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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북클럽2기] 집을 고치며 마음도 고칩니다 / 정재은
글쓴이 노문희



알맞게만 있으면 된다.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된다.

불편하지 않은 정도가 알맞음의 기준이지 않을까.

물건이든, 공간이든, 관계든, 일이든, 전부 말이다. (101페이지)


부동산이나 집에 관해 잘 모르는 나도, 요즘 이슈가 되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점점 피부로 와 닿는 현실이라는 것을 느껴서일까. 적당히 때가 되면 이사를 할 수도 있겠다고 느긋하게 생각했는데, 막상 이사가 현실이 되고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겪은 일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험난하다는 것을 알아서일까. 어쨌든 대한민국에 살면서 집에 관한 어려움을 겪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전세든 월세든, 내 집을 갖고 있든 아니든. 그 나름의 고충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저자 역시 세입자로 살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다가, 어느 날 눈에 들어온 허름하고 작은 집 한 채를 눈앞에 두고 내 것으로 점찍는다. 일단 매입하고, 이곳을 새롭게 탈바꿈시켜야겠다는 다짐으로 계약한다.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해야 한다는 것보다 다른 어려움이 있겠지만 내 집이라는 안도를 더 품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에게도 있겠지, 집에 관한 로망 같은 거. 언제가 될지 몰라도 나만의 집을 갖고 싶을 테고, 온전히 나만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은 바람. 그런 공간이 생긴다면 어떻게 꾸밀 것인가 하는 고민도 이어지겠지. 그동안 상상해온 어떤 공간에 색을 입히는 일이 신나는 모험 같을 것이다. 주방은 이렇게, 침실은 저렇게, 서재도 하나 만들고 싶고 책으로 가득 채우고 싶을지도 모른다. 정원이 있는 곳에서 나무의 푸름을 느끼면서 사는 건 어떨까. 온갖 생각과 상상으로 채웠던 머릿속은 이제 현실에 적용해서 실현하기만 하면 된다. 자, 스타트!


어떤가? 상상만큼, 그동안 그려왔던 것만큼 현실 속 공간에 잘 그려지고 있는가? 저자도, 나도 그랬다. 생각하는 것을 어설픈 그림으로 그려가면서 작업자에게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하지만 나름 전문가라고 말하는 그들에게 내 생각을 그대로 적용할 수가 없었다. 왜? 뭐든 안 된단다. 그렇게는 안 된다고, 그럼 이런저런 단점들이 있다면서 자기들의 방식을 강요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더 우길 수가 없었다. 더운 여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하는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한숨 소리와 욕이 거슬렸다. 차마 정면에 대고 하는 말은 아닐지라도, 그게 나 때문에 나오는 거친 말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생각을 최대한으로 반영하고 싶은 바람은 멈출 수가 없다. 저자에게도 그런 바람이 있었기에 직접 구상하고 원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전세를 전전하다 서울 땅에 내 집을 지을 곳을 마련했다는 기적 같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낡고 허름한, 10평 남짓한 곳에 만들어갈 보금자리가 얼마나 귀했을까. 그러니 더는 허투루 아무렇게나 만들 수 없지 않은가. 언제까지 살지 모르지만, 그들이 처음 소유한 등기권리증을 확인한 공간이었으니...


이 책은 그렇게 저자가 만들어가는 집의 구석구석을 비추면서, 동시에 저자가 잊고 지냈거나 지나가 버린 마음을 다시 돌보는 계기가 된 순간을 들려준다. 아니, 순간이 아니라 감정의 흐름을 그대로 적어가고 있었다는 게 맞겠다. 열두 평의 작은 집에 마주한 고요와 행복이 이럴 수도 있구나 싶은 놀라움과 이상한 위로 같은 감정이 저절로 보인다. 아마 저자도 처음 경험한, 내 손으로 하나하나 알아보고 꿰어 맞춰가는 집이 그동안 지내왔던 공간과 사뭇 다른 느낌일 테다. 높은 빌딩과 골목 구석구석에 자리한 빌라 건물이 아니라 나무와 길이 있는 동네의 표정이 마음에 들었다. 이 낡은 집을 어떻게 변신시켜야 할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여러 가지 여건상 새로 짓는 것보다 대대적인 수리를 하는 게 가장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려나간다. 그 작은 집에 자리해야 할 공간들의 용도와 그 공간의 모양새를 머릿속에서 조금씩 꺼낸다.


얼핏 보면 그냥 공간의 이동을 위한 수리 과정을 적은 것 같지만, 그 공간이 어떻게 만들어져가고 있는지 보면서 따라오는 여러 가지 생각을 더 많이 한다. 온갖 아이디어가 출동하고,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면 아쉬워하면서 계획을 수정한다. 처음 갖는 내 집에 들뜬 마음은 그동안 봐왔던 많은 인테리어를 다 꺼내게 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음을 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조건의 집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렇게 만들어진 집이 과연 내가 원하는 집인가 하는 의문의 답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던 거다. 거실에 책장을 만들고 한 번 이상 읽지 않은 책들을 꽂아두며 만족스러워했던 것이, 생각해보면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집으로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나 하는 깨달음 같은 거. 무언가 잔뜩 채워 넣고 보기 예쁜 것들이 가득한 곳이 그들이 원한 집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너무도 원했던 내 집이 안락함으로 채워지기 위해 어때야 하는지 서서히 알아가고 있음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실천하고 반복하면서 점점 그들이 원하는 공간으로 바뀌는 집을 보니 뿌듯하다. 전문가의 손을 거치기도 했지만, 그들이 스스로 만들고 변화하는 집 안 구석구석을 보는 기분은 남다를 것 같다. 그냥 집이 아니다. 새로 산 물건 하나쯤 보면서 즐기는 게 아니다. 어렵게 마련한 공간에서 이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묻곤 한다. 이 공간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삶으로 채우고 싶은지 묻고 대답하고 수정하고 부딪혀 나간다. 그러는 과정에 지나온 시간이 저절로 함께한다. 그동안 살아온 모습에 현재를 같이 본다. 버릴 수 없어서 차곡차곡 쟁여온 물건들을 정리하는 법을 배운다. 좁기도 하지만 가격 때문에라도 선택한 중고 물품들이 그들의 집에 자리 잡는다. 마냥 어려울 것 같았던 목공이나 싱크대 작업도 스스로 할 줄 알게 된다. (나도 여기서 처음 알았는데, 싱크대는 정확한 치수만 재어서 온라인으로 의뢰하면 배송이 된다네?) 내 손 하나하나 거치면서 만들어진 집이 그냥 돈만 주고 사서 들어온 집과 같지 않다는 건 당연하다. 그러니 더 애틋할 수밖에. 내가 직접 고르고 만들고 붙여가는 재미가 삶에 한층 더 즐거움과 만족감을 준다.


오래된 시골의 주택에 살다 보니 불편한 게 너무 많다. 낡아지는 것들을 보수하는 일과 필요한 것들의 자리를 찾아주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더는 고쳐도 나아지지 않는 것들에 한계를 느낀다. 방법은 두 가지. 이사를 하거나 새로 짓거나. 이사를 하게 되면 꼭 아파트로 가야겠다던 마음은 최근의 경험으로 점점 희미해진다. 아파트든 주택이든 장단점이 있으니 취향에 맞는 최선의 선택을 해야겠지만, 어느 쪽으로도 완벽한 만족은 없겠지. 하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계속 생각한다. 어느 쪽이든, 내 손과 마음이 닿아있는 곳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안락하고 행복한 공간이 될 것 같다고. 집을 알아가고 고치면서 배워가는 게 늘었다. 어떻게 해야 조금 더 효율적인 공간이 되는지, 덜 가지면서 만족할 수 있는지 알아간다. 어쩌면 이제껏 집안에 가득 채우고 버릴 수 없다며 움켜쥐고 있던 것들은 집안을 답답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불안하고 우울했던, 결핍으로 채워지지 못한 마음을 대신하려고 했던 건 아닐까. 어느 날 저자가 하나둘 저장하는 방식을 바꾸고 버리면서 느꼈을 그 후련함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그 작은 집에서 마주한 고요와 행복이 무엇인지 눈앞에서 확인했을 것이다.


몇십 년 동안 쌓아온 방대한 이상형의 조건은, 결국 하나도 충족되지 않았다. (중략)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지금의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그다지 바라지 않았다. 그저 '너무 애쓰지 않고 자신에게 만족하며 그래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삶이 최고라 생각하기 시작했다. (90페이지)


모든 일이 그랬듯 '집' 혹은 내 삶을 담기에 알맞은 '공간'에 대해 알아가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60페이지)


지나간 것들은 온전히 버리고 새롭게 살아가는 일에 마음을 담아본다. 저자에게 집을 고치는 일은 단순히 생활공간을 만들어가는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고치고 변화하는 집을 보면서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고, 새롭고 낯선 감정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설레는지 다시 알게 되었을 거다. 그동안 고치지 못하고 담아둔 마음까지 고치는 시간에, 나와 맞지 않은 삶의 불편함을 버리는 일도 가능해졌다.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아가는 일, 내 삶의 방향이 어느 쪽을 향하는지 보는 일, 삶의 태도와 시선을 보는 계기가 이렇게 만들어진다. 작지만 불편하지 않은, 일상의 행복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그렇게 인생이 채워져 가는 공간에서 오래 머물기를 바란다. 아파트 노래를 부르다가 다시 주택 노래를 부르게 되는 내 마음이 저자의 공간에 계속 머물고 있다. 단지 공간만의 이유는 아니라는 걸 알기에 더욱 마음에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