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마당 > 글쓰기마당 > 글나라북클럽

글나라북클럽

제목 사람사전
글쓴이 황초롱



사전을 읽은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두꺼운 사전인 국어사전, 영어사전, 외국어 사전을 학교에 들고 다니며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곤 했다. 처음 보는 단어가 어찌 그리 많은지. 사전을 펼쳐 뜻을 모르는 단어의 의미를 찾는 일이, 새로운 단어를 발견하는 일이 즐거웠다. 단어가 가진 사전적 의미를 알면 그 단어를 잘 쓸 수 있을 것 같아 열심히 봤었다. 단어 의미를 살려 적재적소에 맞는 말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으면서. 사전 속 단어의 뜻이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걸 깨닫기 전까지 사전을 꾸준히 읽었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면서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소통하지 못하는 대화가 발생하자 사전적 의미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와 너와 사회와 나라가 모두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만, 전혀 소통이 안 되는 걸 본다. 나, 너, 사회, 나라가 생각하는 단어의 뜻이 각각 달랐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우리가 다시 소통할 수 있을까, 틀어진 관계를 바로잡고 오해를 풀 수 있을까. 해결 방법을 모르기에 풀리지 않는 이 문제를 꽤 고민했다.


다시 소통하기 위해선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 담긴 단어의 뜻을 확실히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봤던 사전에서 단어의 뜻이 적혀있었지, 대화를 잘하기 위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단어가 담긴 사전은 없을까'라는 물음에 답을 해주는 <사람사전> 책을 발견했다.


국어사전도 아니고 외국어 사전도 아니고 용어 사전도 아닌 '사람사전'이다. 단어 하나하나에 사람이 들어 있어서 사람사전이란다. 단어 자체를 주어로 두고 설명하는 방식이 아닌, 사람 입장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통용되는지 적혀있다. 국어사전에는 단어에 사람이 없어서 딱딱하고 감정이 없었다. 그래서 국어사전에 적힌 단어들은 그 의미가,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진심이 상대방에게 가닿지 못했던 것이다. 단어에 사람을 넣고 온기를 담고 인간미를 심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사는 단어, 사람이 소통할 수 있는 단어가 되는 것이다.


사람을 담은 단어를 사용하면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쓰고 관심을 담은 말을 하게 된다. 상처가 아닌 배려의 말을 하게 된다. 단어에 사람을 담으면 단어가 살아난다. 단어에 기쁨, 슬픔, 노여움, 즐거움이 살아난다.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땐 무채색이었던 단어가 사람사전에서 보면 형형색색 사람 색이란 걸 깨닫게 된다.


저자 정철은 <사람사전>에서 단어에 사람을 담아 사람사전이지만 자신의 눈으로만 본 편견 사전이라고도 했다. 작가의 독특한 시선으로 이전에 알던 단어가 달리 보여서 한쪽으로 치우친 사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선입견을 내려놓고 단어를 비틀고 뜯고 뒤집어 그 숨은 뜻을 발견하려는 시도가 신선했다. 무엇보다 단어에 사람을 넣는 시도가 불통의 관계를 소통으로 이끄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