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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품

제목 쓰고 싶다 쓰고싶지 않다
작성자 이민정 작성일 2022-05-25
작성일 2022-05-25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날들과 기자가 되고 싶었던 날들을 지나 지금의 내가 되었다. 가장 중요한 글쓰기가 한 학기에 한 번 학생들의 통지표에 행동특성을 쓰는 일인 사람. 어떻게든 글을 쓰고 싶어 신문에 기고를 하고, 북클럽에 지원해 서평을 쓴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쓰지 않으니 부지런히 글 쓰는 일을 찾고 마감 날짜를 만든다.


그러나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듯, 일을 맡기 전 지원하는 마음과 일을 받고 나서의 마음이 다르다. 분량이 정해진 신문 칼럼의 경우 글을 쓰는 내내 한글 프로그램에서 [편집-문서정보-글자 수]를 확인하는 일을 멈출 수 없다. 신문에 내 글이 나온 날은 가장 마음이 편하다. 다음 마감이 한 달이나 남았다는 뜻이다. 북클럽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책을 신청할 때가 가장 설렌다. 곧 내 앞으로 택배가 오기 때문이다. 새 책 냄새를 맡는 것도 좋다. 전철로 출퇴근하는 왕복 한 시간 반 중 책을 읽는 건 30분 남짓이니 보름 정도 책을 가방에 넣어 다닌다. 꼭 읽지 않더라도 읽을 것이 있다는 것은 든든하다.


문제는 책 페이지의 절반을 넘기면서부터 시작된다. 책은 재미있는데 내 서평은 재미있을 것인가. 얼마나 써야 될까. 서평을 올리면 글나라넷에서 우수작도 뽑던데 나는 이번에도 안 뽑히려나. 우수작을 뽑는 기준이 뭐지? 온갖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번잡한 마음 속 잡생각들을 슥슥 지우고 메모장 앱을 켠다. 나도 임대형 감독처럼 이 글을 메모장에 쓴다. 뭐든 써도 되지만 메모장은 며칠째 정체되어 있다. 글나라넷에서 마감 안내 문자가 온다. 이제 진짜 써야 되는데. 근데 잠깐만, 유튜브에서 이것만 보고.


동거인은 이런 나를 보면서 말한다. “그러게 왜 그걸 쓰겠다고 했어? 책은 그냥 사서 읽으면 되지.” 이건 책을 돈 주고 사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고. 뭐라도 하나 쓰기 위해서 하는 거라고. 나는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아니, 근데 ‘쓰는 사람’이 뭐길래 나는 이토록 몸을 배배 꼬면서 빈 화면을 노려보고 있는 건가. 직업도 아닌데. 왜 이렇게 잘 쓰고 싶어서, 동시에 쓰기 싫어서 안달인가.


알고보니 직업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은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다방면으로 출중한 싱어송라이터, 명쾌한 글과 입담으로 유명한 기자,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을 만든 감독들도 그렇다는 거다. 그들도 나와 똑같이 글쓰기와 상관 없는 일들을 처리하느라 글쓰기를 미루고, 문장 하나를 쓸 때마다 [편집-문서 정보-글자 수]를 들여다보며, 부지런히 뭔가를 써내는 다른 사람들을 보며 스스로를 다그치기도 했다. 그럼 뭐 나도 당연히 그럴 수 있지. 아, 물론 글의 완성도는 다르겠지만.


마감 전의 나와 너무 닮아 내가 쓴 글 같은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를 읽고 용기를 얻는다. 굳이 글을 쓸 일을 자청하고는 마감을 향해 밍기적거리고 달리다가 나자빠지고 굴러갈 용기. 잘 쓰고 싶어서 쓰지 않는 순간에도 뭘 쓸지 생각하다 곧 괴로워할 용기. 그리고 이 글의 마침표를 찍을 용기.


이 도서는 (사)한국독서문화재단의 독서문화사업으로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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