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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소설

제목 단지 여러 조각의 글자들일 뿐이야
글쓴이 최자인
폰을 켜고 당첨작 명단을 본다.
스크롤을 하나씩 하나씩 내릴 때 모르는 이들의 이름만 올라와 있었다.
스크롤 바가 휴대폰 화면의 맨 아래쪽에 닿였을 땐 곧바로 전원을 꺼버린다.
두 달이나 걸쳐 만든 소설이 그렇게 가치가 없는 걸까.
무엇이 심사위원의 맘을 사로잡지 못한 것일까.
도대체 그 무엇이 내 앞 길을 가로막는단 말인가.
이젠 이런 것도 지겹다.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맘 뿐.
공허한 메아리가 또다시 소리친다.
넌 가능성 없는 것 뿐이라고. 되도 안 되는 일은 때려치우라고. 이젠 끝이라고.
오늘도 공허한 메아리 속에 정신을 맡긴다.



"아림아- 교내 한글날 글쓰기 대회에서 금상을 탔단다 ! 모두들 아림이에게 박수 !"
(이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은 내 머리 위를 가볍게 쓰다듬으시곤, "아림이는 글 쓰는 재주가 뛰어나구나. 훌륭해! 정말 자랑스럽단다."
"히히히, 감사합니다. "


"엄마! 아빠! 저 오늘도 글쓰기 대회에서 상 받았어요 ! 상이 금상인데, 금이니까 제일 좋은 상 맞죠? 저 대단하죠? 저 1등이에요! "
"우리 아림이 잘했어. 오늘 밖에 나가서 외식하러 나갈까?"
나는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차를 타 고깃집에 가 외식을 하러 갔다.
집에는 덩그러니 금상이 제일 아끼는 파일 안에 꽂혀있었다.



" 얘들아, 우리 반에 상장이 2장이나 왔네. 금상은... 유현이! 자, 받아가거라. "
쏟아지는 아이들의 박수 소리.
" 그리고.... 장려상은 아림이 ! "
아까보다 조금은 작아진 박수 소리. 거기에 곁들어진 아이들의 비웃음 소리.
" 크큭, 앞에 금상 받는 유현이랑 비교된다. 쪽팔리겠어! "
"야야, 조용히 해. 들릴라. "
맞다, 날 비난하는 소리는 유난히 더 잘들리는 걸. 아주 잘들려.
그래도 난 너네들보다 글을 잘 써. 아주 잘 쓴다고.
( 그리고 이건 중학교 1학년 때... )



운동회 조례시간.
" 아아, 여러분. 자랑스러운 소식이 더 있습니다. 전국 글쓰기 대회에서 우리 학교 아이들이 상장을 탔더군요 ! 교장선생님은 이 아이들이 무지 자랑스럽군요. 앞으로 나와주시길 바랍니다. "
하나씩 하나씩 아이들의 이름을 호명하고 끝내 아림이란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어, 공아림 쟤 상장 않 받네? 쟤 그래도 장려상 정돈 탓잖아. "
"쟤 그렇게 글 잘 쓰는 건 아냐. 꼴랑 교내에서 장려상 받는 정돈데 전국은 무리수 두는 거지 뭐. "
"아, 그런가 ! 키키키킥. "
웃음 소리에 온 몸이 굳어 깨져버릴 것 같다. 이 기분. 이 생각. 이 상황. 다 맘에 안 들어.
" 타박 타박 타박 타박 "
손이 앞서갔다.
" 앗! 왜 때려 ! "
"공아림, 너 미쳤어? 갑자기 애는 왜 때려? 싸가지 없는 거봐. "
" ....러..... "
" 뭐? 말 할꺼면 똑바로 해 진짜! 때린 이유부터 말해ㄹ-"
" 시끄럽다고! 너네 귀는 장식이냐! 손은 또 어떤지 너네는 나보다 글 잘써? 못 쓰잖아? 반어법, 설의법, 육하원칙 이런거 너네들은 모르지? 모를거야. 나보다 글을 못 쓰니까. 나보다 글을 못 쓰면 나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지마! 이 추잡한 것들아! "
뒤에는 기억이 안 난다.
확실한 건 교장실에 내 부모님을 모셔가 고개를 숙였던 기억이다.
( 중학교 3학년 때 인가... )



(이것은.... 고등학교 3학년,...그러니까... 지금인가)
" 여보. 우리 아림이 언제 한 번 얘기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 "
" 나도 그 생각이야. 어릴 땐 남보다 뛰어나더만 지금은 뭐 상 하나 못 타오는데 왜 자꾸 글만 쓰는지 나원 참... 속이 터져서 말이야. "
" 고등학교 3학년이니까 수능도 쳐야하는데 통 공부하는 모습도 안 보이고 말이에요... "
조잘 조잘 시끄럽다.
저 어른들도 똑같다. 내가 글을 못 쓴다고 생각하다니. 실망이다. 내 편인 줄 알았는데.
나보다 글을 못 쓰면 아무 말도 하지 말라니깐. 모두들 다 하나같이 입이 오두방정 이다.
그리고 아침,
" 아림아. 잠시 얘기좀 하자. "
" 죄송해요, 글 써야 되서 바빠요. "
" 잠시 얘기좀 하자니까 ! "
" 바쁘다는 말 못들었어요? 할꺼면 나중에 해요. "
" 잠시면 된다니까, 아림아! "
꽃병을 바닥에 던졌다.
" 쨍그랑 - ! "
" 시끄러! 하나같이 다 시끄러! 글쓰겠다는 뭘 그리 말이 많아! 글쓰는게 너네들 한테 피해 줘? 아니잖아! 나보다 글 잘 써? 못 쓰잖아! 제발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마! 난 계속 글을 쓸거고 앞으로 죽을 때까지 글 쓸꺼야! 제발 닥쳐! "
넥타이도 제대로 못 맨 교복을 입고서 집을 뛰쳐나왔다.
지나가는 자리마다 붉은 방울들이 줄줄이 따라 온다. 아마도 피겠지.
눈물을 흘리는 건 이미 오래전에 그만둔 일. 그저 숨만 차도록 뛰었다.



이 모든 것들은 나의 과거들.
아프고 상처만 가득한 내 과거들.
글 쓰는 이유 하나 때문에 이 모든 일을 겪었던 것인가. 정말로 한심하다.
누군가 날 도와줬으면 한다. 혼자서 버티기엔 지금의 현실이 너무나도 힘들다.
그저 옆에서 버팀목이 되줬음 한다.
하지만 그건 내 소망일 뿐 누군가가 되어줄 순 없다.
오늘도 난 고독하고 외로운 현실을 버텨야 한다.
변하지 않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바꿔볼려고 노력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이미 오래전에 눈물을 삼켰을 텐데 눈가에선 물방울들이 하나 둘 씩 떨어졌다.



" 힘들어... 힘들어.... 그만두고 싶어..... 흑...... "


휴대폰엔 당첨 탈락 메세지가 왔단 알림이 슬프게 울리고 있을 뿐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