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마당 > 글나라우수작품 > 우수작품

우수작품

제목 고려시대(설명문)
작성자 정혜수(4학년) 작성일 2003-10-23
작성일 2003-10-23
통일신라의 뒤를 이은 고려는 우리민족 최초의 통일국가라는데 큰 의미가 있다. 태조 왕건은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했음을 강조하고 회유정책과 혼인정책을 써서 많은 호족들을 고려로 흡수했다.  
고려시대 때는 거란, 여진, 몽고등 외적의 침입이 많았지만 강감찬(귀주대첩)같은 훌륭한 장수와 모든 백성이 힘을 합쳐 나라를 지켰다. 그리고 상감청자, 팔만대장경 같은 훌륭한 문화 유산을 많이 남겼으며 예성강 입구의 벽란도에서는 아라비아 등 해외무역이 번창했고 이때부터 세계에 우리 나라의 이름이 '코리아'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고려 때는 불교를 널리 장려하여 절을 많이 세웠고, 후에 대각국사 의천이 두종파로 나뉘어진 교종과 선종을 통일하여 천태종으로 통합하였다.
고려의 계급제도는 귀족과 하급관리(중류층)가 지배층을 이루고 양인과 천민이 피지배층이었다. 양인은 농민이 대부분이었고 천민에는 노비, 화척(백정),재인(광대)등이 있었으며, 양인도 과거에 합격하면 신분이 높아질 수 있었다.
고려사회는 문벌 귀족들이 이끌어 나갔으며, 차별 받던 무신들이 문신들을 죽이고는 의종을 쫓아내고 '무신의 난'을 일으키는데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 최충헌에 이어지는 무신끼리의 권력다툼이 쉴새 없이 벌어진다.
한편 최충헌의 무신정권이 안정되어 갈 무렵 몽고에서는 칭기스칸이 여러 부족을 통일하고 대제국을 건설했다.
최우 정권 때는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 몽고군의 침입에 대항했으며 '삼별초' 군대가 큰 활약을 했다. 이러한 몽고(원나라)와의 전쟁 중에 부처의 힘으로 나라를 구하기 위해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 이러한 와중에 고려와 원나라 사이에는 문물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졌고 원나라에 유행했던 고려의 문화풍속을 '고려양'이라고 한다.
원나라의 세력이 약해지고 14세기 중엽에 명나라가 새로 일어나는데 이 틈을 타서 공민왕은 자주적인 개혁정책을 펴려고 애썼으나 반대파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
고려의 마지막 왕은 공양왕으로 1392년 이성계는 왕위에 올라 조선이라는 새로운 왕조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