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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재'에 관한 글. <이별의 푸가> - 김진영
작성자 하주연 작성일 2019-11-30
작성일 2019-11-30

겨울타는 사람에게.

당신과 통화를 한 뒤 이 책을 읽어서인지
읽는 동안 ‘외로움’과 함께 당신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처음 몇 장을 읽자마자
당신에게 이 책을 건네면 극과 극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람막이가 될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꽁꽁 언 호수 한복판 위에 당신을 세워두는 꼴이 될지,
아니면 나뭇가지 사이로 스산한 바람소리는 들릴지언정
따가운 한 줄기 햇빛을 보며 몸이라도 가릴 큰 바위가 있는 숲속이 될지..

아무래도 당신에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지금의 감정은
온도와 민감한 것 같다는 당신과의 대화가
이해가 될 듯도 안 되는 듯도 합니다.
저는 당신과는 반대 타입이거든요.
전 추워지는 계절이면 누군가 나를 애타게 원했고,
따뜻한 시기를 지나 낮 시간이 더 길어질 때면
항상 이별을 겪었습니다.
그게 차라리 다행이었을까요.
적막한 밤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게 느껴지진 않았었는데..

봄에는 꽃들이 너무 아름답다.
여름에는 햇빛이 너무 뜨겁다.
가을에는 단풍이 너무 곱다.
모든 것이 나의 이별을 비웃는다.
그러면 겨울에는?
말 없는 흰 눈, 헐벗은 나무들, 쓸쓸한 바람, 고적한 밤 – 모두가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다.
함께 이별을 슬퍼해주는 것 같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겨울은 정말 이별하기 좋은 계절일까?
혹시 겨울은 가장 잔인한 이별의 계절은 아닐까?
p.88

당신이 떠나면 부재가 남는다.
p.119

당신이 남긴 부재의 공간도 밝은 방이다.
당신이 없는, 당신의 순간들이 찬란하게 빛나는,
떠난 당신이 매번 수없이 다시 태어나 내게로 돌아오는 방...
어떻게 내가 그 부재의 방을 떠날 수가 있단 말인가?
p.143

‘이별’과 ‘헤어짐’ 또는 ‘없음’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부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김진영 철학자의 이 글들이 조금은 위안이 되는 듯 합니다.

지금 내 옆을 지켜주는 소중한 존재들이 있고,
예전의 존재들이 지금 내 옆에 있다고 해서
내가 만족할 걸 아니란 걸 알면서도
우린 어딘지 모르게 쓸쓸함을 느끼곤 하죠.

하지만 그 사람을 추억하는 방식도, 느낌도,
그때의 내 감정도, 지금의 내 생각들도
모두 내거잖아요.
‘부재’가 생겨남으로 인해
나만이 가질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난 것에
약간은 고마워하기로 해요.
붙잡고 있는 그 잔상들이
어디 가지 않고 늘 그 자리에 있다는 건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겨울이 시작되었으니
한동안 감정의 기복이 큰 나날들을 보내느라 힘들테지요.
이번 겨울은 큰 바위 뒤에서 바람을 피하며
햇빛을 바라보는 날들이 더 많기를 바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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