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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품

제목 뭉치의 일기
작성자 김영우 작성일 2003-11-07
작성일 2003-11-07
제 이름은 뭉치랍니다.
일곱 형제의 막내로 태어났는데, 두 달 전에 이곳 영우형네 집으로 분양됐죠. 그런데 제가 볼 땐 하얀 털에 검은 반점이 아주 잘 어울리는 잘 생긴 바둑이인데, 어른들은 왜 저만 보면 똥개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비록 애완견은 아니지만, 저도 맨 처음엔 거실에 마련된 예쁘고 푹신한 강아지 집에서 온 식구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살았답니다. 제가 못된 말썽을 부리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첫 사고를 친 날은, 유난히도 이빨이 근질거리던 날이었어요. 그 날은 엄마까지 시장 보러 나가셔서, 집안엔 저 혼자밖에 없었어요. 하도 심심해서 ‘뭘 하고 놀까?’ 궁리하던 제 눈에, 엄마가 똥오줌을 가리라며 깔아준 신문지가 보이는 게 아니겠어요.
마침 이빨도 간지럽고 해서 한 입 물고 찢어보니 너무 재밌었어요. 그래서 신문지를 발기발기 찢어놓은 뒤에 벽지까지 다 물어뜯어 놓고, 또 그것도 부족해서 아빠의 구두를 이빨로 질겅질겅 씹어 놓았지요. 그리고는 집안 구석구석에 제 구역이라는 뜻으로 오줌을 찔끔거려 놓고, 주방 밑엔 근사한 모양으로 똥까지 싸 놓았죠.
시장에서 돌아오신 엄마는 거의 기절할 듯이 놀라셨어요.
“아이고~ 뭉치야! 너 어쩌려고 이런 짓을 저질렀니? 정말 사고뭉치로구나.”라고 하시며 제 엉덩이를 파리채로 막 때리셨어요. 제가 뭐, 파리인가요?
저는 너무 아파서, “아야, 아야...... 너무 아파요. 제발 그만 때리세요.”하며 울었지만, 엄마는 “요놈의 사고뭉치가 뭘 잘했다고 대들어?”하시며 더 때리시는 거예요.
그 날 이후로 저는, 엄마한테 ‘사고뭉치’라고 불린답니다.

제가 두 번째로 사고를 친 건, 오히려 행운이었어요. 왜냐하면 그 일로 인하여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게 되었으니까요.
어느 날, 아빠가 술을 드시고 들어오셨어요. 저녁식사를 하시고 난 아빠는, 갑자기 방바닥에 여러 개의 종이쪽지를 펴놓고 뭔가를 적기 시작했어요. 저는 그 종이가 먹는 것이라도 되는 줄 알고 입에 덥석 물고는 도망갔죠. 하지만 결국 아빠한테 잡혀서 그 종이를 빼앗기고 말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무슨 복권번호를 적은 쪽지였대요. 제가 좋은 번호를 골라줬다고 생각하신 아빠가 그 번호대로 복권을 샀는데, 꽤 큰돈에 당첨이 되셨다지 뭐예요?
그 후로 아빠는 집에만 들어오시면 저를 앉혀 놓곤, “야, 돈뭉치~ 한 개만 물어. 아무거나 물어!”하면서 종이를 방바닥에 뿌립니다. 하지만 저는, 그 종이가 먹는 게 아니라는 걸 이미 눈치챘거든요?
요즘도 아빠는 저를 돈뭉치라고 부르며 종이를 물어오라고 시키시지만, 저는 먼 산만 바라보며 모른 체 한답니다. 제발 아빠가 헛된 꿈으로부터 빨리 깨어나셔야 할텐데.

저의 세 번째 사고는, 아주 슬픈 일과 함께 다가왔어요. 추석 이틀 전 새벽에, 영우형의 외할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신 거예요. 태풍이 몰려온 것처럼, 온 집안에 불이 켜지고 난리가 났어요.
급하게 짐을 꾸리시던 아빠가 건너방에서 대문으로 통하는 빈 공간에다 저를 데려다 놓더니, 먹이를 듬뿍 쏟아놓고는 또 물도 졸졸 흐르게 해서 제가 맘껏 먹을 수 있게 해주셨어요.
얼마 후, 온 식구가 집을 비우자마자 저는 신이 나서 제멋대로 굴기 시작했죠. 닥치는 대로 먹고 싸고, 이리저리 뒹굴다간 또 먹고, 아무 곳에나 싸고......
그런데 5일이 지나자 그 많던 먹이가 다 없어졌지 뭐예요. 보름 치도 넘는 먹이를 제가 몽땅 먹어서 없앤 거죠. 이제부턴 물만 먹어야 했어요.
하루가 더 지나자 가족들이 돌아왔어요. 제일 먼저 영우형이 건너방문을 열어보곤, 얼굴을 찡그리며 코를 막았어요. 그 다음엔 엄마가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으셨고, 아빠는 저를 내동댕이치듯 집밖으로 쫓아냈어요.
곧이어, 아빠의 화난 목소리가 들렸어요.
“세상에! 제아무리 바보 같은 똥개라지만, 이게 뭐야? 혹시라도 배고파 죽을까봐 먹이를 듬뿍 줬더니, 집안을 온통 똥 천지로 만들어 놨네?”
그러자, “맞아, 아빠! 뭉치는 정말, 밥 먹고 똥 싸는 일밖에 모르나 봐. 앞으론 똥뭉치라고 부를 테야.”라는 영우형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치~ 자기들은 밥 먹으면 꿀을 싸나? 6일 동안이나 구석에다 처박아 놓고 똥도 치워주지 않은 건, 자기들이면서... 흑흑...!!’

아무튼 저는 그 날 이후로 사고뭉치, 돈뭉치, 똥뭉치라는 세 개의 이름을 갖게 되었고, 아늑하고 포근한 거실로부터 화장실 옆 계단 밑으로 쫓겨나고 말았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우리 가족을 너무너무 사랑하고, 또 우리 가족도 저를 진심으로 아껴주고 보살펴 준답니다.
그리고 사실 저는, 지금의 화장실 옆이 더 마음 편하고 좋거든요? 그래서 어른들이 저 보고 ‘똥개’라고 부르나 봐요. 히히...!!!

(5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