면 학원 보낼테니까 그런 줄 알아!알겼에?!"
경고를 남기고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학원 가기는 싫고 공부를 시작하려니 머리에 안들어오고 천재인머리로 태어나서 공부를 잘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머리가 태어날 때부터 좋으면 학원에 다니거나 학교에서 집에서도 공부를 안해도 됬을텐데. 방에 들어가기 싫어 밖으로 나왔는데 딱히 갈 곳이 없었다. 놀이터에서는 무한보다 더 어린 애들이 놀고 있었는데 시소를 타는 꼬마 둘이서 서로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믿기지가 않았다. 무한이가 배우지 않은 것들까지 다 알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영어로 말하다니 계속 들었다간 울렁증 걸릴 것 같아 놀이터에서도 나와야 했다. 점심을 안먹었더 배가 고파 돈이 별로 없어 문방구에서 불량식품을 샀다. 산 김에 샤프도 사야겠다 싶어 샤프를 집었는데 문방구 아저씨가 무한이 집은 샤프를 낚아채 샤프를 원래 자리에 놓으셨다.
"이게 뭐하는 짓이예요!"
아저씨는 놀라거나 미안해하는 기색은 커녕 웃으며 말하셨다.
"꼬마야, 이 샤프보단 앤설 연필을 써보는 게 어때?"
"제가 왜요? 연필은 깎기도 귀찮고 불편해요. 샤프가 좋다고요."
"연필은 깎기는 귀찮을 수 있겠지만 이 연필은 달라."
주변을 둘러 살피시더니 아무도 없자 작게 속삭이셨다.
"니가 잘 모르나본데 이 연필은 공부할 필요 없이 시험 볼 때 정확한 답을 쓰게 하는 기발한 연필이야. 이 얘기는 비밀로 하겠다고 하면 연필 한 자루에 싸게 줄게."
사기꾼 같아 보여 듣지도 않고 있었는데 시험볼 때 답을 쓰게 해준다는 말이 무한의 귀에 파고 들었다. 부적 같은 것일지도 모르니 지금은 무한에게 딱 필요한 연필이라 사겠다고 했다. 집에 와서 엄마한테 인사도 안하고 방으로 가 연필을 깎고 수학책을 펼치고 제시한 문제를 풀었다. 이상하게도 내 손으로 풀고 있는 게 아니라 연필에게 조종 당하듯 연필에 이끌려 써지는 것 같은 느낌이였다. 다 풀고 답지로 채첨 해본 결과 믿을 수 없게도 다 맞았다. 문방구 아저씨 말이 사실이었다. 이런 대단한 연필을 겨우 오백원으로 산 자신이 행운아라는 생각을 했다. 기엽이 쯤은 거뜬히 이겨 백점 정도는 다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중간고사를 일주일 앞두고 놀기만 해 엄마한테 잔소리는 듣긴 했지만 이 연필만 있으면 아무 문제도 없다. 잘보고 나면 곧 칭찬을 받게 될 생각을 하니 좋았다. 보충수업 때 너눠준 프린트를 숙제로 내주셨는데 다 풀은 것도 신기하지만 다 맞은 게 더 신기하다며 칭찬을 침을 뱉듯 열혈히 해주셨다. 선생님이 엄마한테 전화하셨다. 엄마도 기뻐하셨다. 진짜 시험도 오늘처럼만 잘 보면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되는 건 물론 무한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차려준다고 하셨다. 앤설 연필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중간고사가 왔다. 무한의 앞에 앉아 있는 기엽이보다 더 잘봐서 놀릴 수 있는 기회였다. 예상대로 국어 시험지를 뒤로 돌리고 문제를 보자마자 연필이 무한의 손을 움직이게 해 답을 쓰고 있었다. 나머지 과목들고 10분만에다 풀었다.
성적표를 받을 땐 교실에 있는 모두가 놀랐다.
"무한이가 전 과목 다 100점을 맞았다! 너희들고 무한이처럼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 오르도록 노력해라!"
선생님의 이말 때문이였는데 애들은 무한의 시험지를 보더니 공부 비법이 뭐냐고 물어댔다. 무한의책상에 모인 애들 사이에 기엽이가 있길래 기엽에게 저번에 자기에게 했던 짓을 그대로 똑같이 따라해줬다.
"야! 저번에 네가 뭐라고 했더라? 이래가지고 중간고사 잘볼 수 있겠냐고? 부럽냐고? 어쩌지? 중간고사는 내가 잘봤는데 말이야."
이번에는 기엽이가 애들 사이에서 웃음거리가 되었다. 기엽이는 아이씨 라며 무한을 한번 노려보고는 문을 쾅 닫고 나갔다. 질투가 났을 테니 화가 많이 나긴 했나 보다. 집에서는 약속대로 엄마는 무한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해주셨고 아빠는 연습시때는 우연히 잘본 거라며 무시했었는데 중간고사 시험 점수를 보더니 미안하다며 용돈을 주셨다. 다음 시험에서도 그 점수 정도로만 비슷하게 유지하라고 하셨다.
학교에서 발표 시간에 연필을 깜박하고 집에 두고 가져오지 않았을 땐 다음부터는 복습을 하라며 넘어가주셨는데 애들도 의심하진 않았지만 기엽이만은 무한을 노려보며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다.
2주가 지났더니 연필 심이 빨리 달아 연필깎기로 깎아 쓰는 날이 많았다. 벌써 반이나 깎아지려 한다. 다쓰기 아까워 일부러 아껴서 썼었는데 아껴서 써도 생각보다 빨리 달았다. 어차피 다 달으면 한 자루 더 사면 될걸 무슨 걱정이란 말인가.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었던 거다. 여전히 연필을 잘 활용하고 있어 수학경시대회에 참가해 상 타고 성적이 오른 덕분데 상적 관련 교과우수상도 받았다.
기말고사를 앞도구 직접 공부하진 않았지만 연필의 힘으로 너무 무리했나본지 조금씩 아프고 살도 빠진 것 같았다. 공부를 잘하게 됬는데 이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서서히 부모님과 선생님과 반 친구들은 공부 너무 무리하게 하지 말라며 걱정했다. 걱정할 정도로 무리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정도는 끝딱 없어서 괜찮았다.
갈수록 힘이 없어지는데다 입맛까지도 없어져 아침 굶는 일도 잦아졌다. 엄마가 먹고 가라고 해도 안먹고 가1교시에 영어 지굼을 해석하려다 눈 앞이 어지러워져 쓰러지고 말았다. 몇몇애들의 비명소라가 들리는 것도 같고 누구 이름을부르는 것 같기도 했도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라 오랬동안 눈을 감았던 것 같다.
흐릿하게 나마 눈을 뜨니 기명이가 무한의 앞에서 간호해주고 있었다. 벌떡 일어나다 무한의 머리와 기업의 머리에 부딪혀 서로 아씨 라고 동시에 말했다. 지금 보건실에 있었고 침대에 누워 있었나 보다. 기엽이가 간호해줬다니 어울리지 않아 웃겼다. 깔깔 웃는 무한의 모습을 보고 기엽이도 덩달아 따라 웃었다.
"웃는 거 보니 괜찮은 가 보네. 너 네가 쓰러진 것도 몰랐지? 너 업어서 데려오느라 뼈 빠지는 줄 알았다. 다 나으면 한턱 쏴."
기엽이가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다는 게 놀라웠따. 보건실까지 데려와 줄 정도로 착한 구석이 있는 애였나? 기엽은 무한에게 부러진 연필을 내밀어 보여줬다. 벌떡 뛰어 뭐라 소리지를 힘이 없었찌만 주먹을 움켜쥐었다.
"너 위험할 뻔했어. 갑자기 애가 성적이 확 오르니까 밤샜나 싶었는데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널 지켜봤어. 그 연필을 쓰고 있더라. 쓰지 말라고 말하려다 내 말을 믿지 않을 것 같아서 네가 알아서 하겠지 라고 생각하고 냅뒀어. 근데 냅두면 냅둘수록 네가 말라가고 평소에 활기찼던 데 사라지고 있었어. 장난도 못치겠고 너답지 않아. 그 연필 문방구에서 아저씨가 사라고 했지? 공부나 시험에 도움이 될 거라면서. 도움이 되는 건 잠깐 뿐이지 연필을 쓰면 쓸수록 머리 속에 벌레가 들어와 몸 속의 에너지를 앗아가고 뇌가 텅 비게 된대. 지금이라도 내 말을 믿었으면 해."
친구가 알려준 거라면서 문방구 아저씨가 몰래 혼잣말하는 걸 들었다고 했다. 벌레가 뇌 속에 들어갔다니 징그러워 얼굴을 찡그렸다.
공부를 다시 못하게 되면 애들에게 성적으로 비웃음거리가 되고 기엽이도 다시 비웃겠지. 연필을 사용하지 못하게 됬으니 꼴 좋다고 생각하는 걸 보고 있으면 머리가 아파왔다. 아파도 에너지를 앗아가도 필요한 거였는데 기엽이가 부숴트렸다. 용서할 수 없다.
"내가 다시 바보 되니까 꼴 좋지? 그래! 너 잘났다! 잘났다고!"
주먹을 휘두르려다 기협이가 무한을 손목을 잡아 때리지 못했다. 기엽은침대에 걸터 앉아 말했다.
"미안.내 잘못이야. 놀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네가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어."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건가. 인정하는 척하는 건가. 인정하는 척하는 게 아니라 직접 스스로 미안하가도 말한 거에 혼란스러웠다.
"공부 못하는 애들을 놀리곤 했었어. 내가 반에서 1등이었으니까. 이젠 그러지 않을 거야. 앤설 연필은 내가 부쉈지만 대가로 널 가르쳐줄게. 처음부터 네가 모르는 것도 다! 널 업고 보건실에 데려다주면서 생각했어. 네 시험지 중 사회는 80점인데 쌤과 애들은 낮은 점수만 보고 판단하는 걸까 하고. 너도 마찬가지고. 한 과목이라고 나보다 더 잘본 게 사회였는데 사회는 잘봤다고 주장하지 않고 아무 말고 안하더라. 사회 잘했듯이 내 가르침만 받으면 다른 과목들도 잘할 수 있을 거야."
기엽이가 무한의 못본 점수를 발견해주고 말해줬다. 기엽이랑 같이 열심히 공부하면 못본 과목들도 점수가 오르겠지? 100점을 맞진 못하더라도 친구랑 하면 조금씩 오를 수 있겠지?
보건실에서 같이 나와 기엽이가 살 좀 찌우라며 라면을 사주겠다고 했다. 입맛이 돌아온 듯 배고픔이 느껴져 라면을 먹으로 분식집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