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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품

제목 옌렌커의 <연월일>
작성자 이세미 작성일 2019-11-30
작성일 2019-11-30

저자 옌렌커의 글쓰기에 대한 입장이 인상깊다. 문학이 인생 여정의 불빛이라는 것을 믿기 시작했다는 그는 글쓰기에는 신비한 극단과 신비한 시각, 영감과 영혼의 빛이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생명과 글쓰기가 인간의 생존과 현실을 직시하고 그런 방향으로 사유의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나온 작품들이 바로 이 책 <연월일>에 담기기도 했다. ‘현대 중국 문학의 거장이라 칭송받는 옌렌커는. 집필하는 작품마다 판매나 홍보가 금지되면서도 대중과 중국 평단의 뜨거운 관심과 호응을 받는 문제적 작가이기도 하다. 각종 문학상은 물론이거니와 오랫동안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옌렌커는 주목받는 작가이고 실제 그의 글들을 탐독해보니 그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자연스럽게 체감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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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은 그의 작품 중 최고의 작품 네 편 -연월일, 골수, 천궁도,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 -이 담겼다. 이야기의 소재부터 그것을 이끌어가는 소설의 구성과 스토리가 예사롭지 않았는데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는 중국 농촌에서 악전고투하는 인간 군상들의 다양한 모습을 다룬다. 특히 수록된 작품 중 책의 제목이기도 한 <연월일>은 놀라울만큼 사실적이고 그만큼 처절하다. ‘가뭄이라는 재해가 주는 생의 고독과 그 끊임없는 지난한 여정 위를 걸어가는 인간의 의지를 통해 끊임없이 처절함의 순간들을 목도하게 된다. 손에 땀을 쥐게 할만큼 강렬하고 초조하게 삶의 다음 순간들을 고뇌하고 체념하게 만드는 것이다. 문학이 보여주는 것은 결국 인간의 생이고 인간의 의지이기도 하다는 듯이 인간이란 왜 존재하는 것일까 생각하는 순간들의 연속이기도 했고 삶의 의지를 향한 인간의 노력과 열정에 감탄하기도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생이란 너무나도 가치롭고 이를 향유하는 인간 존재는 위대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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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작품 <골수>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었다. 저능아 넷을 둔 엄마의 삶이 인상적이었는데 특히나 이 작품의 초현실적 설정이 가혹한 그들의 운명을 극대화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결말이 충격을 주었는데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과 헌신이란 그토록 놀라우면서도 참담함을 안긴다. 자식들의 병이 낫기를 바라는 그 마음, 그렇게 제대로 한 인간으로써 바로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 뼛속깊이 각인되기 때문이다. <천궁도> 역시 강렬하다. 한 인간의 의지가 이토록 경외감을 불러일으켰다. 내가 주인공 루류밍이었다면 나는 그렇게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싶을만큼 삶에 열정적이었던 그가 새삼 존경스럽다. 나의 의지가 아닌, 알 수 없는 삶의 운명으로 그는 타인에 의해 몸에 상해를 입어 절름발이가 되었고 고치지도 못한 채 내내 그렇게 살아야 했다. 끊임없이 절름발이이라 불리면서. 사랑하는 아내와의 약속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의 삶이 얼마나 경이롭던지. 가난에 허덕이면서도 아내와의 그 약속을 지켜낸다면 결국 아내를 오롯이 자신의 사람으로 두게 될 거라는 단 한 가지 희망. 그 희망 하나에그는 아내를 지키려고 처음부터 끝까지 운명과 수많은 어려움들에 몸소 부딪치며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책의 작품 중 가장 호흡이 짧은 작품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이다. 짧지만 사랑에 강렬한 잔상을 남기는 이 소설은 생의 고독과 허무라는 인간 존재를 여실히 느끼게 해 준 작품이기도 했다. 하나밖에 없는 길고도 짧은 인생이라는 여정 속에서 우리는 사랑을 하고 사랑을 주고받는다. 때로 사랑을 하면서도 자의나 타의에 의해 바람처럼 스쳐가고 다른 선택의 길에서 그 사랑을 하염없이 그리워하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 그런 사랑을 만날 수 있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그냥 사랑하면 될 것을. 그래서 사랑이 그토록 소유하기 어려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난처럼 운명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고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옌렌커의 작품들은 그만의 독특함이 장착되어 있었다. 강렬하고 예민하고 충격적이다. 삶과 인간을 향한 그의 시선이, 그만의 내공으로 똘똘 뭉쳐있다. 그가 말하던 신비한 극단, 신비한 시각, 영감과 영혼의 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새삼 알 것 같았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수많은 운명과 어려움에 부딪치는 인간의 존재 이유에서 무엇을 소원할 수 있을까. 그에게 더 많은 신비한 극단과 시각을, 영감과 영혼의 빛을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