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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품

제목 가을 나들이
작성자 김영우 작성일 2003-10-31
작성일 2003-10-31
10월의 첫째 주 일요일, 우리 가족은 가을 나들이를 떠났다. 아니, 추석 이틀 전에 갑자기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에, 매일 눈물만 펑펑 쏟으며 지내고 계신 엄마를 위로해 드리기 위해서 아빠가 마련하신 작은 이벤트였다.
우리 가족 외에도 큰 이모와 막내이모, 그리고 큰 이모부가 함께 따라 나섰다. 목적지는 주암댐에서 송광사로 가는 길목에 있는 밤나무 밭이다. 왜 밤나무 산이 아니고 밭이냐 하면, 산비탈의 계단식 밭에다 일부러 밤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큰 이모부의 친구가 심으셨다는 밤나무들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키가 작았다. 나는 텔레비전이나 책에서 본 아름드리 밤나무는 못되더라도, 어른 키의 서너 배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 앞에 줄지어 심어져 있는 밤나무들은, 기껏해야 내 키의 두세 배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아서 마치 아기밤나무 같았다. 그런데도 나뭇가지에 달린 밤송이는 탐스러웠고 밤톨도 꽤 굵어 보였다.
밤나무 밭주인이 말씀하시길, "밤나무 가지만 부러뜨리지 않는다면, 밤은 얼마든지 따도 좋습니다. 여러분이 딴 밤을 한군데에 모아두었다가, 나중에 그 절반만 저한테 주시면 됩니다."라고 하셨다.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왜냐하면 우리가 밤을 열심히 따면 딸수록 그만큼 우리 몫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쪽에서 아빠와 큰 이모부, 그리고 밤나무 주인이 뭐라고 속닥거리며 웃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우리들의 기분을 좋게 해주기 위해서, 아빠랑 이모부가 밤나무 주인과 따로 무슨 약속을 하신 것 같았다. 아무리 친구사이라 해도, 일년동안 땀 흘려 지은 농사를 마음대로 가져가라는 게 말이나 되나?
아무튼 우리는 땀을 뻘뻘 흘려가며 열심히 밤을 줍고, 땄다. 특히 나는 아침에 집을 나설 때, 긴 바지 긴소매 옷에다가 두꺼운 양말에 등산화까지 신었기 때문에 더 더웠다. 왜냐하면 산에는 독사라든가 독충이 많고, 또 여린 피부가 나뭇가지에 긁히면 쉽게 상처를 입기 때문에 완전무장을 해야한다는 아빠의 말씀 때문이었다. 나는 몹시 더워서 옷을 벗을까 생각하다가 아빠의 말씀을 떠올리곤 그냥 참기로 했다.
한참 뒤, 저 쪽 풀숲에 누렇고 울긋불긋한 게 보였다. 슬쩍 보니, 둥글둥글한 게 꼭 탐스런 밤송이가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밤송이를 풀 밖으로 꺼내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발로 툭 찼다. 그랬는데, 그 밤송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내 발목을 덥석 무는 게 아닌가?
'맙소사!' 그건 밤송이가 아니라, 똬리를 틀고 있던 독사였던 것이다.
"으악~ 뱀이다, 뱀! 뱀한테 물렸어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러댔고 어른들은 사색이 되어서 내 주위로 모여들었다. 아빠가 확인을 해보니, 다행히도 물린 자리는 등산화의 발목부분이었다. 가죽이 두꺼워서 독니가 뚫지는 못했으나, 그곳엔 독사의 독이 묻어있었다.
'만약, 아빠말씀을 듣지 않고 반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왔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 때문에 놀라신 엄마와 이모들이, "이제 그만 집에 가자"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우린 그동안 모아놓은 밤을 반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아까부터 엄마랑 이모들이 하는 행동이 좀 수상했다. 큰 밤톨은 우리가 가져갈 자루에 담고, 작은 밤톨은 밤나무 주인에게 드릴 자루에 담는 게 아닌가?
나는 화가 나서, "엄마! 이모!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라고 소리를 빽 질렀다. 엄마와 이모들은 미안하셨던지 그 다음부턴 공평하게 밤을 나누셨다. 똑같이 나누고 나니, 우리 몫이 한 자루나 되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 가족의 얼굴은 자루에 가득 찬 밤만큼이나 풍성해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엄마와 이모들의 표정을 살펴보니, 슬픔이 많이 사라지신 것 같았다. 나는 엄마와 이모들, 그리고 모든 가족들이 하루빨리 외할머니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 기운을 차리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가만히 엄마 손을 만져보았다.

(5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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